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드로즈는 진짜 편합니다. 이 좋은 걸 왜 몰랐지 싶구요. 무족건(무조건) 남성용 드로즈 입으세요. 저렴하고 착용감 좋으며 통풍 잘 됩니다.’
트위터에 ‘여성용 드로즈’, ‘남성 팬티’와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면 쏟아지는 ‘간증’ 글 중 하나다. 삼각형에 레이스나 장식이 달린 스테레오 타입의 여성 팬티에서 벗어나 헐렁해 통풍이 잘 되는 남성 팬티를 입자는 내용이다. 기존의 여성 팬티는 기능보다 미적인 부분에 집중돼 피부 질환이나 질염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트위터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된 ‘남성 팬티의 편안함’은 속옷 시장의 분위기도 바꿨다.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 ‘여성용 드로즈’를 검색하면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이 뜬다. 비비안, 자주(JAJU) 등 브랜드 제품 가운데서도 이런 니즈에 맞춰 출시한 ‘여성용 드로즈’를 흔히 볼 수 있다.
#불편한 건 ‘내 몸’ 아닌 ‘옷’의 문제
속옷 시장의 변화는 사회 전반에 확산된 페미니즘과 ‘탈코르셋’ 영향이라고 보는 분석이 나온다.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몸’을 위해서 속옷을 입는다는 캐치프레이즈가 자리 잡은 배경이다.
유명 속옷 브랜드 관계자는 “디자인이나 몸매 보정용 속옷의 파이가 작아진 건 여러 해 전부터 지속된 흐름이다. 대신 ‘안 입은 것 같은’, ‘몸에 딱 맞는’ 같은 키워드가 광고에서도 먹힌다. 여성들이 자기 몸을 잘 알고 기존 제품의 불편함을 남성 제품을 사용하면서 해소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면서 시장이 바뀐 사례가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불편함의 원인이 ‘내 몸’이 아닌 ‘옷’ 이었다는 글은 온라인상에서 몇 년째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남성용 팬티를 2년째 입고 있는 이현지 씨(26)는 “내 체형이 남들과 달라서 불편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옷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많았다. 온라인 여성의류 쇼핑몰 M 사이즈는 늘 작았고, 브라는 옆구리와 앞가슴이 옥죄고 불편했다. 내 골반이 전방 경사라서 나만 팬티 클러치가 아래로 내려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마른 여성을 기준으로 M 사이즈가 만들어져서, 브라에 장식과 레이스가 달려서, 클러치가 외음부를 충분히 감쌀 만큼 앞으로 올라오지 않아서 불편했던 것이었다”고 전했다.
신소영 씨(29)는 여성용 드로즈를 온라인 펀딩 사이트에서 접했다. 신 씨는 “텀블벅 사이트에서 남성 팬티같이 생긴 제품을 여성용이라고 판매해 호기심에 구매했다. 평소 팬티가 닿는 부분에 아토피가 있었는데 여성용 드로즈를 입게 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커뮤니티나 SNS를 하진 않지만 주변에 홍보해서 같이 입게 된 친구가 많다. 모두가 동일한 경험을 하는 건 아니지만 훨씬 편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요한 건 선택지가 늘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런 불편함을 듣고 직접 여성용 드로즈를 만든 디자이너도 있다. 김수정 퓨즈서울 대표는 젠더리스 의류를 제작하다 여성용 속옷까지 만들게 됐다. 김 대표는 “몸매 보정에 치우친 속옷들로부터 벗어나 기존의 여성 속옷이 변해야 할 부분에 집중하고 싶어 직접 제작하게 됐다. 실제 제작해보니 당연한 듯 입고 지낸 속옷이 엉터리 패턴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됐다. 가장 큰 문제는 ‘클러치의 위치’였다. 클러치(마찌)는 사타구니 부분에 분비물을 흡수할 수 있도록 원단을 한 겹 더 덧댄 걸 말한다. 여성용 삼각 속옷은 이 부분이 외음부보다 상당히 밑에 있어서 대부분의 여성이 분비물이 클러치보다 더 앞쪽에 묻는 걸 경험하게 된다. 그동안 여성 삼각 속옷이 얼마나 여성의 신체를 고려하지 않았는지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김 대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여성용 드로즈를 제작하며 클러치 위치를 앞으로 끌어올렸다. 김 대표는 “공장에서는 아무도 해본 적 없는 패턴과 봉제라 싫어했지만, ‘내 외음부가 이상해서 불편한 줄 알았는데 옷이 이상한 것이었다’며 많은 소비자가 제품에 공감했다. 이제 한 발을 내딛은 기분”이라고 전했다.
#‘핑크텍스’ 논란에 아예 남성용 구매…유의미한 변화에 주목
일각에서는 이런 남자 팬티의 소비가 ‘여성용 드로즈’의 제작과 판매로 이어지면서 ‘핑크텍스’가 발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핑크텍스란 같은 제품이라도 여성용이 남성용보다 더 비싸거나 질이 낮은 경우를 말한다. 주로 미용실 요금, 의류 품질 차이 등이 예시로 사용된다.
이현지 씨는 “몇 년 사이 여성용 드로즈를 판매하는 스타트업 업체가 많아졌다. 두어 개의 여성용 제품을 사서 입어봤지만 남성용 드로즈를 사서 입는 것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소비자의 파이가 크지 않아 단가만 높다고 느꼈다. 결국 종류가 많고 가격이 저렴한 남성용 팬티 가운데 골라서 구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정 퓨즈서울 대표는 “처음에 좋은 품질에 가격이 비싸지 않은 제품이 많아야 핑크텍스 없는 적절한 가격대가 형성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가 생리대다. 제품은 많지만 ‘진짜 여성을 위한 제품이 적절한 가격에 형성됐는가?’라고 물어보면 답은 ‘아니’다. 시중에 저렴한 가격대의 좋은 제품이 많이 등장해서 여성들이 성능에 집중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여전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의 속옷 브랜드 관계자는 “여성이 드로즈나 트렁크를 소비하는 부분이 전체 속옷 시장에서 크진 않다고 본다. 다만 이런 경향이 MZ세대에게서 강하게 나타나는 만큼 앞으로 브래지어나 하의를 제작할 때 디자인보단 편안함에 주안을 둔 제품이 많아질 거라고 추측한다. 평소 ‘여성의 진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고 제품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런 변화가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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