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중국의 아마존’으로 불리며 무서운 시장 지배력과 기술력, 혁신성으로 맹위를 떨치던 알리바바가 중국 정부와 갈등을 빚으며 위기에 빠졌다. 중국 정부에 충성도가 높은 중국 10대들 사이에서도 알리바바 마윈 전 회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 공략도 막강한 기존 경쟁자와 참신한 신예들 사이에서 순조롭지 못하다. 한때 자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국 정부가 대놓고 밀어주던 알리바바가 어쩌다 이런 총체적 난국에 빠졌을까. 그 중심에는 중국 정부를 중심으로 세계 대전 기운마저 감돌고 있는 ‘디지털 화폐’가 있다.
# ‘알리바바 죽이기’ 나선 중국 정부, 왜?
지난달 초 알리바바의 핀테크 자회사인 앤트그룹의 초대형 기업공개(IPO)가 성사를 눈앞에 두고 중국 정부의 승인 거부로 무산됐다. 마윈 전 알리바바 회장이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 금융 서밋’에서 당국의 금융 정책에 대해 관리와 간섭이 지나치다는 점을 지적한 직후 최종 승인이 거절된 점이 공교롭다. 마윈 전 회장은 앤트그룹의 지분 8.8%를 가지고 있다.
앤트그룹의 ‘알리페이’는 ‘위챗페이’와 함께 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국민 결제 솔루션’이다. 이런 앤트그룹이 상장까지 하게 되면 그 영향력을 전 세계로 확장하는 발판이 되고, 국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텐데 중국 정부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중국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로 유명한 마윈 전 회장의 비판적인 연설이 너무 괘씸해서? 한때는 정부가 적극 비호해주던 알리바바가 이제는 너무 커버려 길들여야 해서? 둘 다 맞다. 정부의 위상을 중요시하는 중국에서 당의 권위에 도전하려 든다면 어떤 기업이든 손봐줄 태세다.
중국은 이와 함께 인터넷 금융 중계 플랫폼이 소액대출 총액의 2%만 조달해도 되는 현행법을 30%로 크게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앤트그룹을 겨냥한 규제의 칼날을 갈며 알리바바를 옥죄고 있다.
하지만 알리바바가 당국의 ‘총애’를 잃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는 ‘디지털 화폐’가 있다.
현재 글로벌 기축 통화는 미국 달러다. 따라서 전 세계 화폐 시장 패권도 미국이 가지고 있으며 이는 쉽게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등장으로 암호화폐 혹은 가상화폐로 불리는 신세계가 열렸다. 만약 이러한 디지털 화폐가 실물 경제로 들어와 기존 화폐를 대체하는 날이 오면 판이 뒤집어질 수 있다. 이미 미국과 함께 G2 경제 대국인 중국은 글로벌 화폐 시장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디지털 화폐 주도권 선점에 가장 적극적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인 ‘디지털 위안’을 지금의 달러와 같은 글로벌 기축통화로 만들어 미국으로부터 화폐 패권을 뺏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복수의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오는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 전까지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자국 뿐만 아니라 국가 간 결제도 가능하도록 서두를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홍콩금융관리국과 협업을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총 33억 원 상당의 디지털 위안을 쑤저우 시민들에게 배분해 이용 행태를 분석했다. 오프라인 이용 행태를 보기 위해 쑤저우시에 있는 1만여 매장들과 협업했으며, 온라인 부문에서는 자국 2위 이커머스 기업인 ‘징둥닷컴’과 협업했다.
# 핀테크·블록체인 거물 된 알리바바 ‘호랑이 새끼 키웠나’
이커머스 1위 기업인 알리바바를 두고 굳이 징둥닷컴과 손잡은 것만 봐도 알리바바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견제를 엿볼 수 있다. 알리바바는 중국인 5명 중 3명이 이용하는 ‘국민 이커머스’일 뿐만 아니라, 10억 명 이용자를 보유한 알리페이의 주인이다. 게다가 암호화폐의 근간 기술인 블록체인 관련 특허 보유 수는 전 세계 1위로, 2020년 4월 기준 2300개가 넘는다. 여러모로 디지털 위안의 이커머스 적용 가능성 연구 파트너로 최적이다. 초대형 이커머스 마켓, 핀테크 역량, 글로벌 톱 블록체인 특허 역량을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대목이 중국 당국의 견제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폐와 금융에 관한 주도권은 국가 권력의 핵심이다. 그런데 민간 기업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디지털 금융 기술인 ‘핀테크’가 정부와 제도권 금융 기업들을 중심으로 판이 짜인 기존의 화폐와 금융 시스템을 위협한다. 이와 함께 비트코인 열풍도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 세계 정부들은 자국의 기업 경쟁력을 위해 핀테크 산업과 암호화폐 관련 블록체인 산업 육성에 나서야 하면서도, 자칫 금융과 화폐의 패권을 민간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딜레마를 갖고 있다. 특히 민간 기업에 대한 통제가 엄격한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이커머스를 넘어 핀테크와 블록체인까지 거물이 된 알리바바를 보면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는 위기의식을 갖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마윈 전 회장은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당국의 금융 정책에 자꾸 시비를 건다.
중국 정부가 디지털 위안의 잠재적 경쟁자인 비트코인을 적극 배척하는 가운데 알리바바의 관련 행보도 눈길을 끈다. 알리바바는 그간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기도 하고 알리페이 내 비트코인 거래를 금지하는 등 당국의 기조에 따르는 것 같다가도, 지난 11월 미국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비트코인 보상 쇼핑앱 ‘롤리’와 제휴를 맺었다. 이런 행보들은 중국 정부의 견제를 부채질하는 꼴이다. 최근 전 중국인민은행 부행장은 광저우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디지털 위안화 출범 이후 앤트그룹 등 제3자 결제 서비스 역할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알리바바를 대놓고 겨냥했다.
# 중국 정부와 이를 편드는 젊은 세대에 공격받는 알리바바의 운명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과 문화 콘텐츠를 통제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글로벌 상식과 충돌할 때가 있다. 중국 정부와 맞서는 마윈 전 회장의 혁신적 마인드에 젊은 세대들은 열광할 법도 한데, 실상은 그 반대다. 그만큼 중화사상에 젖은 중국인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정부에 충성하는 중국의 10대 ‘링링허우’ 세대 사이에서 마윈 전 회장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마윈 전 회장은 지난 5월 링링허우 세대의 인기 동영상 사이트 ‘비리비리’에 비즈니스의 가치에 대한 연설을 올렸다가 ‘착취하는 자본가’라는 비난을 받았다. 또 마윈 전 회장이 지난 3월 미국에 마스크를 기부한 것을 두고 10대들로부터 ‘매국노’라는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다.
중국 정부는 물론 알리바바의 미래 잠재 고객인 중국 10대들까지 더 이상 자신들의 편이 아닌 상황에서 알리바바는 전 세계로 시장 확대가 시급하다. 롤리와의 제휴도 중국 이외의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알리바바의 글로벌 시장 공략도 순조롭지 못하다. 최근 알리바바는 벨기에에 새 물류센터를 짓는 등 유럽 공략에 나서고 있는데 아직 미미한 시장 점유율로 아마존의 시장 지배력에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 또 동남아 시장에서는 현지 특성에 최적화된 전략으로 강세를 보이는 신흥 이커머스 기업 ‘쇼피’에 밀렸다.
오늘날 알리바바가 있기까지 거대한 중국 인구가 기반이 되어줬다는 면에서, 또 중국 정부의 민간 기업에 대한 입김이 그 국력만큼 세다는 점에서, 중국 전체에 밉보인 알리바바는 이 난국을 고통스럽게 헤쳐나가야 할 상황이다. 만약 알리바바가 중국 정부와 정면으로 대결하겠다면 민간 디지털 화폐 패권장악, 즉 지금까지 알리바바가 핀테크와 블록체인 역량을 준비해 온 것을 기반으로 디지털 위안에 맞서 글로벌 암호화폐 주도권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도 그려볼 수 있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최소한 물밑에서라도 국가 주도의 디지털 화폐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디지털로 무대가 옮겨질 이 ‘화폐 전쟁’은 국가 간 싸움일 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 간의 패권 다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자국 기업을 정부가 밟으려는 황당한 그림도 가능하다. 앞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펼쳐질 글로벌 디지털 화폐 전쟁에서 갖은 견제 속에서도 막강한 잠재력을 가진 알리바바가 어떤 복병이 될지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강현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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