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주 전인, 지난 7일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심리로 열린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공판의 핵심 주제는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파기환송심은 통상 대법원이 정해준 유·무죄의 방향에 맞게 양형만 정하면 되기 때문에 재판이 한 차례 열리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서울고법 형사1부는 벌써 파기환송심에서 8차례 공판을 진행했고, 이달 30일에 결심 공판을 가진다. 파기환송심에서, 결심과 선고까지 10번이나 재판이 열리게 된 이유는 재판부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에 참고하겠다고 밝혔기 때문. 당연히 법조계에서는 ‘집행유예’로 봐주기 위한 명분 쌓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파기환송심에서 갑툭튀 ‘준법감시위’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 씨(개명 전 최순실)에게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하고 대가로 약 298억 원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지난 2017년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징역 5년을 선고하고 구속을 유지했으나, 2심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형량을 줄이며 이 부회장을 풀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8월 2심 판결 중 일부 무죄 부분을 깨고 사건을 유죄취지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부회장은 최소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보다 높은 형을 선고받게 됐다.
그리고 지난 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8차 공판을 열고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한 전문심리위원 3인의 평가의견을 들었다. 혐의와 관계없는 준법감시위는 지난해 10월 파기환송심 첫 공판 때 등장했다.
정준영 재판장이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에 정권유착을 차단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준법감시제도를 주문하자 삼성은 올해 초 김지형 변호사(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했다. 하지만 이를 놓고 ‘효과 여부’를 따지는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재판부는, 재판부가 추천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 특검이 추천한 홍순탁 회계사, 변호인단이 추천한 김경수 변호사(전 대구고검장) 등 3인으로 꾸려진 전문심리위원단에게 준법감시위 평가를 맡겼다.
전문심리위원 3명의 의견은 2 대 1로 나뉘었다. 항목마다 전문심리위원들의 평가가 갈렸지만, 긍정적 의견을 밝힌 의원 2명은 ‘준법감시 조직 강화에 따른 지속가능성, 최고경영진의 준법감시 의지 강화 및 내부감시 기능 강화’ 등을 높게 평가했다.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은 “준법감시위 현재 조직과 관계사들의 지원 및 회사 내 준법문화 여론 등을 지켜본다면 지속가능성은 현재로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고, 김경수 변호사는 “최고경영진에 특화한 준법감시 체계로 준법의지를 강화하거나 유지한다. 내부 감시 조직도 위상과 권한이 강화됐다”고 봤다.
하지만 홍순탁 회계사는 “준법 위반 모니터링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단적인 예로 삼성생명과 삼성SDS의 부당 내부거래가 기관으로부터 제재를 받게 됐는데도 내부 준법기구는 작동하지 않았다”며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죄질 아니라 준법위를 양형 사유로 삼는 것은 문제”
전문심리위원단의 진술로 재판은 이제 결심공판만 남겨두게 됐다. 지난 7일 공판 때 박영수 특검 측은 재판부에 내용파악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다음 기일에 질문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가 거절했다. 결심은 오는 30일에 진행되는데, 벌써부터 법원에서는 ‘집행유예’를 예상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재판부는 앞선 공판 과정에서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이 입증될 때 양형 요소로 고려하겠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앞으로 기업 활동 과정에서의 준법 여부가 이 부회장의 감형 사유가 되는 것은 너무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법원 관계자는 “법원은 범죄 혐의의 유·무죄, 또 유죄의 경우 죄질의 경중을 따지는 곳 아니냐”며 “이미 유무죄에 대한 판단을 대법원에서 결정해서 내려줬으면 이에 대해 죄질의 경중만 따지면 되는데 이렇게 기업의 시스템을 양형 사유로 삼겠다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잘잘못을 따져야 할 법정에서 특정 기업에 ‘재발 방지 장치를 만들라’는 얘기가 재판부에서 먼저 등장하는 것부터가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고등법원 관계자는 “기업이 먼저 준법 관련 기구를 만들어 놓고 운영 중이었다면 ‘재발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했다’고 보고 양형에 넣을 수도 있고 이는 이상해 보이지도 않는다”면서도 “근데 이번 삼성 재판은 오히려 재판부가 먼저 준법감시제도를 만들라고 한 것 아니냐. 너무 이례적이고 그 방향 역시 ‘형 낮추기’가 목적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영수 특검 역시 이 부회장 사건을 맡은 정 부장판사에 대해 지난 2월 기피 신청을 했으나 기각된 바 있다. 특검은 △정 부장판사가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원회의 운영 성과를 이 부회장에 대한 양형 조건으로 고려하겠다는 뜻을 밝힌 점 △특검이 증거로 신청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 기록을 채택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불공평한 재판의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기피 신청을 맡았던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배준현)는 “정 부장판사가 피고인 측에 유리한 예단을 가지고 소송지휘권을 부당하게 자의적으로 행사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오는 30일 결심을 거쳐 내년 1~2월 중 열릴 선고 때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가 나올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이미 선고받은 이재용 부회장은 유죄 대목이 늘어났기 때문에 징역 3년 이상이 되면 실형밖에 방법이 없다”며 “재판부가 유죄가 늘어난 대목과 준법감시위 평가를 이유 삼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고 내다봤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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