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들이 만든 흥미로운 흑마법 중에는 호문쿨루스(Homunculus)라는 것이 있다. ‘유리병 속의 작은 인간’이란 뜻의 호문쿨루스는 16세기 독일의 연금술사 파라켈수스가 제안한 것이다. 그가 제안한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우선 밀폐된 유리병 속에 남성의 정액을 담는다. 그리고 그 병을 따뜻한 말의 대변 속에 넣어 보관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병 속에 작은 형체가 만들어지는데, 그것에게 사람의 혈액에서 채취한 성분을 몇 방울 넣어주면 살아 있는 작은 생명체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파라켈수스는 유리병 속에 살아 숨 쉬는 작은 생명체를 탄생시키고자 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남성의 체액 안에 아주 작은 인간이 완성된 상태로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임신, 즉 아이를 갖는 것은 단지 원래 체액 속에 들어 있는 작은 인간이 여성의 몸속으로 이동해서 성장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체액 속의 작은 인간이 생명의 근원, 그 씨앗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연금술사들은 이 작은 인간을 여성의 몸이 아닌 유리병 속에서도 인공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면, 새로운 생명을 실험을 통해 탄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신비스러운 인공 배양 실험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신비주의 시대 연금술사들의 우스꽝스러운 아이디어 중 하나였지만 인류는 여전히 파라켈수스가 품었던 것과 똑같은 욕망을 품고 있다.
바로 생명의 근원이 무엇일까, 그것을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도 실험실 속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놀라운 과정을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망이다. 아쉽게도 파라켈수스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다양한 실험들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천문학자들과 화학자들은 지구 생명 탄생 과정의 타임라인을 완전히 뒤집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과연 지구의 생명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그리고 과연 우리도 그 생명 탄생 과정을 재현할 수 있는 실험실 속 조물주가 될 수 있을까?
실험실에서 생명 탄생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구 바깥 우주에서 생명 탄생 과정의 놀라운 비밀, 바로 암흑의 연금술을 새롭게 확인했다. 과연 지구 생명은 어디에서 기원한 걸까?
#다윈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실험실에서 재현된 초기 지구
진화론의 창시자로 알려진 19세기 생물학자 찰스 다윈도 풀지 못한 마지막 난관이 있었다. 다윈의 설명대로 생명이 여러 세대를 거쳐 진화했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애초에 지구 최초의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느냐는 것이다.
반복되는 경쟁과 우연한 돌연변이를 거쳐, 생물군은 더욱 다양한 계통과 종으로 갈라지며 다채로운 생태계를 완성했다. 이렇게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다윈의 생명 나무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모든 나뭇가지가 뻗어나온 단 하나의 뿌리를 상상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최초의 생명체, 모든 것들의 기원을 ‘모든 것들의 공통의 최후 조상’이란 뜻에서 루카(LUCA, The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라고 부른다.
다윈이 이 루카의 기원에 관해 명확하게 밝힌 바는 없다. 하지만 그가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보면 다윈이 개인적으로 지구 생명의 기원에 관해 가졌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다윈은 과거 지구에 암모니아와 인산염이 녹아 있던 따뜻한 연못에서 생명이 빚어졌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 따뜻한 연못에 화산, 번개 등 다양한 열적, 전기적 작용이 더해지면서 최초의 생명체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다윈의 ‘따뜻한 연못’ 가설은 20세기 러시아 생물학자 오파린에 의해 더 구체화되었다. 오파린은 당시 새롭게 밝혀진 천문학적인 발견을 덧붙여 다윈의 아이디어를 완성해갔다. 오파린은 초기 지구 대기의 구성 물질이 목성과 비슷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과거 초창기의 지구 대기에는 오늘날의 목성처럼, 메탄과 암모니아 수소 등 분자가 있었고 이들이 열적, 전기적 작용을 거치면서 다양한 유기물질이 합성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파린의 아이디어는 1953년 스승과 제자 관계였던 두 생화학자, 유리와 밀러의 손으로 실험실에서 재현되었다. 이 두 사제 콤비는 오파린이 예상했던 초기 지구 대기 구성 물질에 해당하는 암모니아, 메탄 등의 성분을 준비해 둥근 플라스크에 넣었다. 아래쪽에서는 물을 끓여 플라스크 속에 따뜻한 수증기가 들어가도록 했다. 그리고 초기 지구 대기 속 빈번하게 내리쳤던 번개를 재현하기 위해 전극을 꽂아 전기 스파크를 일으켰다. 이렇게 유리와 밀러는 실험실 속에서 따뜻한 연못, 다양한 대기 화학 성분, 그리고 번개가 모두 모여 있는 작은 초기 지구 모형을 재현했다.
유리와 밀러의 실험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 당시 이들이 한 실험은 유리병 속에 생명의 기원 아미노산을 만들어내는 20세기 버전의 호문쿨루스 실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초기 지구의 상태를 재현한 이 플라스크 속에서 침전되어 나온 용액을 확인해보니, 그 용액 속에서 글리신과 같은 꽤 복잡한 아미노산이 검출되었다. 글리신은 지구 생명체의 DNA를 구성하는 주요한 아미노산 성분 중 하나다.
유리와 밀러의 실험은 이후 다양한 세부 조건을 바꿔가면서 여러 실험실에서도 재현되었다. 심지어 글리신뿐 아니라 DNA와 RNA를 구성하는 아데닌과 같은 또 다른 아미노산도 충분히 만들어지면서, 유리와 밀러의 실험은 초기 지구 생명의 기원을 추적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마치 유리병 속에 호문쿨루스를 만들려 했던 중세 유럽 연금술사들처럼, 20세기 생화학자들은 유리병 속에 생명의 씨앗 아미노산을 만드는 실험을 한 셈이다. 생명의 탄생 과정을 실험실에서 재현하고자 한 진정한 파라켈수스의 후예라 볼 수 있겠다.
#혜성에서 검출된 글리신, 태양을 필요로 하지 않는 흑마법의 증거
유리와 밀러의 놀라운 실험 이후 오랫동안 인류는 초기 지구에 존재하던 분자들이 다양한 화학 작용을 거쳐 자연적으로 복잡한 아미노산으로 합성되었다는 관점으로 생명 탄생의 역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즉 기존에 생각하던 초기 지구의 생명 탄생의 순서는 이렇다. 일단 행성 지구라는 무대가 먼저 만들어졌고, 그 무대 위에서 여러 화학적 레시피를 거쳐 아미노산이 요리되었다. 선 지구, 후 생명이다. 어쩌면 이러한 관점은 당연했다. 생명을 이루는 아미노산이 조합되려면 일단 그 성분이 조합될 수 있는 무대인 행성 지구가 필요할 테니까.
그런데 지난 2014년 11월, 역사상 최초로 혜성 표면에 착륙한 로제타 탐사 미션을 통해서 이 타임라인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놀랍게도 태양계 외곽을 떠돌던 얼음 덩어리에 불과한 혜성에서 주요 아미노산인 글리신 성분이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글리신과 같은 복잡한 아미노산은 강렬한 태양빛 속 자외선이 제공되어야만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었다. 탄소,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등 상대적으로 작고 원자들 사이 강한 결합력으로 뭉쳐져 있는 분자들을 강한 빛으로 비춰서 쪼개주어야, 그 쪼개진 작은 원자 조각들을 다시 글리신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아미노산으로 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갑게 얼어 있는 혜성에서 검출된 글리신의 존재는 강렬한 햇빛, 별빛이 없는 암흑과 추위 속에서도 글리신이 조합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올해 천문학자들과 실험 화학자들은 강렬한 자외선이 없는 환경에서도 글리신이 조합될 수 있는지 실험을 진행했다. 거대한 실험 장치 안에 차갑게 얼어붙은 먼지와 수증기가 있는 환경을 구현하고 진공 상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 안에 다양한 성분의 원자를 빔으로 쏘아주면서 강한 자외선 빛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성분이 조합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과거 20세기 중반 유리와 밀러가 초기 지구의 환경을 재현한 호문쿨루스 실험을 했다면, 이번 실험은 혜성의 환경을 구현한 혜성 버전의 호문쿨루스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놀랍게도 이번 실험을 통해 강한 자외선과 에너지가 없는 환경에서도 글리신이 만들어지기 위해 거쳐가는 전신인 메틸아민, 나아가 글리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미노산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놀랍게도 우주의 암흑과 추위 속, 혜성에서 벌어지고 있었을 어둠의 연금술, ‘다크 케미스트리(Dark Chemistry)’의 실체가 확인된 것이다.
#지구가 탄생하기 전에 생명이 먼저 존재했다?
이러한 암흑의 연금술이 가능한 것은 얇은 얼음층으로 덮인 먼지 입자들 덕분이다. 이 먼지 입자 표면에 묻어 있던 분자들이 다른 원자들과 빠른 속도로 충돌하면서, 강렬한 빛이 없는 환경에서도 분자들이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개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쪼개진 조각들이 다시 다양한 아미노산으로 반죽 될 수 있었다.
이번 실험에서 시도된 혜성 버전의 호문쿨루스 실험은 우리에게 놀라운 가능성 한 가지를 이야기해준다. 우주 공간을 떠도는 차가운 얼음 덩어리 혜성 표면에서 글리신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굳이 태양이라는 밝은 별이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즉 태양이란 별이 태어나기도 전에, 아직 태양과 지구가 태어나기도 전에, 오래전 차가운 성간 가스 구름 속에 이미 완성된 형태의 글리신과 아미노산이 충분히 존재했을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당연히 태양과 지구가 만들어진 이후 지구에서 아미노산이 합성됐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실험을 통해 확인된 것처럼, 지구와 태양이 만들어지기 훨씬 오래전에 이미 아미노산은 우주 공간에서 조합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를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 몸속에 들어 있는 글리신과 아미노산의 기원은 지구가 만들어지기 전에 우주 공간을 떠돌던 외계 화학 물질일지 모른다. 즉 넓은 의미에서 봤을 때, 지구의 생명은 행성 지구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지구 생명의 역사가 행성 지구보다 더 길어지게 되는, 기존의 타임라인이 완전히 뒤집힐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사람의 체액 속에서 생명을 뽑아내려 했던 연금술사들의 시도에 이어, 이제 우리는 태양이 빛나기도 훨씬 전 우주의 암흑과 추위 속에서 아미노산을 만들어냈던 우주의 암흑의 연금술을 확인해나가고 있다. 오늘날 지구의 아름다운 생태계는 어쩌면 오래전 우주를 떠돌다 나중에 만들어진 지구란 돌멩이 위에 불시착한 외계 화학 물질의 후손은 아닐까?
맑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우리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신묘한 재료와 레시피로 빚어진, 아주 거대한 유리병 속에 살고 있는 호문쿨루스는 아닐까. 우리를 감싸고 있는 그 거대한 보이지 않는 유리병의 벽 바깥, 저 우주의 어둠 너머에서 이 우주라는 거대한 유리병 속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의 흡족한 미소가 느껴지는 듯한 섬뜩한 밤이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0-01249-0
https://www.nasa.gov/mission_pages/stardust/news/stardust_amino_acid.html
https://www.nature.com/articles/nchem.827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21/5888/487.2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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