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거평그룹’은 설립 18년 만에 재계 28위에 오르며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대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거평그룹의 창업주인 나승렬 회장은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했기에 그의 성공 신화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었다. 나승렬 회장은 ‘인수합병의 귀재’로 불리며 자신의 기업보다 덩치가 큰 기업을 삼켜가며 성장했다. 하지만 성공신화도 잠시였다. 재계 28위에 오른 다음해에 그룹 해체를 선언했다.
#부동산 붐과 시장 읽는 능력이 뛰어났던 나승렬 회장
1945년생인 나승렬은 가난으로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했다. 1967년 서울로 상경해 낮에는 공사판을 전전하고 저녁에는 경리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숫자와 셈에 밝았던 그는 한 전자회사를 거쳐 1970년대 아이스크림 업체로 유명했던 삼강산업에 취업해 경리부서에서 일하며 사업 전반의 흐름을 파악했다.
1979년 나승렬은 삼강에서 퇴사한 후 거평그룹의 뿌리인 ‘금성주택’을 설립했다. 금성주택은 부동산 기획개발을 전문으로 하며, 개발에 적합한 땅을 선택해 시공을 맡기는 회사였다. 마침 1980년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맞으며 연희동, 서초동에 주택을 건설해 큰 수익을 올렸다.
나승렬은 88올림픽을 전후해 주택 수요가 높아질 것을 정확히 예측했고, 1988년 서초동에 지하6층~지상19층의 오피스텔 ‘남서울 센추리 오피스텔’ 분양에 성공한다. 경기도 이천에서도 300세대의 아파트, 연희동 빌라와 역삼동에서도 11층 규모 빌라 분양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1990년 금성주택은 거평건설로 사명을 변경했고, 콘도미니엄, 거평관광, 거평식품 등 3개의 계열사를 갖고 있었다.
거평그룹은 분양을 통해 마련한 32억 원의 돈으로 1991년 9월 대동화학을 인수하는데, 대동화학은 1980년 12월부터 법정 관리에 들어간 회사라 시장에서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다. 나승렬 회장은 대동화학 소유의 성동구 광장동 일대의 공장부지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인수했는데, 그 판단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장부상 가격이 3억 원에 불과했던 대동화학의 공장부지 약 1만 6500㎡(5000평)을 한전주택조합에 3.3㎡(1평)당 850만 원에 팔았는데, 매각가는 425억 원에 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496억 원의 자본잠식 상태였던 대동화학의 재산재평가를 실시해 토지와 건물 등에서 세후 755억 원의 차익을 발생시킨다. 인수 2년 만인 1993년, 대동화학은 법정관리에서 벗어난다.
대동화학을 인수하고 비슷한 시점에 거평개발, 거평메디스클럽 등을 설립했고, 1993년 동대문에 12만 3750㎡(3만 7500평), 지하 6층~지상 22층의 패션타운 ‘거평프레야’를 지어 성공적으로 분양하며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렸다.
#인수합병으로 재계 30위권 진입, 무리한 확장으로 해체
대동화학을 인수하며 큰 재미를 봤던 나승렬 회장은 1994년 4월 공기업 민영화 1호로 선정된 대한중석 인수전에도 참여한다. 대한중석은 제조업을 영위하던 회사로 산업은행이 공개경매를 주도했으나 두 번의 유찰을 겪은 상태였다. 나승렬 회장은 대한중석 재무를 파악했고 명동 토지, 포항제철 100만 주, 500만 평 산동광산, 15만 평 대구공장 등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이후 영풍과의 인수전에서 1150억 원을 써내며 15억 원 차이로 거평이 승리한다.
나승렬 회장은 대한중석 인수 후 계열사로 대한중석건설, 중석공영을 설립하며 주택건설 사업에 나섰다. 이후 라이프유통, 한국양곡유통, 반도체 회사인 한국시그네틱스, 포스코켐, 정우석탄화학 등을 인수해 건설, 유통, 제조, 석유화학 업종에 진출한다.
인수자금으로 2500억 원이 넘는 돈이 투자됐다. 대한중석 661억 원, 라이프유통 274억 원, 한국시그네틱스 500억 원, 포스코켐, 정우석탄화학에서 1151억 원 정도 투입됐다. 나승렬 회장이 인수한 계열사 자산을 담보로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을 이용했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계열사끼리 꼬리를 물고 있는 셈이다.
나승렬 회장은 금융업 진출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1996년에 강남상호신용금고와 새한종합금융을 인수했고, 1998년 한남투자증권을 인수했다. 이 사이 태평양패션, 삼미화인세라믹스 등도 인수했다. 1997년 거평그룹은 재계 28위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내실을 다질 기간도 없이 성장에만 급급했기에 거평그룹은 한보그룹 부도 이후 부도 후보업체 리스트에 단골로 등장했다. 이에 거평그룹은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347%인 9000억 원 정도라며, 다른 대기업(387%)에 대비해 낮고 영업이익이 준수하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1996년 1조 5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도 영업이익은 200억 원, 1997년 2조 원의 매출에도 이익은 200억 원을 밑도는 수준이었다. 결국 1998년 5월 12일 거평그룹은 19개의 계열사를 4개로 축소한다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며 해체의 길을 걷게 됐다. 거평제철화학과 거평화학, 거평시그네틱스, 한남투자신탁증권 등 4개사가 살아남았지만 다른 그룹으로 모두 인수됐고, 나머지 계열사는 사라졌다.
#그룹 해체 그 이후
나승렬 전 회장은 금융기관을 인수, 계열사에 편법으로 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아 수감생활을 하다가 건강 문제로 형집행정지를 받은 후 2008년 광복절 특사로 형집행을 면제받았다.
전국 고액 체납자에 이름을 올린 그의 체납세금은 45억 2100만 원에 달한다. 돈이 한 푼도 없다는 나 전 회장의 주장과 달리, 2005년 아들 나영돈 씨가 제빵업체 ‘기린’의 우호지분 포함 20.8%를 소유한 것이 언론에 공개돼 비난을 받았다. 그해 3월 나 전 회장 가가족은 거평그룹 출신 이용수 전 만강개발 사장을 신임 대표, 나 전 회장의 자녀 나영돈 씨를 등기이사, 나현주 씨를 감사로 선임하며 기린을 장악했다. 이들은 기린이 소유한 부산 해운대구 6000평 공장부지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나 전 회장이 대동화학을 인수하던 상황과 비슷해 기린의 실제 주인이 나승렬 회장으로 추측되기도 했다.
이후 기린은 650억 원을 투입해 2006년 4월 수원 빙과공장, 11월 수원 제과공장, 2007년 11월 부산 제빵공장 등 잇따라 완공하며 성장을 꿈꿨으나 경기 침체와 수원 공장 화재 등 악재가 겹쳐 2009년 3월 회생절차에 들어갔고, 2013년 롯데제과에 흡수합병됐다.
정동민
기자
workhard@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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