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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12월 21일 목성과 토성의 '우주쇼'가 펼쳐진다!

800년 만의 '대근접'…두 행성의 만남 덕분에 지구에 생명 탄생

2020.12.14(Mon) 10:46:47

[비즈한국] 요즘 해가 지고 나서 노을 진 서쪽 하늘을 잘 바라보면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밝은 별 한 쌍이 보인다. 밝게 빛나는 이 두 별은 사실 별이 아니라, 태양계에서 가장 덩치 큰 두 행성 목성과 토성이다. 이 두 행성은 지구의 하늘에서 워낙 밝게 보여서 망원경 없이 맨눈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다. 밤하늘과 친해지는 연습을 하기 딱 좋은 천체다. 

 

그런데 요즘 매일 저녁 하늘을 꾸준히 쭉 챙겨본다면 더 흥미로운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목성과 토성이 하늘에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 두 행성은 지구의 하늘에서 한자리에 모이는 대근접(Great Conjunction) 우주쇼를 보여줄 예정이다. 

 

이번 연말 하늘에서는 너무나 특별한 우주쇼가 벌어진다! 2000년 전 베들레헴에 떠올랐던 밝은 별의 정체, 그리고 태양계를 완성한 놀라운 순간이 다시 재현된다! 과연 목성과 토성, 두 행성의 만남으로 인해 우주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이번 두 행성의 멋진 만남은 무려 800년 만에 찾아온 아주 귀한 공연이다. 하지만 이 두 행성의 만남은 단순히 아름다운 구경거리일 뿐 아니라, 실제로 우리 지구와 우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들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두 행성의 이런 위대한 만남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태양계도, 오늘날의 지구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과연 이 두 행성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게 되는 걸까? 또 둘이 만날 때마다 우주에서는 어떤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800년 만에 찾아온 우주쇼를 볼 수 있는 기회!

 

지구의 하늘에서 목성과 토성 두 행성이 점점 가까이 맞붙는다고 해서 실제로 두 행성이 정말 부딪쳐 충돌하는 건 아니다. 실제론 두 행성의 궤도가 아주 멀찍이 벌어져 있다. 다만 지구에서 봤을 때 목성과 토성이 같은 방향에 놓이면서, 지구의 하늘에서 두 행성 사이 간격이 점점 좁아질 뿐이다. 

 

목성은 매 11년 10개월에 한 번씩 태양 주변 궤도를 돈다. 토성은 그에 비해서 약 2.5배 더 긴 29년 5개월 정도의 주기로 태양 주변을 돈다. 대략 목성이 다섯 바퀴를 공전하는 동안 토성이 두 바퀴를 도는, 약 2대 5의 궤도 공명을 이루고 있다. 태양계 더 안쪽 궤도를 도는 목성이 토성보다 더 빠르게 궤도를 돈다. 그래서 매번 더 빠르게 공전하는 목성이 느린 토성을 앞지르면서, 지구의 하늘에서 목성과 토성이 우연히 비슷한 방향에 놓이는 시기가 찾아온다. 두 행성의 공전 주기로 계산해보면 대략 20년에 한 번씩 이 두 행성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탈리아 알프스산맥에서 2020년 10월에 촬영한 사진으로, 근접한 목성과 토성 그리고 옆의 은하수의 아름다운 모습을 배경으로 한 쌍의 커플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Giorgia Hofer


20년에 한 번이라면 생각보단 그렇게 아주 드문 현상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2020년 12월 21일에 찾아오는 두 행성의 만남이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일단 이번 조우에서 두 행성은 다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가까이 접근한다. 두 행성이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12월 21일 저녁에는, 지구의 하늘에서 겨우 0.1도 간격을 두고 두 행성이 붙게 된다. 지구의 하늘에서 보이는 보름달 원반의 크기가 0.5도 정도, 쭉 뻗은 팔 끝의 새끼 손가락 너비 정도인데 그 좁은 간격의 5분의 1이나 되는 아주 좁은 간격을 두고 함께 맞붙게 된다. 

 

이 정도면 맨눈으로 봤을 때 두 행성이 거의 한 점으로 뭉뚱그려져 보일 것이다. 시야가 좁은 망원경으로 보더라도, 두 행성을 한 시야 안에서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멋진 기회다. 망원경 하나로 태양계에서 가장 큰 두 행성 목성과 토성, 심지어 각 행성 곁을 도는 위성들까지 한꺼번에 담는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까? 

 

이번 대근접 순간, 목성과 토성을 망원경으로 바라본다면 이런 멋진 장면을 한 앵글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망원경의 좁은 시야에 두 행성과 그 주변 위성이 모두 담길 만큼 아주 가까이 접근한다. 사진=SkySafari app


가장 최근에 목성과 토성이 이렇게 가까이 접근했던 건 무려 400년 전인 1623년 7월 16일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에는 두 행성이 태양 쪽 방향에서 근접했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제대로 관측할 수 없었다. 이번 2020년의 대근접처럼 두 행성이 아주 좁은 간격으로 만나면서, 또 태양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가장 마지막 시기는 그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바로 1226년 3월 4일, 무려 800년 전이다. 

 

즉 이번 2020년 12월 겨울 저녁 목성과 토성의 만남처럼 두 행성이 한 별처럼 겹쳐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달라붙는 일은 거의 800년 만에 찾아온 아주 소중한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번 12월 21일 저녁, 태양계가 선사하는 이 멋진 우주쇼를 꼭 많은 사람들의 눈과 카메라로도 직접 담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베들레헴에 나타난 밝은 별의 정체는? 

 

그런데 이런 행성들의 만남은 놀랍게도 인류의 역사에도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성경 마태복음에 따르면, 서기 0년 오늘날의 요르단 서부에 위치한 베들레헴이란 작은 마을의 하늘 위로 아주 밝은 별이 나타나며 예수의 탄생을 축복했다. 일명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부르는 이 천문 현상이 동방박사들을 인도해주었다고 한다. 이 '베들레헴의 별'이 목성과 토성의 대근접 현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천문학자 케플러는 베들레헴의 별의 정체가 그 당시 하늘에서 벌어진 목성과 토성의 대근접 현상이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이미지=science photo library RM

 

역사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은 당시 베들레헴에 떠올랐던 이 밝은 별의 정체를 두고 오랫동안 다양한 연구를 했다.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기원전과 기원후로 구분하는 오늘날의 역법 체계는 525년 사제 디오니시우스가 예수의 탄생일을 기준으로 정립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디오니시우스는 기원전 1년과 기원후 1년 사이에 0년을 두지 않는 실수를 했고, 또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재위 기간을 4년 누락하리는 실수도 저질렀다. 그래서 현재 쓰고 있는 달력 날짜와 실제 고대의 역사가 벌어진 시점 사이에는 5년 정도의 오차가 발생한다. 

 

그래서 실제 베들레헴의 별이 등장한 시기는, 오늘날의 달력 기준으로 본다면 정확히 0년이 아니라 대략 기원전 5년 즈음이 되도록 보정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시기에 베들레헴의 별처럼, 동쪽 하늘을 밝게 비추었던 천문 현상이 있었을까?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는 성경에 등장하는 이 베들레헴의 별의 정체가 바로 이 시기에 벌어진 태양계 행성들의 근접 현상이었을 것이란 추측을 내놓았다. 

 

케플러는 태양계 행성들의 움직임에 관해서는 단연 최고의 전문가이자 덕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1603년 실제 궁수자리 쪽 하늘에서 벌어진 목성과 토성의 대 근접 현상을 관측했고, 그 날짜를 기준으로 과거에는 또 언제 이와 비슷한 행성들의 조우가 벌어졌을지를 계산했다. 실제로 간단한 시뮬레이션으로 과거의 하늘을 확인해보면 대략 기원전 7년 5월경, 목성과 토성이 동쪽 하늘에 걸려 있던 물고기자리 방향에서 아주 가깝게 맞붙어 있던 순간이 있었다. 이번 2020년의 목성과 토성의 만남처럼 동방박사의 눈을 사로잡는 멋진 우주쇼였을 것이다. 

 

간단한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한 기원전 7년의 목성과 토성의 대근접 모습. 두 행성이 물고기자리 방향에서 만나고 있다. 이미지=WouldYouLike 우주라이크


고대 점성술에 따르면 가장 덩치가 큰 목성 유피테르(Jupiter)는 왕, 영웅을 상징한다. 목성보다 더 멀리서 발견된 토성 사트르누스(Saturnus)는 유피테르의 아버지, 그리고 유대인의 수호자를 상징한다. 따라서 고대인들이 이 점성술에 기반해 두 현상을 바라봤다면, 왕을 상징하는 유피테르와 유대인을 상징하는 사트르누스의 만남은 유대인 중에서 위대한 인물이 탄생할 것이란 징조로 해석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두 행성이 만난 물고기자리 역시 특별한 점성학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물고기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익튀스(IXθγΣ)’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Iησουζ Xριστοζ θεου γιοζ Σωιηρ)’라는 단어들의 머리글자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먼 옛날부터 물고기란 말 자체가 종교적인 특별한 암호나 상징적인 은어로 쓰였다. 즉 물고기자리에서 벌어진 목성과 토성의 만남은, 점성학적으로 유대인 중에서 새로운 구원자가 될 위대한 왕이 태어날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흥미로운 천문 현상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추측 모두 우연히 들어맞은 여러 연관 없는 이야기를 운 좋게 끼워맞춘 가설에 불과할 수 있다. 이외에도 앞서 기원전 12년경 지구의 하늘에 등장했던 핼리 혜성이나, 중국의 ‘진한서’나 한국의 ‘삼국사기’ 같은 동양 기록에 등장하는 기원전 5년 즈음의 신성 폭발 현상과 연관되었을 것이란 가설도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까진 많은 천문학자들은 오래전 케플러가 처음 제안했던, 이 태양계 행성들의 근접 현상이 베들레헴의 별이란 가설이 유력한 가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동방박사의 눈을 사로잡았던 그 밝은 빛의 정체가, 바짝 붙어 한 별처럼 겹쳐 보였던 목성과 토성이었다면, 놀랍게도 무려 2000년 만에 다시 한번 베들레헴의 별의 멋진 순간이 재현되는 셈이다. 게다가 마침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그 우주쇼가 재현된다. 물론 정확하게는 베들레헴의 별이 아니라, 베들레헴의 행성이었다고 불러야겠지만 말이다. 

 

매일 서서히 가까워지는 목성과 토성의 궤적. 오는 12월 21일경 두 행성이 가장 가까이 만나면서 베들레헴의 별의 순간을 재현할 것이다. 이미지=J.Hedberg/CCNYPlanetarium


#목성과 토성의 반복된 티키타카, 태양계를 빚어낸 협업 플레이 

 

그런데 목성과 토성의 만남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예수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무려 50억 년 전부터 이어져온 목성과 토성의 만남 덕분에 지금의 태양계가 완성될 수 있었다. 

 

혹시 태양계 행성들이 일렬로 나란하게 쭉 정렬되면, 행성들의 중력이 한꺼번에 한 방향으로 지구에 가해지면서 지구에서는 큰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 벌어진다는 종말론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한쪽 방향에 몰려 있는 행성들의 강한 중력, 조석력 때문에 지구가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물론 실제로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다른 행성들이 지구에 가하는 중력의 정도를 다 합해봤자, 가장 가까운 달이 지구에게 가하는 중력에 비해서 아주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다른 행성들의 중력은 밀물과 썰물조차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약하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전 태양계가 갓 만들어진 때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태양계가 만들어진 직후, 과거에는 지금보다 태양계 행성들이 훨씬 좁은 범위에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이렇게 행성들이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던 당시에는, 서로의 거리가 더 가깝기 때문에 행성들이 주고 받는 중력의 효과가 더 컸다. 특히 가장 질량이 무거운 목성과 토성의 영향력은 남달랐을 것이다. 

 

태양계 형성 과정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니스 모델.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로 시간이 변한다. 원래 태양계 행성들은 훨씬 좁은 영역에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그런데 행성들의 지속적인 중력 상호작용을 통해서 궤도가 더 벌어졌고 지금처럼 훨씬 넓게 행성들이 분포하게 되었다. 또 원래 태양계 원반에 남아 있던 많은 소천체들이 정리되면서 거의 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위키미디어

 

이렇게 초기 태양계부터 오늘날의 태양계에 이르는 태양계 진화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모델 중 하나가 니스 모델(Nice model)이다. 프랑스 니스의 천문학자들이 2005년 완성해서 니스 모델이라고 부른다. (태양계를 아주 나이스하게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나이스가 아니라 니스다.) 이 니스 모델에 따르면, 태양계 형성 초기 목성과 토성은 자신의 강한 중력으로 아직 태양계 원반에 많이 남아 있던 부스러기 소천체들을 태양계 외곽으로 날려보냈고, 그 과정에서 점차 속도를 잃은 두 거대 행성이 태양계 안쪽으로 더 들어왔다. 

 

이렇게 태양계 안쪽으로 바짝 들어온 목성과 토성은, 그 주변에 남아 있던 부스러기들이 모여서 덩치 큰 암석 행성이 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바로 이 과정을 통해서 왜 유독 지구와 금성에 비해서 화성만 사이즈가 훨씬 작고 성장하지 못한 것인지에 관한 의문, 화성 문제(Mars Problem)가 설명된다. 또 화성 너머 남아 있는 소행성들 역시 왜 하나의 덩치 큰 암석 행성으로 합쳐지지 못하고 계속 부스러기 상태로 남게 된 것인지도 설명할 수 있다. 화성의 더딘 성장, 그리고 소행성들의 합체가 불가능했던 것도 모두 목성과 토성, 두 ‘중력 깡패’의 훼방이 있었던 탓이다. 

 

태양계 형성 초기부터 지금까지 소천체들의 병합과 거대 행성들의 궤도 공명, 중력 상호작용을 통해서 오늘날의 태양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현한 시뮬레이션 영상.

 

#목성과 토성 때문에 쫓겨난 해왕성, 그 놀라운 나비 효과 

 

이 당시 태양계 안쪽에 함께 바짝 붙어 있던 목성과 토성은 강한 중력을 주고 받으며 점차 서로의 공전 주기를 맞춰가는 궤도 공명을 이뤄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두 행성은 아주 일정한 주기로 반복해서, 이번 대근접처럼 함께 서로의 곁을 지나가는 순간을 맞이했다. 이런 규칙적인 목성과 토성의 가까운 만남은, 바로 바깥 궤도를 돌던 해왕성과 천왕성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일정한 주기로 계속 두 거대 행성이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천왕성과 해왕성은 그 중력에 떠밀려 점차 속도를 얻어 조금씩 바깥 궤도로 떠밀리기 시작했다. 

 

일정한 리듬에 맞춰서 그네를 살짝만 밀어주면 적은 힘으로도 효율적으로 그네를 높이 올릴 수 있는 것처럼, 반복된 목성과 토성의 협공에 의해 결국 해왕성와 천왕성은 태양계 최외곽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던 태양계 행성들은 서로 멀찍이 떨어지며 거리두기를 통한 대규모의 자리 바꾸기를 진행했다. 

 

토성과 목성이 서로 궤도 공명을 이루고 함께 공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

 

이 니스 모델의 결과를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태양계 형성 초기에 배열된 행성의 순서가 지금과는 다르다. 지금의 수금지화목토천해가 아니라 수금지화목토-해천이다. 마지막 두 행성, 천왕성과 해왕성의 순서가 뒤바뀌었다. 목성과 토성의 반복된 궤도 공명과 근접 현상 때문에 원래 더 안쪽에 있었던 (그래서 목성과 토성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던) 해왕성이 오히려 더 바깥으로 가장 멀리 쫓겨나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왜 현재 더 바깥에 있는 해왕성이 오히려 안쪽에 있는 천왕성에 비해서 더 질량이 무거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원래는 해왕성이 행성을 만드는 재료가 더 많은 태양계 안쪽에서 형성되어서 더 무거웠다. 하지만 목성과 토성의 방해로 인해 최외곽으로 쫓겨나면서, 원래 더 무거웠던 해왕성이 더 가벼운 천왕성보다 더 바깥에 놓이게 된 것이다. 

 

목성과 토성의 지속적인 간섭으로 인해 태양계 최외곽으로 쫓겨난 해왕성은, 그 당시 태양계 가장자리를 떠돌던 돌과 얼음 부스러기들을 끌어당겨 태양계 안쪽으로 내던지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바깥으로 쫓겨난 해왕성의 중력에 의해 소천체들이 태양계 안쪽으로 쏟아진 이 시기를 태양계 형성 시기의 대 융단폭격 시기(LHB, Late Heavy Bombardment)라고 한다. 원래 살던 안쪽 동네를 벗어나 바깥 동네로 강제로 쫓겨나야 했던 해왕성이, 고향을 떠나는 아쉽고 억울한 마음에 태양계 안쪽으로 소천체들을 던지면서 화풀이를 하며 떠난 셈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해왕성이 쫓겨나면서 벌어진 대 융단폭격 시기를 통해 안쪽의 암석 행성들이 크고 작은 충돌을 당하게 되었다. 이미지=NASA


이 시기에 태양계 안쪽으로 쏟아진 소천체들의 흔적은 수금지화 암석 행성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성과 화성에는 각각 거대한 충돌로 생긴 뚜렷한 상처, 칼로리스 분지(Caloris basin)와 헬라스 분지(Hellas basin)가 남아 있다. 달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충돌 크레이터 역시 대부분 융단폭격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금성도 이 시기에 아주 강력한 충돌을 당하면서 자전축이 거의 180도 뒤집히는 사건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지구로 함께 쏟아진 혜성과 소행성의 융단폭격을 통해서, 이 소천체들에 얼어 있던 물과 아미노산이 지구로 배달되는 행운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 니스 모델의 관점에서 본다면, 놀랍게도 지구에 생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래전 목성과 토성의 절묘한 궤도 공명과 근접 현상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목성과 토성의 이런 ‘티키타카’가 없었다면, 해왕성도 멀리 쫓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밀려난 해왕성에 의해 소천체들이 태양계 안쪽으로 쏟아지는 융단폭격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지구에도 물을 공급해줄 만한 혜성과 소행성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엄청난 나비 효과였다고 볼 수 있다. 

 

혜성과 소행성이 지구로 쏟아져 생명이 탄생할 수 있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목성과 토성의 지속적인 중력 간섭과 상호작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NASA SCIENTIFIC VISUALIZATION STUDIO

 

#태양계가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태양계가 하필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목성과 토성의 궤도 공명, 두 중력 깡패의 특별한 협업 플레이 덕분이다. 지난 수십억 년간 두 거대 행성이 만남을 반복해주었기에 지금의 태양계가, 그리고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2020년 12월 21일, 우리를 있게 해준 바로 그 특별한 순간이 다시 한번 우리의 하늘에서 재현된다. 

 

다가오는 연말 매일 저녁 서쪽 하늘에 걸려 있는 두 가스 행성의 밝은 만남을 바라보면서, 2000년 전 새로운 왕의 탄생을 기대했을 순례자들의 설레는 마음을, 그리고 50억 년 전 시작되었던 태양계를 빚는 레시피의 그 장엄한 순간을 함께 추억해보는 건 어떨까? 무려 800년 만에 찾아온 이 귀한 순간과 함께,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우주적인 연말 파티를 즐겨보자. 

 

필자가 몇 주 전 촬영한 사진으로, 청주에 있는 고요한 유적지를 배경으로 목성과 토성을 바라본 모습이다. 사진=지웅배 제공

 

참고

https://science.nasa.gov/science-news/science-at-nasa/2000/ast30mar_1m 

http://adsabs.harvard.edu/full/1977QJRAS..18..443C

http://adsabs.harvard.edu/full/1937JRASC..31..417B 

https://scholarsmine.mst.edu/cgi/viewcontent.cgi?article=3610&context=icrageesd

https://www.skyatnightmagazine.com/advice/skills/great-conjunction-jupiter-saturn/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jupiter-destroyer-of-worlds-may-have-paved-the-way-for-earth/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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