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각 구성을 진행하고 있다. ‘선거 조작’을 주장하며 백악관을 떠나지 않을 것처럼 굴던 트럼프 대통령도 슬슬 퇴각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역대 어느 대통령과도 달랐던 트럼프, 그가 이끌던 지난 4년 백악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곧 백악관에 입성할 바이든 당선인, 그가 만들어갈 앞으로의 4년은 어떤 모습일까? 두 사람을 조명한 책을 통해 살펴보자.
그 일이 일어난 방: 존 볼턴의 백악관 회고록
(원제: The Room Where It Happened: A White House Memoir)
존 볼턴 지음, 박산호·김동규·황선영 옮김, 시사저널
760쪽, 25,000원
“내가 여기서 얼마나 나오고 싶은지 당신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앞으로 당신도 알겠지만, 여긴 정말 일하기 끔찍한 곳이에요.” 출근한 지 한 달 반도 안 된 직원에게 동료가 이런 푸념을 건넨다면? 그런데 그 직장이 백악관이라면? 이 말을 한 사람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상대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쓴 ‘그 일이 일어난 방’은 트럼프의 반대로 몇 차례 출간이 무산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보게 되었다. 볼턴은 ‘메모광’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2018년 4월부터 2019년 9월까지 453일 동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겪은 일들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정책을 마치 부동산 거래를 매듭짓는 일쯤으로 여기고, 인간관계에서도 TV 쇼맨십에 치중하는 모습, 자신의 관심사를 추구하는 면 등을 낱낱이 파헤친다.
‘대통령’ 트럼프의 우선순위는 돈과 관심이었던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날 때는 주한미군의 주둔비용과 대미 무역 수지 얘기가 빠지지 않았고, 아베 일본 총리를 만날 때는 미국 농축산물을 더 많이 사달라고 말했다. EU에도, 아랍 국가에도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라고 압박했다. 이란과 북한의 핵 위협, 중동의 정세 불안 앞에서도 트럼프는 미군 비용 감축이 일순위였다.
그리고 늘 본인이 관심을 받기 원했다. 심지어 북한과의 회담도 그에겐 언론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일종의 ‘공연’이었다.
“난 가고 싶어요. 아주 대단한 공연이 될 거예요.” -145쪽 북한과의 싱가포르 회담
“이건 그저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한 행사일 뿐입니다.” 트럼프는 그렇게 말했는데, 그는 정말로 이 정상회담 전체를 그런 시각으로 보고 있었다. -161쪽
협상 상대이지만 적이나 마찬가지인 김정은이 추켜세우는 ‘수사’에도 트럼프는 우쭐해한다.
“이거 멋진 편지군요,” “이거 정말 좋은 편지야,” “김이 나에 대해 뭐라고 썼는지 들어봐요.” … 그 편지는 트럼프의 자부심을 강화시키는 신경을 정확히 자극하는 법을 아는 파블로프 같은 사람이 쓴 것 같았다. -185쪽
능력과 철학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 따라 사람을 인선하고, 당사자에게 알리기 전에 트위터로 해고를 통보하고, 즉흥적으로 의사결정을 한 뒤 수시로 말을 뒤집어 아랫사람들이 제대로 일할 수 없게 만들고, 그것조차 본인이 책임지지 않으려 했다는 등 트럼프를 향한 볼턴의 송곳 같은 지적이 책 곳곳에 넘쳐난다.
대체 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들은 알고 싶어했다. 폼페이오나 나도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 둘 다 트럼프 본인도 모른다고 확신했다. -172쪽
트럼프는 당장 전쟁하고 싶어하는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트럼프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루 안에 협상을 타결하는 얘기를 꺼냈다가 몇 초 만에 전면전을 언급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트럼프식 발상이었다. -556쪽
던포드는 “저는 대통령이 책임지시길 바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젯밤에는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셨어요. 대통령이 그러시면 일이 복잡해집니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586~587
그러나 볼턴이 보기에 트럼프의 가장 큰 문제는 일국의 대통령이 ‘사익’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재선을 위해 외국(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을 이용했다. 원칙주의자 볼턴이 결국 백악관을 나온 이유다.
내가 웨스트윙에서 임기를 보내는 동안 트럼프는 자신이 아는 것과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대로 했다. -642쪽
대통령은 중앙정부의 합법적인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과 거의 동일하게 간주해서도 안 된다. 국가의 이익을 가장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핑계를 만들어서도 안 된다. -701쪽
‘그 일이 일어난 방’은 조직과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트럼프처럼 종잡을 수 없고 사익에 집착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면 그 조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어떻게 일이 망가지는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볼턴이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초등학생처럼 트럼프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으며 시시덕거리는 모습이나 트럼프의 말 뒤에 꼭 한 마디씩 붙이는 독백을 읽자면, 웃음이 터져나오면서도 한숨이 난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했음에도 미국이 돌아가는 것은 역설적으로 시스템의 힘일까.
밥 우드워드의 ‘격노’, 트럼프의 조카 메리 트럼프가 쓴 ‘이미 과한데 결코 만족을 모르는’ 등과 함께 읽으면 트럼프를 더 잘 알 수 있을 듯싶다. 퇴임한 대통령을 왜 더 알아야 하냐고? 트럼프가 4년 뒤 다시 미국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지켜야 할 약속: 나의 삶, 신념, 정치
(원제: Promises to Keep)
조 바이든 지음, 양진성·박진서 옮김, 김영사
584쪽 19,800원
트럼프에 비하면 조 바이든 당선인은 훨씬 ‘정상인’에 가깝다.
‘조 바이든, 지켜야 할 약속’은 미국 대통령 당선인 조 바이든이 직접 쓴 자서전이다. 가난한 아일랜드계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흙수저’가 어떻게 해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는지를 자신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인생사와 더불어 지도자로서의 신념과 철학, 비전에 대한 약속 등도 담겼다.
나는 1학년 때 수업 시간에 일어서서 발표하는 걸 면제받았다. 그렇지만 나는 어떤 면제도, 변명도 원치 않았다. … 나는 말더듬증을 물리치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했다.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나는 예이츠와 에머슨의 긴 문장을 외우고 나서 윌슨 로드 쪽에 있는 내 방 거울 앞에 서서 말하고 말하고 또 말했다. -54쪽
말더듬증 때문에 놀림 받는 어린 조를 격려한 건 부모였다. 가난하고 과묵했지만 품위 있고 타인을 존중했던 아버지. “너보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너보다 똑똑한 사람도 없다”며 늘 아들을 최고로 추켜세운 어머니. 부모의 지지 속에서 바이든은 집안 최초로 대학에 진학하고, 로펌에 들어갔다 그만두고 국선변호사를 선택하고, 카운티 의원으로 정치에 입성했다. 자신의 힘만으로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신념과 원칙에 맞는 길을 걸어왔다.
그 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련과 재기의 연속처럼 보인다.
1972년 바이든이 첫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했을 때, 상대는 델라웨어주에서 20여 년간 한 번도 선거에서 진 적 없는 인물이었다. 민주당에서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을 때 29세 젊은 바이든은 가가호호 티파티를 돌면서 하루에 열 잔씩 커피를 마시고 온 가족이 나서 유권자를 일대일로 만나는 등 열성적으로 선거운동을 치러 1% 차이의 기적 같은 승리를 이뤄낸다. 그러나 한 달 만에 아내와 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 속에서 바이든은 다시 일어서 두 아들을 돌보며 묵묵히 상원의원의 길을 걸어간다.
내게는 이것이 인생의 첫 번째 원리, 근본 원리, 그리고 어떤 현인에게서도 배울 수 없는 교훈이었다. 일어나라!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 몇 번 쓰러졌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일어났는지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했다. -25쪽
1988년에는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다가 연설 표절 시비로 하차하고, 곧이어 뇌동맥류로 쓰러지면서 다시 한번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여러 번의 위험한 수술과 기나긴 재활 과정을 모두 버텨내고 한 단계 더 성숙해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 이제 대통령에까지 당선된 그를 평범한 인물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책의 제목처럼 그가 대통령으로서 ‘지켜야 할 약속’이 어떤 것인지, 앞으로 그의 행정부가 어떤 식으로 일을 해나갈지, 지금까지 바이든의 인생 행로를 통해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듯싶다.
공정한 정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나의 특권이었다. 지금 나는 평생 해왔던 것보다 더 많은 열정을 가지고 내가 하는 일에 더욱 전념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더 잘할 수 있다.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18쪽
나는 정치가 어때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일종의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정치를 올바로 하기만 한다면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게임에 참여하려면 통합이라는 최소 비용이 필요하다. 정치에 발을 디딘 지 거의 40년이지난 지금도 나는 정치와 공직의 가능성에 사로잡혀 있다. 사실 나는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선택한 이 직업이 고귀한 소명이라고 믿는다. -16쪽
극단적인 이익을 추구한 트럼프와 달리 ‘균형 잡힌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중도주의자 바이든은 이상주의자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극심한 분열을 통합하기엔 그가 적임자일 수도 있겠다. 7명의 대통령을 겪으며 그가 깨달은 이상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과연 현실로 보여줄지 궁금하다.
한국어판에는 자서전 출간 이후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부통령 시절 오바마 대통령과의 ‘브로맨스’와 다시 대선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배경과 2020년 대선 분석을 담은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의 해제를 추가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단, 자서전인 만큼 어느 정도의 미화는 감안하고 보는 것이 좋겠다.
김남희 기자
namhee@bizhznkook.com[핫클릭]
·
[기업의 흥망] 김우중과 '세계경영'의 몰락, 대우그룹
· [K-신약리포트]
HK이노엔 IPO 성공, 위식도 역류질환 신약에 달렸다
· [올드라마]
온 힘을 다해 힘껏 껴안아주고 싶은 '신데렐라 언니'
·
[인터뷰] 이대희 벨루가 브루어리 이사 "주류 시장도 플랫폼으로 문제 해결"
·
[이주의 책] '걱정이 넘치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북', '풍요중독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