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셀트리온에서 개발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항체치료제가 12월 1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사용 승인을 받았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치료 목적으로 사용 승인을 받은 것은 GC녹십자의 혈장치료제에 이어 셀트리온이 두 번째. 항체치료제로는 처음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 2월 초 치료제 개발에 돌입한 지 불과 10개월 만에 거둔 성과다.
셀트리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가운데 하나다. 바이오 불모지였던 한국 최초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에 성공했다. 올해 셀트리온그룹의 매출은 4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며 시가총액은 47조 원(2020년 12월 18일)에 달한다. 이런 셀트리온의 여정과 조직문화를 다룬 책 ‘셀트리오니즘’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셀트리오니즘: 셀트리온은 어떻게 일하는가
전예진 지음, 스마트북스
416쪽, 1만 8000원
이 책 ‘셀트리오니즘’에 따르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처럼 속도에 강한 것은 셀트리온의 문화다. 의사결정과 일 처리 과정이 빠르고 단순하며, 한번 정한 타임라인은 절대 바꾸지 않는다는 것. 이를테면 특허 출원을 1초라도 빨리 하기 위해 연구원들이 치료제를 개발하는 동안 법무팀을 특허를 신청하고 임상팀은 임상 준비를 시작한다. 해외 제약사들은 연구팀이 자료를 갖다 주면 그때부터 특허 신청 서류를 만드느라 한 달이 걸리지만, 셀트리온에서는 연구소와 법무팀이 계속 소통하기 때문에 보고서가 나온 지 30분 만에 특허를 신청할 수 있다.
K-바이오의 선두주자 셀트리온을 이야기할 때 서정진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서 회장은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시작해 오늘의 셀트리온을 일구었다. 대우가 무너지면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넥솔을 창업했고, 거기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바이오 사업이었다. 미국 백신 개발사 백스젠을 설득해 합작회사 셀트리온을 세웠지만 백스젠의 에이즈 백신 개발이 실패하면서 회사는 파산 위기에 직면한다. 그때 서정진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012년 세계 최초의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개발에 성공한다.
그를 비롯한 창업 멤버 모두 대우자동차 출신으로 제약, 바이오는 전혀 몰랐는데, 어떻게 이런 성공을 거뒀을까?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새롭게 해석해 기준을 만들어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일단 하기로 했으며 ‘될지 안 될지’ 미리 재지 않고 우직하게 직진했고, 그게 막히면 샛길을 만들어 돌파했다. 램시마의 EMA(유럽의약품청) 허가를 앞두고 임상3상 분석법이 잘못됐다고 지적받자, 6개월이 걸리는 수정을 2개월로 줄여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인력과 장비를 세 배로 투입해 3교대로 24시간 일한 것이다. 이들은 제약·바이오 경험이 없었기에 오히려 새로운 시각으로 보았으며, 경영의 핵심은 어느 분야에나 통했다.
몇 년 전 셀트리온은 과장, 차장급 직원들이 스톡옵션으로 수십억 원을 벌어들여 큰 화제가 됐다. 스톡옵션이 과하다고 주주들이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고, 다른 기업에서는 스톡옵션 행사 후 인재가 떠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그럼에도 셀트리온은 스톡옵션을 계속 고집한다.
“스톡옵션은 임원과 직원 간 위화감을 없애고 사기를 높여주려고 도입한 겁니다. 임원들만 높은 연봉을 받는다면 직원들이 일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까요? ‘내가 저들 잘살게 하려고 뼈 빠지게 일하네’ 하는 자괴감이 들 겁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절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본문 44쪽
천하의 서정진도 한때는 회사 상황이 너무 어려워 세상을 등질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때도 직원들 월급은 체불하지 않았다. 급여는 직원들과의 약속이고,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영자들과 달리 서 회장은 직원들에게는 “맡은 일만 제대로 해라. 돈은 내가 벌어오겠다”고 한다.
사실 직장인에게는 급여도 중요하지만 ‘사기’가 더 크게 좌우한다. 월급이 좀 적더라도 편하게 의견을 낼 수 있고, 나를 믿어주고, 내가 신나게 일할 수 있다면, 아마 많은 월급쟁이들이 그런 직장을 택할 것이다. 서 회장은 그걸 알기에 구내식당에 신경 쓰고, 회식비를 넉넉히 주고, 직원들 밥을 챙겨 먹인다. 일을 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직원들 스스로 일을 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어쩌면 기업이 가장 바라면서도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유럽에 파견된 셀트리온 직원들에게 코로나19로 인해 철수 명령을 내렸을 때 “매출에 차질이 생겨서 안 된다, 개인위생 철저히 잘하고 조심하겠다”며 철수를 거부했다는 일화는 여러모로 생각해볼 만하다.
개인적으로 셀트리온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역대급 ‘망작’으로 꼽히는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에 왜 투자했나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영화를 제작한 배우 이범수가 서정진 회장의 고향 후배라고 한다.
“직원들에게 반드시 세 번 물어봅니다. ‘정말 하고 싶은가?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나? 실패하더라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하면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뒤도 안 돌아보고 하라고 합니다.” -본문 386쪽
이범수에게도 세 가지를 물었는데 모두 그렇다고 해서 투자했다는 것이다.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조선 거상 임상옥의 말처럼 진짜 기업가는 실패할 것을 알고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셀트리온의 ‘핵심’ 서정진 회장은 올 연말 은퇴를 선언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비전으로 회사를 이끈 그가 없는 셀트리온은 어떨까. 스티브 잡스 이후의 애플처럼 여전히 성공하는 기업으로 남을 수 있을까.
‘셀트리오니즘’은 2000년 창업부터 2020년 12월에 이르기까지 서정진과 셀트리온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도전과 실패, 위기와 성공, 그리고 또 다른 도전.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그들의 여정을 쫓아가다 보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저자는 한국경제신문 바이오헬스부 팀장으로 2년 동안 서정진 회장과 그의 가족, 친구, 전·현직 임원들을 인터뷰하고, 인천 송도의 연구개발센터·공장, 유럽 판매 지사와 현지 병원까지 탐방했다. 그리고 셀트리온이 지난 20년간 구축해온 문화와 성공의 핵심을 ‘셀트리오니즘’이라고 이름 붙였다.
셀트리온이 성공한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방법으로 끝까지 걸어간 것이다. 셀트리온은 때로 비정상적으로 생각했고 비합리적 결정을 내렸으며 비상식적 투자를 일삼았다. 이런 선택은 예상치 않는 행운과 기회를 가져다주었고 회사가 한 단계씩 도약할 때마다 반복됐다. 나는 그들의 사고방식, 가치관, 비전, 문화 같은 무형의 요소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셀트리온에 내재되어 있는 핵심 요체를 ‘셀트리오니즘’이라고 명명했다. -본문 18쪽
바이오헬스 산업에 관심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시장 동향을 알 수 있고, 경영에 관심 있다면 조직문화와 리더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제 막 주식에 뛰어든 초보 투자자들에게 ‘강력 추천’ 한다.
김남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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