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0일 있었던 CJ그룹의 연말 임원 인사에서 이재현 회장의 복심으로 꼽히는 허민회 CJ ENM 대표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CJ CGV로 자리를 옮긴 것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이번 인사에 대해 CJ그룹은 “재무통인 허민회 대표가 CJ CGV 재무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구원투수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이재현 회장의 외동딸 이경후 CJ ENM 부사장과 외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의 후계 과정 실무 총책을 맡았고 이 회장 사면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까지 받는 허 대표이기에 그룹의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CJ CGV의 연결기준 매출은 1조 9422억 원으로 3조 7897억 원을 기록한 CJ ENM의 절반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3분기까지 양사의 누적 매출을 비교해 보면 CJ CGV는 CJ ENM의 6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아 멀티플렉스를 찾는 관객의 발이 뚝 끊긴 CJ CGV로 그룹의 최고 실세 임원이 자리를 옮기게 됐다는 점에서 논란이 시작되고 있다.
먼저 CJ ENM이 운영하는 음악전문 채널 엠넷의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순위 조작’ 사건으로 뭇매를 맞자 지난해 12월 말 회사 대표로서 공개 사과까지 해야 했던 허민회 대표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해석이 대두된다.
이러한 해석을 내놓는 익명의 재계 관계자들은 “프로듀스 101 시리즈 사건은 회사 대표에게 관여 여부를 떠나 용퇴를 압박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며 “다만 허민회 대표가 이재현 회장의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용퇴 카드 대신 CJ ENM 대표 교체 등 실추된 이미지 회복을 위한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결국 그의 CJ CGV 행이 결론 난 것 아니겠나”라고 입을 모았다.
일각에선 허 대표의 CJ CGV행은 방송·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했던 이미경 부회장의 복귀가 기약 없이 늦어지는 대신 이 회장의 딸인 이경후 부사장이 고모가 총괄하던 사업 분야 전면에 서서히 나서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결정이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미경 부회장이 박근혜 정부와의 마찰로 일선에서 물러난 후 조카인 이경후 상무는 이번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CJ ENM에서 차곡차곡 해당 사업과 관련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허민회 대표는 CJ ENM 대표 재직 당시 이경후 부사장이 근무한 브랜드전략 파트를 직속으로 두면서 사실상 경영수업 스승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경후 부사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가자 허 대표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CJ CGV의 재무 개선을 위해 자리를 옮기게 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CJ CGV의 상황은 최악이다. 지난 11월 나이스신용평가는 CJ CGV의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A-로 내리는 등 올해에만 2단계 강등했다. CJ CGV의 올해 3분기 말 연결기준 부채비율도 1000%를 훌쩍 넘고 있다. CJ CGV의 3분기까지 연결기준 누적 매출액은 44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70%나 급감했고 누적 영업손실만 2990억 원에 달하고 있다.
CJ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기존 CJ CGV 대표를 경질하고 그 외 다른 임원들에 대해선 해임 대신 전원 1년 유임을 결정한 상태다.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그룹 재무통인 허 대표에게 CJ CGV의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난제를 맡겨 경과를 지켜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허 대표로서도 난국을 타개하는 것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허민회 대표의 이번 인사를 둘러싼 뒷말이 무성한 배경엔 그가 지금까지 수행했던 막중한 역할과 행보가 자리하고 있다. 허 대표가 CJ그룹의 실세 임원으로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시기는 2013년 7월 이재현 회장이 조세포탈과 횡령으로 구속되면서 그룹 내 비상경영위원회가 등장하면서부터다. CJ그룹은 당시 비상경영위원회 멤버였던 그룹 지주회사인 CJ(주)의 이관훈 사장 아래 경영총괄부문을 신설하면서 실무 임원으로 허 대표를 발탁했다.
허 대표는 같은 해 CJ(주) 경영총괄 부사장이 됐고 다음 해 ‘이재현 회장 구하기’ 최일선에서 활동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CJ ENM은 2014년 8월 광복절을 앞두고 독도에서 열린 ‘보고 싶다 강치야! 독도 콘서트’에 협찬했고, CJ ENM의 방송 채널인 tvN이 이 행사를 후원했다. 그런데 정작 행사에는 CJ ENM이나 tvN 대표나 임원이 아니라 당시 CJ(주) 경영총괄 부사장인 허 대표가 참석했다.
CJ그룹은 “검토를 통해 다양한 행사들에 협찬했고 당시 행사는 독도 사랑이라는 애국 차원에서 협찬과 후원을 결정했다”며 “허 대표가 독자적인 판단에서 참석했지만 특정 목적으로 참석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아울러 허 대표는 이 회장의 자녀들에 대한 경영권 승계 작업의 통로로 거론되는 계열사 대표를 맡아 관련 실무를 책임졌다. 독도 콘서트가 열렸던 2014년 12월 허 대표는 CJ올리브네트웍스의 총괄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당시 CJ그룹의 시스템통합(SI) 계열사 CJ시스템즈와 드러그스토어 기업인 CJ올리브영을 합병해 출범한 회사로 허 대표는 합병 법인의 초대 대표였다. 이재현 회장은 CJ올리브네트웍스를 통해 두 자녀에게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실탄을 제공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받았다.
허 대표가 CJ올리브네트웍스 대표가 된 같은 달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수감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이 회장은 자신의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11.3%를 당시 24세로 그룹 밖에 있었던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에게 증여했다. 이 회장은 2015년 12월 이경후 CJ ENM 부사장에게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4.54%를 증여했다.
지난해 CJ올리브네트웍스는 아이티(IT) 사업부를 다시 떼어내면서 CJ올리브영을 출범시켰다. CJ올리브영의 대주주는 이 회장의 두 자녀다. CJ그룹은 CJ올리브영의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증시에 입성하게 되면 이 회장의 두 자녀는 막대한 차익을 얻게 될 전망이다.
허 대표는 2016년 5월부터 CJ오쇼핑 대표를 맡아 2018년 CJ ENM과의 합병을 주도했고 합병 CJ ENM의 대표를 최근까지 역임했다. 이를 통해 CJ ENM은 그룹의 모태인 종합 식품회사 CJ제일제당, 물류 공룡 CJ대한통운과 함께 그룹의 3대 축으로 부상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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