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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리포트] 워라밸, 플렉스에 가려진 MZ세대의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서울과 비서울…세대 특성 바탕에는 '격차'

2021.01.19(Tue) 15:29:25

[비즈한국] MZ세대는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주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변화에 민감’, ‘신흥 소비권력’, ‘워라밸’ 같은 단어로 소개된다. 하지만 이들은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 젠더 문제, 코로나19 시대, 유례없는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의 한가운데 서 있기도 하다. 부유(浮遊)하는 단어를 바닥으로 끌어 내리기 위해 용어와 통계가 생략한 MZ세대​의 현실을 전한다. 이들은 MZ세대를 대표할 수도 있고, 그 중 일부일 수도 있다. 

MZ세대에 대해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격차’를 다루고 싶었다. 지금의 20~30대를 대표적으로 지칭하는 단어 ‘MZ세대’는 마케팅 용어에서 비롯돼 소비와 트렌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들은 왜 변화에 민감한가?’, ‘왜 워라밸을 중요시하는가?’, ‘왜 비혼과 임신중단을 이야기하는가?’ 등 많은 질문의 바탕에는 격차가 자리하고 있다. MZ세대에 속하는 비정규직, 알바생, 중소기업 근로자를 만나 ‘격차’에 대해 물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닌”

지난해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21만 8000명 줄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율이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고용 한파로 비정규직과 임시직, 일용직이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20대 고용률(55.7%)이 전년 대비 2.5% 하락해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큰 고용 충격을 받았다. 이 와중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지난해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격차는 사상 최대치인 152만 3000원이었다. 임금의 격차는 삶의 많은 부분까지 차이를 만든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21만 8000명 줄었다. 외환위기 이후 최대 감소 폭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시장 한파를 반영한 결과다. 구인 게시판을 살펴보는 시민의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히읗(가명)은 29살이던 2016년 12월부터 4년간 은행에서 일했다. 은행원이 아닌 은행 경비원이었고,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었다. 자의로 그만둔 게 아니라 ‘그만둠’을 당했다. 

그는 은행의 외주를 받은 용역 업체와 계약했다. 계약은 1년마다 갱신되고 매년 최저시급을 받았다. H 은행을 다닌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세후 140만 원 정도를 받았다. 그다음 해 N 은행에서 일할 땐 인상된 최저시급인 세후 177만 원을 받았다. 명절 보너스도 휴가도 은행마다 달랐다. H 은행은 3개월을 일하면 하루 무급 휴가를 줬다. 일 년을 일해도 3일이었다. 휴가를 더 신청해서 사용하면 하루 치 일당을 빼고 월급을 줬다. K 은행은 무급 휴가조차 없었다. 

은행을 순찰하고 외부의 침입을 예방하는 경비 업무보다 손님을 응대하는 업무가 대부분이었다. ATM 기기 사용을 어려워하는 어르신을 돕고 스마트폰에 앱을 깔아줬다. 은행 경비원이 지점의 돈에 손을 대는 것은 불법이지만 동전과 지폐를 교환하는 일도 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은행원의 업무를 보조하는 것으로 CS(고객 서비스 점수)를 매겼다. 은행원은 실적이 좋으면 포상금, 상여금, 상장 같은 걸 받았지만, 은행 경비원은 CS 점수가 좋으면 수건을 받았다. 

은행은 ‘급’이 확연히 나뉘는 곳이었다. VIP 고객은 지점장이 직접 안내하고 시급 10만 원 이상을 받는 사람이 서비스를 제공했다. VIP가 아닌 이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초생활 수급자는 은행 경비원의 도움이 필요했다. 최저시급만큼의 서비스가 나갔다. 상징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은행 문을 닫은 뒤 아이스크림 심부름을 다녀왔는데 ‘왜 하겐다즈가 아니냐’고 묻던 은행원의 질문과 함께 밥을 먹지만 결혼, 출산, 집, 자동차, 여행, 휴가 등 대부분의 이야기에 낄 수 없는 순간들이 그랬다. 퇴근할 때쯤 은행원들이 모여 그들만의 시상식을 하며 손뼉을 치고 환호하던 날, 그리고 같은 계약직 직원이 잘릴 때도 그랬다. 

히읗은 4년간 은행에서 일했던 시간을 책으로 남겼다. ‘브런치’에 남긴 글을 묶어 책을 만들고 펀딩 사이트에 올렸다. 130명이 넘는 사람들이 펀딩에 신청해 630%가 넘는 금액이 모였다. 사진=히읗 제공


은행 경비원으로 일할 때 주변에서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거냐’, ‘지금 무엇을 준비하냐’고 물었다. 지금 하는 일이 ‘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에 불안했다. 히읗은 인터뷰 말미에 “비정규직인 또래를 보면 빨리 정규직이 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나처럼 늦어지면 결국 벗어나지 못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퀸으로 태어나지 못한 졸은 퀸까지 아니더라도 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힘을 줬다. 

#서울과 비서울…“죽을 힘을 다해 올라갔어야 했다”

2021년 대입 정시모집에서 지방대학의 경쟁률이 평균 2.7 대 1을 기록했다. 지방대학의 57%가 3 대 1 미만이어서 ‘미충원 사태’에 대한 우려로 시끄럽다. 이미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이탈도 만만치 않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부산대, 전남대 등 지방 거점 국립대학의 5년간 자퇴생 증가율은 약 20~40%에 이르렀다. 특히 대구 소재 경북대는 5년간 3000명에 육박하는 학생들이 떠났다. 경북대 자퇴생의 95%는 타 학교 진학을 목적으로 한 자퇴로 전해졌다.

24살 현지(가명)는 자신을 ‘알바생’이라고 정의했다. 수능을 치고 난 19살부터 편의점, 식당, 카페, 물류센터 등에서 쉬지 않고 알바를 했다. 계약서를 쓴 곳도 있었지만 쓰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4대 보험에 들지 않는 대신 최저시급보다 천 원 정도를 더 받았다. 진상 손님이 오거나 물건이 빌 때, 컵을 깨거나 포스기의 돈이 맞지 않을 때 본인의 지갑을 열어 해결한 경우도 많았다.  

현지는 ‘서울에 올라가기 위해서’ 모든 걸 참았다. 성적에 맞춰 대구의 대학에 입학했지만 서울에 올라가서 ‘리셋’ 하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공부했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다. 그래도 서울에 있는 디자인과에 가면 취업을 할 수 있다고 다들 그랬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즐기고 서울에서 취업하고 싶었다. 다니던 대학은 한 학기를 다니고 휴학했다. 서울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우선 돈을 모아야 했다. 

적어도 500만 원은 필요했다. 자취방 보증금과 첫 두 달 월세, 생활비와 등록금 일부는 벌어서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경산에 계신 부모님의 지원을 바랄 수 없었다. 평일과 주말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하고도 생활비가 모자라면 택배를 뛰었다. 주로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분리하거나 상하차를 했다. 그렇게 돈을 충당해 일부는 저축을 하고 일부는 수능 문제지를 사거나 인터넷 강의를 결제했다. 

현지는 “고등학생 때는 엄두가 안 나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못 갔다. 대학에 와서는 더더욱 서울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제는 늘 돈이었다. 졸업을 해도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 여기에서는 움직일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대구에서 확산되던 시기에 현지는 일하던 레스토랑과 와인바에서 잘렸다.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알바였다. 계획대로라면 작년 수능을 치고 곧바로 서울에 올라왔어야 했다. 목표치보다 돈을 못 모았고 수능 점수도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패배감이 들었다. 현지는 “이제는 왜 꼭 서울에 올라가고 싶었는지 간절함의 이유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주식 열풍? 그것도 뭐가 있어야 올라타지”

불안의 기류를 타고 주식 열풍이 불었다. 지난해 11월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6%에 불과했던 20대의 주식투자 비율은 2020년 3.5배나 증가한 56.2%를 기록했다. 30대도 2018년 30.9%에서 2020년 48.5%로 늘었다. 이 수치를 두고 언론은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표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 ‘빚투(빚내서 투자)’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하지만 빚도 능력이다. 고연봉의 안정적인 직장에 다닐수록 가계 신용을 적극 활용했고 연체율도 낮다. 지난해 10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 근로자 평균 대출(6688만 원)은 중소기업(3368만 원)의 두 배에 달했다. 산업별로 금융보험업, 정보통신업, 공공행정 등 평균 연봉이 높은 일자리일수록 대출이 많았다. 반면 연체율은 대기업 근로자(0.26%)보다 중소기업 근로자(0.91%)가 세 배 이상 높았다.

‘영끌’, ‘빚투’의 시대이지만 빚도 능력이다. 고연봉의 안정적인 직장에 다닐수록 저리의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시중은행 창구. 사진=박정훈 기자


지난해 중소기업에 취업한 30살 민교(가명)는 아침마다 주식 앱을 켠다. 대학 동기들이 모인 카톡방은 불이 난다. 동기들이 빨간 불 가득한 주식 창 캡처를 올리며 간증한다. ‘하반기라도 들어갔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같은 말이 오고 가다가 하나둘 업무에 들어가면 조용해진다. 

이제 막 취업해서 대출금을 갚고 생활비에 월세를 빼면 남는 돈이 많지 않다. 민교는 대출을 하려고 은행에 간 날을 떠올렸다. 입사한 지 세 달이 채 안 됐을 때였다. 가능한 만큼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은행원은 연봉과 근속연수를 묻더니 “신입사원 대출은 대기업 사원 말고는 못 받는다”며 이자율 7%의 햇살론을 추천했다. 
 
민교는 그냥 나왔다. 친구 하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증여한 주식으로 너무나 쉽게 이번 기회에 올라탔다. 대기업에 간 친구들은 기업과 연계된 은행, 혹은 사내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했다. 손해를 보든 수익을 보든 돈이 굴러갔다.  

민교는 “은행 창구에 들어선 순간 돼지고기가 된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A++ 등급부터 저 밑바닥까지, 직장과 연봉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매겨졌다. 영끌도 격차가 있었다. 대기업·공기업 다니는 친구들은 0%대 금리를 이용했고, 공무원 친구들은 연금을 담보로 엄청난 레버리지를 일으켰다. 민교는 “자산 격차가 점점 벌어졌다. 쫓아갈 수 없을 정도라서 허탈하지만 그러려니 한다. 내가 못난 탓이겠지, 열심히 안 한 탓이겠지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라는 억울함도 든다”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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