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자제품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했다가 문제가 발생해도 품질 보증 기간이 지났다면 소비자가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한 현행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별도의 보상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 전문가들은 “최근 전자제품의 특징에 맞게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대다수 전자제품이 향상된 기능을 제공하고 작동을 보다 안정화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능을 제공한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PC 운영체제는 보안이나 최신 소프트웨어 사용을 위해서 업데이트는 필수다. 그래서 제조사는 사용자에게 시스템 내 알람을 통해서 업데이트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하지만 업데이트 과정에서 간혹 오류도 발생한다. 심각할 경우 제품을 아예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고장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논란이 된 애플 맥북의 ‘빅서 게이트’다.
2014년형 맥북을 사용하던 소비자 A 씨는 11월 말 최신 맥 운영체제인 ‘빅서’를 업데이트했다가 제품 전체가 먹통이 되는 일을 겪었다. 그는 애플스토어 가로수길점에 찾아가 무상 수리를 요구했지만 “보증 기간이 끝났으니 유상으로 수리를 받아야 한다”라는 말만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이후 매니저와 면담을 요청하자 “영어를 할 줄 아느냐”, 책임 소재를 묻는 말엔 “구형기기를 사용하는 소비자의 책임”이라는 등 애플 측의 상식적이지 않은 대응으로 논란이 증폭됐다.
애플의 비상식적인 AS 대응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소비자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소비자가 품질 보증 기간이 지난 이후 보상받을 수 있는 사례는 △부품 보유 기간 이내에 수리용 부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발생한 피해 △소비자가 수리 의뢰한 제품을 사업자가 분실한 경우에 한한다. 즉, 제조사가 제공한 업데이트로 인한 제품 고장 시 보상받을 수 있는 규정이 전무한 것.
하지만 한국소비자원은 이 같은 규정 마련에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아직 제조사 업데이트로 발생하는 제품 결함에 대한 보상 기준은 없다. 품질 보증 기간 내에는 무상 수리든 교환·환불이든 가능하겠지만, 품질 보증 기간이 지났을 때는 수리를 진행할 때 비용 발생 부분에 대해서 제조사와 소비자의 잘못을 따져 수리 비용을 책정해야 한다. 항상 무상으로 제품을 수리할 수는 없다. 소비자 과실이거나 제품 노후화 등 변수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품질 보증 기간에 따라 마련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최근 상황에 맞게 손볼 필요가 있다. 현재 기준으로는 소비자가 제조사의 조치로 발생한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다. 가령 품질 보증 기간이 아닌 부품 보유 기간으로 범위를 넓히고, 제품의 결함이 발생하면 제조사가 수리 비용 일정 부분을 부담한다는 식으로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제조사들도 기준이 마련되기 전에 이 같은 사례에서 소비자와 타협점을 마련해야 한다. 애플의 경우 소비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였다”고 지적했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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