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50조 원어치 금괴를 실은 ‘돈스코이호’를 울릉도 앞바다에서 인양해 수익을 분배한다며 116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모았던 일명 ‘보물선 코인’ 사건을 기억하는가. 얼마 전 사건에 연루된 회사 대표가 얼마 전 중형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이 광기어린 투기장으로 전락했던 지난 2017년 암호화폐 시장의 기억을 소환했다. 그 트라우마가 아직 가시기도 전, 또 다시 비트코인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연중 최고가인 2000만 원을 돌파하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실체 없는 ICO가 난무하며 ‘묻지마 투자’가 성행했던 지난 2017년 말에서 2018년 초 비트코인 가격이 거의 3000만 원에 달하는 정점을 찍고 거품이 훅 꺼진 후 2018년 말경 300만 원대까지 추락한지 2년여 만이다.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암호화폐 바람, 이번엔 정말 다를까?
#제도권 나서고 실물 경제 도입 조짐에 신뢰감 확산
주로 투기 심리가 시장 성장 동력이던 3년 전과 달리 이번 상승장은 시장 성숙도가 높다는 평이 우세하다. 특히 △제도권 전통 강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디지털 화폐 발행 나서는 각국 정부들 △기업 프로젝트들 구체성 증가 △실제 사용처 증가 조짐 등 여러 이유에서 심리적으로 높은 신뢰감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개인 투자자들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매수하는 주요 세력이었다. 반면 지금은 다양한 기업 및 기관들이 투자 및 관련 서비스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게 차이다. 일례로 핀테크 혁신 기업으로 유명한 미국의 스퀘어는 총 자산의 1%에 달하는 5000만 달러를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이와 함께 막강한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을 통해 실체가 없어 보이던 암호화폐가 실생활 사용처가 늘어날 조짐이 자주 감지된다는 점도 암호화폐의 매력을 높이고 있다.
페이팔은 지난 10월 모든 이용자들이 페이팔 지갑을 통해 비트코인, 이더리움, 비트코인캐시, 라이트코인 등 주요 암호화폐의 보관 및 거래를 지원하고, 내년 초에는 온라인 가맹점에서 암호화폐 결제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페이팔은 전 세계 3억 5000만 명의 이용자와 2600만 개에 달하는 가맹점을 보유한 만큼, 이 결정은 암호화폐가 실물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것을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아마존의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도 중단한 비트코인 결제를 재개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7월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비자카드와 손잡고 카드에 암호화폐를 연동, 실생활에서 현금처럼 결제할 수 있는 ‘바이낸스카드’를 유럽에서 출시했다.
특히 제도권 전통 금융 강자들이 가상 자산 관련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여름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은행, 골드만삭스는 당국으로부터 가상 자산 수탁 서비스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 영국 스탠더드차타드도 조만간 가상 자산 수탁 서비스 시범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싱가포르의 상업은행 DBS는 비트코인 등 주요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자산 거래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건설은행도 미화 및 비트코인으로 거래할 수 있는 디지털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2017년과는 달리 지금은 암호화폐 관련 다양한 파생상품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카카오의 ‘클레이튼’처럼 기업들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점차 구체성을 띄고 있다는 점도 시장의 호감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암호화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JP모건마저도 “비트코인이 금을 대체하는 투자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2만 달러 돌파가 가능하다”고 낙관했다.
이처럼 공신력 있는 기관 및 기업들이 시장에 적극 참여하면서 높은 신뢰감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2017년 비트코인 광풍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하지만 특유의 극심한 변동성과, 여전히 실생활에서의 활용도가 매우 낮다는 점 등 여러 이유로 암호화폐가 안정적인 자산이 되긴 어렵다는 면에서 이번 상승장 역시 거품일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 실질적 이유는 ‘수요 > 공급’
비트코인 가격 상승의 실질적인 이유는 코로나19 부양책으로 인해 유동성은 확대된 반면 중국 정부의 규제 등으로 인해 채굴량이 줄어들며, 비트코인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각국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대책으로 부양책을 내놓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현금 유동성이 시중에 많이 풀린 상태다. 실제로 최근 이로 인해 미화 환율이 하락하기도 했다. 불안정한 실물 화폐 가치에 대한 헤지(hedge) 심리가 가상 자산 수요를 높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에 비해 비트코인의 공급은 충분치 않은 편이다. 암호화폐 관련 시장조사 업체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지난 5년동안 암호화폐 주소 간 이동하지 않은 ‘비유동성’ 비트코인의 양은 전체의 77%를 차지하고 있다. 현금의 유동성 및 암호화폐에 대한 구매 수요가 높은데 비해 비트코인의 유동성이 낮기 때문에 이는 자연스럽게 시장가를 높인다는 얘기다.
중국의 엄격한 민간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도 비트코인 가격을 높이는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수년전부터 이미 거래소 폐쇄, ICO 불법화 등으로 암호화폐를 단호히 규제해 왔으며, 계좌 동결 등의 조치를 통해 암호화폐를 위안화로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됐다. 이는 중국 내 엄청난 수의 가상 지갑 속 암호화폐가 유통되지 못하고 묶이게 한다는 점, 또 중국 내 비트코인 채굴자들의 채굴 의욕을 크게 꺾어 발행량 증가에 제동을 걸리게 한다는 점에서 비트코인 공급이 줄었다는 것이 분석의 요지다.
특히 채굴에는 많은 전기가 필요한데, 채굴자들이 전기 요금을 내기 위해 채굴한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바꾸는 부분이 어렵기 때문에 채굴을 중단하는 사례가 많다. 캠브리지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비트코인 채굴량을 가늠할 수 있는 해시레이트(hash rate)가 65%에 달하며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압도적으로 높다. 이 때문에 중국의 채굴업자들이 채굴을 중단한다는 것은 글로벌 비트코인 공급량에 타격을 주기에 충분한 것으로 분석된다.
#각국 정부, CBDC 통해 두 마리 토끼 노린다
암호화폐에 이렇게 부정적인 중국 정부지만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에 있어서는 매우 선도적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이미 선전시와 함께 디지털 화폐 대규모 공개 테스트를 마쳤으며 각국에 CBDC에 대한 개방과 협력을 촉구하고 있다. 중국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위안화’를 디지털 결제 생태계의 중심으로 부상시키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전 중국인민은행 부행장은 광저우에서 열린 ‘언더스탠딩 차이나 콘퍼런스 2020 광저우’ 행사에서 “디지털 위안화 출범 이후 앤트그룹 등 제3자 결제 서비스 역할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최근 중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알리바바를 정면으로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 정부는 디지털 화폐 시대를 선도하는 국가로 도약은 하되 그 주도권을 절대 민간에 내어주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수 국가가 CBDC 발행 준비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행은 내년 CBDC 파일럿 테스트를 실시할 계획이며, 소액 결제용으로 발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카카오, 라인 등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유럽중앙은행도 ‘디지털 유로’ 도입을 결정할 예정이며 호주중앙은행도 이더리움 기반 원장 기술을 활용한 CDBC 연구에 돌입했다.
결국 어느 정부도 현재 쥐고 있는 화폐 주도권을 순순히 민간에 넘기려 들진 않을 게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거스를 수 없는 디지털 화폐 및 가상 자산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 전략의 핵심이 CBDC이며, 이를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강현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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