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올해도 눈부신 활약으로 테크 산업에서 가장 많이 주목받은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조스. 두 거물이 위성 인터넷 분야에서의 본격적인 경쟁 시작을 예고했다. 일론 머스크가 우주 개발 기업 스페이스X를 통해 이미 1000여 개의 위성 발사를 성공시키는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 온 가운데, 최근 아마존이 자사 위성 인터넷 사업 ‘프로젝트 카이퍼’에 사용될 위성 안테나 디자인을 공개했다.
속도 차가 있는 양측의 사업 진행 경과, 라이벌이면서 잠재적 파트너이기도 한 관계, 두 회사의 생태계가 어떤 시너지를 낼지 등이 ‘자존심 강한 두 천재’가 불러올 우주 인터넷 경쟁의 관전 포인트다.
#속도 내는 머스크 vs 여유로운 베조스
저궤도 위성 인터넷은 고도 500~1200km 저궤도에 띄운 위성을 통해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서비스로, 현재의 각국 주요 통신사들이 제공하는 네트워크보다 더 광범위한 지역에 네트워크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재 인터넷이 잘 안 되거나 아예 제공되지 않는 저개발 국가나 시골 지역에도 더욱 빠른 속도의 인터넷이 제공된다. 심지어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네트워크가 제공되기 때문에, 바다 위 선박의 현재 위치뿐 아니라 선박 내 컨테이너들의 위치까지 파악이 가능할 정도로 정보의 정확도도 높일 수 있다.
아마존은 이달 중순 카이퍼 프로젝트용 위성 안테나 디자인을 공개했다. 향후 가정이나 개인 단말기로 사용될 이 위성 안테나는 송신 안테나와 수신 안테나를 겹쳐 쌓는 방법으로 기존 제품보다 3배 더 작고 가볍게 했으며 대역폭은 최대 400Gbps로 높인 점이 특징이다.
아마존의 안테나 디자인은 꽤 획기적이지만 그동안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보여준 활약에 비할 바는 아니다. 스페이스X는 이미 저궤도 위성 ‘스타링크’ 1000여 개를 우주로 쏘아 올리며 전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빠른 행보를 보인다. 심지어 위성 발사에는 자사의 재활용 로켓을 이용해 한번 쓰고 버리는 로켓에 비해 비용도 크게 낮추는 혁신을 보여줬다. 앞으로 스페이스X는 2027년까지 1만 2000개의 저궤도 위성을 쏘아 올린다는 계획이다.
반면 아마존은 아직 위성 발사는 시작도 안 했다. 심지어 파산 위기까지 겪었던 영국의 윈앱조차 이미 19개의 위성을 발사했는데 이에 비하면 아마존의 행보는 더딘 편이다. 아마존은 3236개의 저궤도 위성 발사 계획을 FCC로부터 지난 7월 승인받았고 이에 따라 오는 2026년까지 절반을, 2029년까지 3236개 전부를 발사해야 한다. 아마존의 자금력과 역량 등을 볼 때 촉박한 일정은 아니다. 하지만 스페이스X와의 경쟁을 생각해 속도를 낼 법도 한데, 아마존은 왜 이리 여유를 부리는 걸까.
아마존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의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하는 데 의의를 둔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한 충분한 기술을 확보할 때까지는 미리부터 비싼 서비스를 선보이진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이미 북미지역에서 위성 인터넷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스페이스X의 경우 다음에는 더 저렴해진다고 하지만, 현재 초기 설치비 499달러에 매달 99달러의 요금을 받는다.
또 경쟁자들이 먼저 밭을 일궈 놓는다 해도 아마존은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위성 인터넷 산업이 무르익으면 자사의 전 세계 1위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인 AWS의 수요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지난해 위성 데이터를 수신하고 활용하는 클라우드 서비스인 ‘AWS 그라운드 스테이션’을 출시한 바 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자체 지상국을 설치할 필요 없이 위성 데이터를 처리하고 위성 통신을 제어할 수 있으며 운영을 확장할 수 있다. 아마존은 이미 6개의 그라운드 스테이션을 구축해 둔 상태이며 이곳에서 궤도 시스템들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다. 추후 수만 개가 넘게 설치될 전망인 저궤도 위성들은 수많은 산업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들을 가져다줄 것이며, 이는 모두 AWS의 잠재 텃밭이 되는 셈이다.
이는 위성 인터넷 시대의 문을 여는 것을 시작으로 우주 산업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선점하기 위해 속도를 내는 일론 머스크와는 조금 다른 접근법이다. 머스크는 더 많은 투자 유치를 위해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사업 부문을 분사해 향후 기업공개(IPO)를 하겠다는 의지도 밝힌 만큼, 앞으로도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아마존도 레드먼드에 전용 연구개발 시설을 마련하고 190여 개의 관련 인력 채용에 나서는 등 나름대로 움직임을 보인다. 다만 전략적으로 페이스 조절을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주 인터넷 시대, 본궤도에 오르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처럼 제프 베조스도 우주 개발 기업 ‘블루 오리진’이 있다. 스페이스X는 올해 여러 차례 재활용 로켓을 쏘아 올려 저궤도 위성들을 상공에 설치하며 눈부신 활약을 선보였는데, 블루 오리진은 이에 비해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스페이스X의 로켓이 흥한다 해도 아마존은 여러모로 손해 볼 게 없다. 스페이스X를 통해 더 많은 저궤도 위성들이 더 빨리 하늘을 장식하면 결국 아마존의 위성 산업용 AWS의 시장 확대로 돌아오기 때문. 이와 함께 아마존 역시 FCC와 약속한 3236개의 위성을 어쨌든 발사해야 한다. 행여 블루 오리진의 로켓만으로는 부족할 때, 믿을 만한 다른 로켓이 필요할 수 있는데 스페이스X의 로켓이라고 이용 못 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아마존의 프로젝트 카이퍼 사업을 총괄하는 데이브 림프 부사장은 아마존의 위성 발사와 관련해 “누가 로켓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에게 전화 달라”며 “스페이스X의 랩터 엔진이든 블루오리진의 BE-4 엔진이든 매일 새로운 혁신을 보게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아마존은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우주 산업에서도 통할만 한 말 그대로 우주적인 생태계를 갖추고 있어서 경쟁사들보다 천천히 시장 진입을 한다 해도 시너지 면에서 크게 유리하다. 일단 AWS가 있으니 IT 인프라는 자체 해결된다. 또 이커머스와 배송, OTT, 전자책과 오디오북, 음악 스트리밍, 게임 스트리밍, 의약품 배송 등 끝도 없이 혜택이 늘어나는 구독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과의 연계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
드론 및 로봇 배송, 무인 결제, 자율주행 택시 등 역시 끝도 없이 늘어나는 아마존의 자체 테크 사업들도 네트워크 트래픽을 늘려 자사의 위성 인터넷 수요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가령 아마존 프라임 회원은 이 모든 서비스를 저렴하게 누리면서 이에 필요한 고품질 네트워크는 아마존 위성 인터넷으로 제공받고, 그 기반 인프라는 AWS가 되는 식의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 역시 머스크의 다른 비즈니스들과 시너지를 낼 여지는 많다. 직접적으로는 테슬라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가 스페이스X의 로켓에도 활용된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전기차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업체다. 자율주행에 필요한 위치 기반 데이터, 주행 데이터 등을 실시간으로 활용하고 처리하고, 또 새로운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작업 등에 스타링크를 활용할 수 있다. 또 자율주행 자동차는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기 용이해 게임, 영화 등 차량 내 콘텐츠 소비 수요를 늘릴 수 있고, 이는 위성 인터넷 수요로 연결될 수 있다. 실제로 테슬라는 자사의 자동차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을 구비하는 등 차량용 엔터테인먼트 강화에 나섰다.
이 외에도 머스크는 ‘더 보링 컴퍼니’를 통해 땅속 터널을 통해 대중교통을 운영하는 프로젝트도 하고있어 위치 데이터 등의 작업에 스타링크를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상상력을 더 발휘해 보면 오픈 AI를 통한 AI 역량, 뉴럴링크를 통한 브레인 인터페이스 기술 등까지 버무리는 미래도 그려볼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애플도 이미 전문가팀을 출범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럽연합(EU)도 최근 주요 항공우주 관련 기업들과 함께 위성 인터넷 시스템 연구에 돌입했다고 최근 발표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위성 인터넷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예고했다. 이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일론 머스크와 큰 그림을 잘 그리는 제프 베조스의 활약이 새해에도 우주 인터넷 시대로의 여정에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현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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