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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참여 놓고 정부 ‘딜레마’

미국 반대 속 국내 경제전문가들 찬반 양론 나뉘어

2014.07.18(Fri) 17:10:25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여부를 놓고 한국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지난 3일 시진핑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AIIB에 한국이 가입해 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시 주석의 요청에 대해 “중국의 AIIB 구상은 시의적절하다”는 원론적 대답에 그쳤다. 반면 미국은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AIIB 설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그는 “이미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지역 인프라 투자와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지배구조와 사회적·환경적 세이프가드, 지속성 등 여러 측면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수십 년의 축적된 경험도 있다. 그러므로 ADB나 세계은행(WB)과 견줄만한 수준의 AIIB를 설립하려면 넘어야 할 문턱이 분명전날 시드니 사일러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담당 보좌관도 “한국뿐 아니라 WB, ADB와 함께 일하는 모든 국가가 AIIB에 공통의 의문을 갖고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ADB 대항마 성격 짙어 미국 반대 입장

이에 대해 국내 한 금융 전문가는 “미국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AIIB설립 추진은 미일 등이 주도하고 있는 ADB의 대항마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은 우리나라에 비상임이사국 자격으로 가입해 달라고 요청했다. AIIB는 미국과 일본을 배제한 채 설립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은 중국에 이어 2대 주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한국이 투자 결정권이 없는 비상임이사국으로 참여한다는 의중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제안한 AIIB 투자 참여 제안서에 따르면 AIIB는 상임이사회 없이 회원국 관계자들이 3개월에 한 번 정도 만나 경영 전반을 점검하는 비상임이사회를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ADB 등 다른 국제개발은행들이 매주 상임이사회를 열어 투자처 결정 등 주요 사항을 논의한 후 집행부가 투자계획을 진행하는 방식과 다른 것이다.

중국은 투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AIIB 집행부에 투자 관련 의사결정을 맡길 계획이다. 하지만 AIIB 집행부가 중국 정부가 지명하는 인물들로만 구성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출범 때 회원국들이 부담하는 납입자본금 100억 달러(약 100조 원)의 50%를 중국정부가 부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AIIB내에서 중국의 독주를 견제할 장치가 없다. 이런 점이 한국의 동참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AIIB 참여 따른 경제적 효과 무시 못해

우리 정부 일각에선 AIIB 참여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기류도 형성되고 있다. 한국이 AIIB에 참여하면 이 은행이 투자하는 아시아 지역 대규모 국제건설공사에 한국 기업들의 참여가 쉬워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AIIB 가입 문제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점은 경제적 이득이다. 한국이 AIIB에 참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많다면 미국의 반발을 무릅쓰더라도 AIIB에 가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은 한 매체에서 “AIIB 회원국 중 한국의 인프라 건설 경쟁력이 압도적인 만큼 경제적으로 보면 이로운 점이 많다. 그러므로 미국의 동의를 구할 수 있다면 ADB와 AIIB에 동시 가입해 일본과 중국의 중재자 역할로 외교적 위상을 높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AIIB는 중국의 정책금융기관

인프라 건설 참여 문제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프라 건설 참여 문제는 AIIB와 관계없다.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있다면 관련 사업에 참가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실 인프라 건설 참여의 관건은 기술력이지 AIIB 가입 여부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이 주도하는 AIIB 가입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사업을 떠안아야 될 위험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왜냐하면 의사결정 구조, 자본 부담 비율 등 모든 것을 따져봤을 때 AIIB는 국제기구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책금융기관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므로 한국이 AIIB에 가입하는 것은 중국의 정책금융기관에 국제기구라는 명분을 세워주는 것에 불과하다. 국제기구는 기본적으로 다자간 협력과 다자간 의사결정이 기본이다. AIIB가 이런 구도를 갖춘다면 가입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지금 구도 하에선 가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나아가 중국 측에 AIIB가 다자간 기구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역시 AIIB 가입에 대해 신중하고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AIIB와 ADB는 크게 보면 미중의 경제 패권 다툼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미국 주도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대해 중국이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으로 맞서고 있듯 이런 식의 헤게모니 다툼은 반복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문제에 있어 현안에 대해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우리의 입장을 밝혀 미중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번 AIIB가입 문제도 마찬가지다. AIIB의 지배구조와 운영 방식, 가입국의 지분 등을 모두 따져 우리 정부의 입장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또 “미일을 배제한 중국 주도의 AIIB에 한국이 가입하게 되면 중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더욱 독보적인 정치 경제적 지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 정부가 한미동맹을 깰 수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결국 AIIB가입 요청은 정치적 압박 카드다. 쉽게 말해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하라는 것인데 여기에 우리가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이란 큰 틀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물밑 협상 등으로 우리의 입장을 미중에 끊임없이 알려야 한다. 이번 AIIB와 관련 이미 정부 당국자들은 비공식 루트를 통해 우리 입장을 중국 측에 얘기했을 것이다. 이젠 중국의 반응을 기다릴 때다”고 말했다.

구경모 기자

chosim34@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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