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산업에서 글로벌 굴지의 기업이지만 미국와 중국 간 무역 전쟁 속 집중 포격 타깃이 되어 힘겨운 길을 걷고 있는 화웨이가 2021년 새해에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중점 사업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12월 말 공개된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의 내부 연설 내용에 따르면 화웨이는 2021년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우선순위에 두고, 광범위한 비즈니스를 펼치기보다는 주요 산업의 주요 고객사들에 초점을 맞추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다. 이는 미국의 제재로 인해 자사의 주요 비즈니스인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부문이 큰 타격을 입게 되자 현실적인 생존 방안을 모색한다는 비장함이 반영된 결정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최강자는 잊어주세요’ 인프라 강자로의 생태계 보강
화웨이는 클라우드 컴퓨팅에 역량을 더 쏟음으로써 자사 통신장비와 연계되는 IT 인프라 생태계를 강화, 기존 고객 락인(lock-in) 효과를 누리고,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 있는 기존 클라우드 컴퓨팅 강자들에 대항할 경쟁력도 키우겠다는 속내로 해석된다.
화웨이는 지난 2020년 2분기에 삼성전자를 제치고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 1위를 차지했다. 삼성이나 애플이 아닌 업체가 1위에 오른 것은 9년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어 3분기에는 삼성전자가 다시 1위를 탈환, 화웨이는 2위에 그쳐 단 한 분기 천하만을 누렸다. 심지어 새해 2021년 화웨이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글로벌 6위 안에 들기도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화웨이는 지난 11월 자사의 저가 스마트폰 라인업인 ‘아너’를 매각하기로 한 바 있다. 미국이 전 세계 교역국들을 상대로 대중무역 압박을 가하고 있어 한국, 미국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화웨이에 칩을 공급하기가 어려워진 것이 매각 결정에 영향을 줬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아너가 없는 화웨이의 2021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4%에 그쳐 글로벌 7위로 뚝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화웨이는 통신장비 시장, 특히 5G 장비 시장에서도 글로벌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지만, 칩 수급이 원활치 못한 이상 그 자리 역시 위험하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 만큼 스마트폰과 통신장비 외에 다른 비즈니스로 눈길을 돌려야 하는 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이런 화웨이가 매우 잘할 수 있고 기존 사업과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아이템이다. 화웨이 클라우드는 중국 내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서 알리바바, 텐센트와 함께 시장점유율 톱 3를 점하고 있다. 이 회사가 지난해 4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화웨이 클라우드는 200개 이상의 클라우드 서비스와 190개 이상의 솔루션들을 갖췄고 싱가폴, 칠레, 브라질, 멕시코, 페루 등 다수의 국가에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둔 상태다.
전산업에 걸친 기업들 사이에서 IT 인프라를 외주로 제공받는 개념의 ‘서비스형 인프라(Infrastructure as a Service, IaaS)’를 위한 클라우드 컴퓨팅 수요는 이미 폭발했다. 여기에 클라우드 게임, OTT 서비스, 사물인터넷(IoT) 등 빠른 네트워크에 대한 요구를 극대화하는 서비스 및 기술들이 확대되면서 통신산업을 위한 클라우드 컴퓨팅이 필요해졌다. 이미 성장하고 있던 초고속, 초저지연 네트워크와 이를 지원하는 컴퓨팅에 대한 수요에 코로나19가 기름을 부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주요 클라우드 컴퓨팅 주자들은 관련 역량을 경쟁적으로 보강해왔으며, 모두 통신사들을 대상으로 5G 네트워크 시스템과의 연계와 시너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5G를 위한 클라우드 서비스는 업체마다 미세한 장단점이 있겠지만, 큰 맥은 에지 컴퓨팅과의 연계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에지 컴퓨팅은 다양한 단말 기기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클라우드까지 보내지 않고 현장 그 기기의 끝(edge) 또는 근거리에서 실시간 처리 하는 방식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들은 통신사의 데이터센터 내 구현한 에지 컴퓨팅을 자사의 클라우드 컴퓨팅 리전(region)에도 연계, 현장의 데이터 수집과 처리 및 컴퓨팅은 에지 상에서 실행해 속도와 보안성을 높이면서도, 통신사들은 해당 클라우드 서비스가 제공하는 모든 애플리케이션 및 개발 플랫폼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네트워크 영역까지 넘보는 클라우드 강자들과 경쟁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들은 지역별로 구축한 중앙 데이터센터인 ‘리전’을 통해 고객사들에 서버와 스토리지, 소프트웨어, 개발 플랫폼 등을 클라우드로 제공해왔는데 이는 하나의 물리적 시스템을 필요에 따라 여러 개의 논리적 시스템으로 나눌 수 있게 해주는(반대도 가능) ‘가상화’ 기술에 기반한다. 그런데 이제는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들이 네트워크 가상화 기술까지 제공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해 네트워크 가상화 기업인 ‘어펌드네트웍스’를 인수,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를 통해 해당 기술을 제공한다.
클라우드 기업들이 제공하는 네트워크 가상화 기술을 활용하면 통신장비가 필요한 기업들은 라우터, 스위치 등 많은 네트워크 장비들을 자체 구축하지 않고도, 하나의 물리적 시스템이 논리적으로 다양한 네트워크 장비 기능들을 갖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들이 이제 서비스형 인프라(IaaS),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서비스형 플랫폼(PaaS)뿐 아니라 서비스형 네트워크(NaaS)까지 제공할 수 있게 된 만큼, 네트워크 장비 기업들의 경쟁자가 되어 간다는 얘기다. 실제로 해외의 한 IT 애널리스트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에릭슨인가?”라는 리포트를 내기도 했다.
결국 클라우드 서비스가 네트워크 역량까지 점점 강화하는 이 같은 추세는 화웨이와 같은 굴지의 통신장비 기업에게는 신경 쓰이는 일이다. 화웨이가 올해 클라우드 컴퓨팅에 중점을 두겠다고 선언한 것은 미국 제재로 인한 사업 타격을 극복한다는 목적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겠지만, 기존 클라우드 컴퓨팅 강자들이 자신의 텃밭인 네트워크 영역도 침범해 오는 상황에 대한 대응의 측면도 있을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런정페이 회장은 내부 연설을 통해 올해 클라우드 사업에 있어서 IaaS와 PaaS에 중점을 두겠다고 했다. 네트워크 역량을 강화하는 기존 클라우드 강자에 맞서 화웨이는 거꾸로 IaaS, PaaS를 강화함으로써 자사 통신장비를 중심으로 형성된 생태계를 강화, 고객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한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5G와 클라우드의 조합 시너지 창출 속도 붙을까
IT 기업들은 5G와 클라우드 컴퓨팅의 조합이 큰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자주 조성해왔다. 하지만 아직은 5G 서비스 자체가 충분히 확산하지 않은 만큼 이 조합이 가져다줄 혁신이 어떤 건지 구체적인 감을 잡긴 다소 이르다.
이 가운데 5G 상용화를 가장 먼저 실시했던 우리나라에서는 5G와 클라우드 연계 면에서도 비교적 빠른 움직임이다. 최근 SKT가 아마존의 AWS웨이브렝스와 연계한 5G 모바일 에지 컴퓨팅(MEC)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AWS웨이브렝스는 통신사의 5G 네트워크에 에지 컴퓨팅을 구축해 개발자들이 한 자릿수 밀리세컨드 수준의 초저지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게 해주는 서비스다. SKT의 5G MEC를 활용해 우아한형제들의 5G 배달로봇이 개발되는 등 일부 사례들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화웨이는 5G 네트워크 장비 부문에서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인 만큼, 이 회사가 제공할 클라우드 컴퓨팅도 5G와의 시너지 면에서 강점을 가지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런 화웨이가 올해 클라우드 컴퓨팅에 우선순위를 둠으로써, 그동안 좀 막연해 보였던 5G와 클라우드 컴퓨팅의 조합을 통한 비즈니스 창출 확산에 속도가 붙게 될지 관심을 가져 볼 일이다.
강현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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