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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흥망] 20조 자산에 63빌딩 올리고도 사라진 신동아그룹

IMF 위기 넘겼지만 오너 구속되면서 그룹 몰락…최순영 전 회장은 현재 기독교횃불재단 활동

2020.12.17(Thu) 18:29:18

[비즈한국] 밀가루로 시작해 총자산 20조 원을 보유했던 신동아그룹은 동아제분, 대한생명 등 알짜배기 계열사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당시 대기업들이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늘리던 것과 다른 행보였다. 또 당대 가장 높은 63빌딩을 소유하며 그룹의 위상을 널리 떨쳤다. 그런 신동아그룹도 외환위기와 함께 침몰했다. 당시 대부분 기업이 문어발식 확장으로 인해 만기 도래한 어음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는데, 신동아그룹은 왜 몰락했을까?

 

#밀가루 일궈낸 신동아그룹

 

신동아그룹 창업주 최성모는 190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여러 사업을 하다가 남한으로 내려왔다. 사업 경험이 많았던 그는 남한에서도 호텔 경영, 중개무역, 고무공업, 식료품 납품 등 여러 사업을 이어갔다. 최성모는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1953년 조선제분(닛신제분)을 윤석준 씨와 함께 불하받는다. 조선제분이 신동아그룹의 시초다. 

 

2000년 분당에 위치한 할렐루야 교회에 예배보러 나온 최순영 전 신동아 회장(왼쪽)과 부인 이형자 씨. 사진=임준선


이듬해 8월 최경영권 분쟁 끝 조선제분 경영권을 윤석준에게 넘겨준다. 이후 1955년 대농그룹 박용학 창업주와 함께 부산수산냉장을 공동으로 경영했고, 같은 해 4월 대농산업 창업을 함께했다. 이들은 고려수산까지 공동으로 경영했다. 

 

한편 조선제분은 한국저축은행을 인수하려다 실패하고 재정난이 겹치며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조선제분이 은행관리를 거치는 등 위기에 몰리자 최성모가 1964년에 인수한다. 최 씨는 부산수산냉장을 갖고 나오며 박용학 씨와의 관계도 정리한다. 

 

최성모는 조선제분의 사명을 동아제분으로 변경하고 2년 만에 정상화한다. 이어 본격적으로 사세 확장에 돌입하는데, 그 계기는 금융업에 진출하면서다. 1966년 신동아화재보험(현 한화손해보험)을 박용학의 도움을 받아 인수한다. 국내 수출입업계가 호황을 맞아 성장세를 타던 업종이었다. 

 

이후 덕수제분을 인수해 동아제분과 합병했다. 1969년 5월에는 심각한 경영난을 겪던 대한생명과 계열사인 대한프라스틱, 공영화학을 인수하며 금융업으로 사세를 더욱 확장해 나갔다. 이렇게 신동아는 그룹의 면모를 갖췄다.

 

최성모는 1971년 한국콘테넨탈식품, 1973년 태흥산업, 대성목재, 대성메타놀을 인수‧설립하며 그룹을 확장시켰다.

 

#밀가루 재벌 1세대가 지고…2세 경영 시작

 

최성모 회장의 장남 최순영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후 신동아그룹으로 입사하지 않고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1963년 마대자루 제조업체인 ‘동명마방’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설립했고, 1966년 ‘제일모방’을 창업했다. 하지만 둘 다 실패했고, 1968년 아버지의 권유로 동아제분 상무로 입사한다. 

 

그는 1969년 최성모 회장을 따라 대한생명 인수에 힘썼다. 1976년 최성모 회장이 사망하자 자연스럽게 최순영 사장이 신동아그룹을 이끌게 된다. 최순영 회장은 1987년 인수한 한일약품을 제외하고 최성모 회장이 운영하던 계열사들을 착실히 키워나갔다.

 

젊은 시절의 최순영 신동아 회장. 사진=비즈한국 DB


신동아그룹의 성장세는 63빌딩을 통해 엿볼 수 있다. 1980년 착공해 1985년 완공된 63빌딩은 2002년까지 최장 기간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이 건물을 신동아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던 대한생명이 소유했다. 

 

1999년 신동아그룹은 19조 7000억 원의 총자산과 9조 2000억의 매출을 기록하던 재벌그룹이었다. 그 가운데 대한생명이 보유한 자산이 14조 6800억 원에 달했다. 유동 가능한 자산도 3조 5000억 원으로 안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룹이 망하기 전까지 업계 3위를 유지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오며 많은 대기업이 구조조정, 계열사 줄이기를 통해 몸집을 줄이기 시작했다. 만기 도래한 어음을 처리할 수 없는 기업들은 부도를 맞았다. 이 상황에서 신동아그룹 22개 계열사는 정상 영업했다. 

 

하지만 1999년 2월 11일 최순영 회장이 외화밀반출, 계열사 불법 대출로 구속된다. 1996년 미국에 유령회사를 세워 국내 4개 은행으로부터 1억 8500만 달러를 대출받고 2000만 달러만 정상 사용했다는 혐의였다. 

 

#갑자기 찾아온 그룹 해체

 

2009년 월간조선과 인터뷰한 최순영 회장은 “구속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러시아 무역 전문가로 자처한 김 아무개 씨를 채용했는데, 그가 유령회사를 상대로 가짜 서류를 만들어 오일거래를 한 것처럼 위장해 650만 달러를 빼돌렸다. 하지만 그 돈은 전부 국내로 반입됐으며 개인적으로 연대 보증한 상태라 전액 상환해 전혀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1983년 대한생명 사옥으로 건설되던 63빌딩. 사진=연합뉴스


최순영 회장이 구속된 다음날 금융감독위원회는 대한생명 자산‧부채 특별검사를 실시했고, 그해 9월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대한생명의 부채가 자산을 2조 9080억 원을 초과해 정상적인 경영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최순영 회장은 구속된 상태라 손도 써보지 못하고 그룹 주요 계열사가 분리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대한생명에 3조 5000억 원이라는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대한생명이 소유한 신동아화재 주식(66.3%)과 63빌딩도 함께 묶였다. 2003년 10월 한화그룹이 대한생명과 신동아화재를 모두 인수해 한화생명과 한화손해보험으로 사명을 바꾼다. 그룹의 모태인 동아제분도 사조그룹에 인수되면서 신동아그룹은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최순영 전 회장은 1999년 10월 구속 8개월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다가 2005년 1월 다시 구속됐다. 2006년 7월 최순영 전 회장은 징역 5년과 추징금 1574억 원을 선고 받아 복역하다가 그해 9월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했고, 200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최 전 회장은 2020년 기준 추징금 1073억 원을 체납해 고액체납자 4위에 이름이 올랐다. 소득이 없고 돈을 낼 여력이 없다는 것이 체납 이유다.

 

최순영 전 회장은 현재 부인 소유의 집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기독교선교횃불재단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동민 기자

workhard@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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