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사람이 세상사에서 부침을 겪듯 기업도 마찬가지다. 작은 선택이 성장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 중대한 결단이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한국 대표 기업들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인 순간을 되짚어본다.
10년 전 오늘(2011년 1월 7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적통이 가려졌다. 정 명예회장이 남달리 아낀 현대건설의 인수 우선협상자로 현대차그룹이 선정된 것.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현대건설 인수 일정에 마침표가 찍힌 날이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차남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5남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아내 현정은 회장은 4개월간 인수전을 펼쳤다.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간직한 현대건설이라 인수 경쟁은 여느 인수합병(M&A)보다 치열했다.
#현대가 인수전 발발
당시 현대건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상황이었다. 정주영 명예회장(1915~2001)은 2000년 현대그룹과 주요 계열사를 5남 고 정몽헌 회장에게, 자동차 관련 계열사를 차남 정몽구 명예회장에게 물려줬다. 현대건설은 정몽헌 회장(1948~2003)에게 물려준 회사다.
그즈음 현대건설은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1990년 걸프전 여파가 미친 이라크 건설 공사 미수금 1조 원이 원인이었다. 2001년 현대건설은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에게 넘어가 워크아웃(기업회생절차) 작업에 들어갔다. 2006년 현대건설은 경영개선을 통해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워크아웃을 졸업한 현대건설이 2010년 9월 매물로 나오면서 채권단은 새 주인을 찾았다. 현대그룹이 인수에 적극적이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이 워크아웃 과정을 거치는 동안 고 정몽헌 회장이 유명을 달리하면서 아내 현정은 회장이 이끌게 된 상황이었다. 그동안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한 터라 인수전이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곧 현대차그룹도 인수의향을 밝히고 나섰다.
#자금 출처가 발목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의 인수전 참여 소식에 유감의 뜻을 표했다. 긴장감이 돌았다. 재계 2위 현대차그룹과의 경쟁에서 현대그룹이 승리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16일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현대그룹이었다. 가장 높은 인수가를 제시한 것이 주효했다. 현대그룹은 승자의 기분을 만끽했다. 현정은 회장은 현대가의 정통성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있다며 현대차그룹과의 관계까지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본계약을 앞두고 반전이 일어났다. 인수자금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현대그룹이 인수자금으로 투입할 현대상선의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 예금 1조 2000억 원이 자기자본이 아니라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급하게 외부로부터 차입한 자금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자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에 견제구를 던졌다. 현대차그룹이 인수를 방해하고 있다며 현대건설 예비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러나 결국 현대그룹은 2010년 12월 20일 채권단으로부터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당했다. 현대건설 인수 자금에 대한 의혹을 명쾌하게 해소하지 못해서다.
#반전 뒤 일사천리
결국 예비협상대상자였던 현대차그룹이 2011년 1월 7일 우선협상자로 전환돼 협상테이블에 앉게 됐다.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일주일 뒤인 1월 14일에는 현대건설 매각과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실사를 거쳐 3월 본계약을 마무리했다. 현대건설은 현대차그룹에 포함되면서 성장가도를 달렸다. 인수 직전 해인 2010년 현대건설의 매출액은 10조 원이었지만 9년 만인 2019년 17조 2787억 원으로 늘었다.
현대건설의 주인이 결정된 이후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은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서 입지를 높이며 국내 재계 2위 자리를 굳혔다. 반면 현대그룹은 경영난이 이어지면서 2016년 현대증권, 현대저축은행, 현대자산운용을 KB증권에 매각하고, 현대상선을 채권단에 넘기면서 외연이 축소됨에 따라 대규모기업집단에서 중견기업으로 내려앉았다.
재계 관계자는 “현금창출능력이 있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서 (현대건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만약 자본동원력이 약한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했다면 ‘승자의 저주’에 빠져 두 기업 모두 위기를 겪었을 수도 있다”라고 평가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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