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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굿바이 베를린, 헬로 서울

남겨두고 온 또 다른 나, 조우하는 그날까지 잠시만 안녕

2020.12.04(Fri) 12:34:19

[비즈한국] 드디어 한국이다. 격리 중인 탓에, 시차 적응이 완료되지 않은 탓에 가끔은 여기가 진짜 서울인가 싶기도 하다. 저기 어딘가에 베를린이 있을 것만 같고, 왓츠앱으로 전해오는 베를린 친구들의 소식과 사진을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곳의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도 때때로 베를린이 사무치게 그립다.

 

베를린-서울 직항이 없는 관계로 프랑크푸르트에서 경유해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했다. 사진=박진영 제공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한국인들, 시차 없이 가족, 지인과 통화가 가능한 상황, 귀국을 반겨주는 친구들, 무엇보다 더없이 편리하기만 한,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가능한 생활이 한국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요소다. 3년 전에도 한국은 모바일로 웬만한 것이 다 되는 나라였지만, 아날로그의 나라에 3년 넘게 있다 오니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싶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필수품만 갖춘 거의 빈 집에 들어와 사는데다 자가격리 중이라 제대로 된 식생활이 불가능할 듯한 상황에도 불편함이란 없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집 앞으로, 그것도 철저히 비대면을 잘 지켜 문 앞까지 갖다 주는 배달음식은 그야말로 신세계다.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왔는데도 왜 14일을 꽉 채워 격리해야 하냐고 독일인 친구는 의아해했지만, 한국 시간에 칼 같이 맞춰 자고 깨고 하지 않아도 되니, 강제적인 격리 생활도 적응하는 데 나름 도움 되는 듯하다. 아직까지는.  

 

베를린을 떠나기 직전의 마음 상태와 비교하면 지금은 평화롭기만 하다. 낯선 곳도 아닌데 내 나라로 돌아오는 것인데 왜 그렇게 마음이 복잡하고 불안했는지.

 

11월 초 오픈한 베를린 빌리브란트 브란덴부르크공항. 사진=박진영 제공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며칠 전부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베를린에서 서울까지 직항이 없어 프랑크푸르트에서 5시간 40분을 기다려야 하는 긴 여정에 대한 걱정과 긴장도 있었을 테지만, 그보다 베를린에서나 가능했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현실 세계가 아닌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도 같다.

 

솔직히 말하면, 베를린에서 나는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때로 나를 대신할 누군가가 없는 현실로 힘들기도 했지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직장 때문에 관계 때문에 의무 때문에 내가 짊어져야 할 것들은 아무 것도 없었다. 가족 대소사를 잊어버려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고, 으레 하는 인사치레나 만남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위주로 계획하고 살면 되는 일이었다. 남의 나라에 살면서 자유롭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나의 내면은 더없이 자유로웠다. 귀국과 함께 그 모든 자유를 반납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나는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귀국 전날 밤을 꼬박 새웠다. 잠이 들 뻔 하다 여지없이 눈이 떠져 어두운 방안을 맴돌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으로 향했다. 건너편 건물의 테라스에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그날따라 더 마음을 파고들었고, 어둠 속 풍경조차 마음에 새겨야 할 것만 같았다. 잘 버티던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눈물을 보이던 것도 마음에 걸렸고, 친구들이 보내온 아쉬움 가득한 메시지들도 하나하나 다시 떠올랐다. 귀국 일정이 두 번 바뀌면서 제법 오래 이별을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로 닥치니 또 다른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떠나는 날 아침 평정을 되찾았다. 아니,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내내 창밖을 응시하며 말이 없는 아들에게 일부러라도 밝게 말을 걸고 언젠가 다시 베를린을 방문할 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주어야 했다. 어쩌면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디를 가든 웬만해선 막히는 상황을 만나기 어려운 베를린과는 달리 평일 대낮부터 막히는 서울의 도로. ‘아 서울이구나’ 실감나는 순간이다. 사진=박진영 제공​


환승 포함 17시간 넘는 비행시간은 차라리 즐거웠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이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한국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슬그머니 차올랐다. 3년 넘는 공백이 있기도 했지만, 있던 자리로의 컴백이 아니라는 점에서 설렘이 있었다. 살던 집이 아닌 새로운 집에서 시작하는 데다 베를린에서의 경험이 앞으로의 삶을 달라지게 하리라는 믿음도 있기 때문이리라.

 

격리 생활 3일째, 어제 잠깐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걸어서 보건소까지 다녀오는 동안 생각보다 바뀌지 않은 서울 모습이 반가웠다. 아이는 주변에 한국 사람이 많다는 당연한 사실을 신기해했다. 2년 전 먼저 귀국한 지인이 ‘한국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당황할 때가 있다’며 ‘생각보다 한국 생활 적응이 오래 걸리더라’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고립 생활 중이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 나라인데 뭐가 또 힘이 들까 싶다. 다만, 어쩌다 가끔 베를린에서의 어떤 기억, 장소가 떠오를 때 잠깐씩 눈을 감는다. 기억 속에서 나는 베를린을 보고 걷고 느낀다. 시간이 지나면 그조차 희미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베를린에서의 ‘나’는 아직 그곳에 남아있다는 것. 베를린의 나는 예년 같지 않은 크리스마스 풍경을 아쉬워하며 12월을 보낼 것이다. 언젠가 베를린의 나와 조우하는 그날까지 나는 같은 듯 다른 한국에서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기로.

 

잠시만 굿바이, 베를린.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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