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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거대 부처님'께 코로나 종식 빌어볼까,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높이 18미터, 한반도에서 가장 큰 불상…고려 광종 때 창건, '은진미륵'으로 불려

2020.11.24(Tue) 11:13:31

[비즈한국] 고려 광종 때 혜명이 창건한 논산 관촉사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부처님이 계신 곳이다. 높이 18.12m, 둘레 9.9m의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흔히 은진미륵으로 불린다. 거대한 얼굴과 ‘콘헤드’를 닮은 머리, 투박한 형태로 ‘못난이 불상’으로도 불렸지만, 2018년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다. 지금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는 은진미륵은 큰 키만큼이나 영험한 신통력으로도 유명하다. 

 

논산 관촉사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부처님이 있다. 높이 18.12m, 둘레 9.9m의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흔히 은진미륵으로 불린다. 거대한 얼굴과 ‘콘헤드’를 닮은 머리, 투박한 형태로 ‘못난이 불상’으로도 불렸지만, 2018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은진미륵이 쓰고 있는 독특한 모자는 왕의 면류관을 본떠 만들었다고 본다. 사진=구완회 제공

 

#관촉사 창건과 함께 만들어진 전설

 

논산 시내에서 차로 10분, 아담한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언덕배기에 우뚝 솟은 불상부터 눈에 띈다. 3등신 체형에 뾰족한 머리 위 면류관이 사진에서 본 모습 그대로다. 거대한 불상의 정식 이름은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상입상’. 하지만 마을 이름을 딴 ‘은진미륵’으로 더 유명하다. 은진미륵이 들어선 관촉사는 고려 전기 승려 혜명이 창건한 사찰이다. 거대한 미륵보살님은 창건과 함께 세워졌는데, 여기에는 전설 한 자락이 전한다. 

 

고려 광종 때 한 여인이 충청도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캐다가 어디선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이상히 여겨 가보니, 아이 대신 거대한 바위가 땅속에서 솟아나고 있더란다. 이 소식을 들은 고려 조정에서는 그 바위로 불상을 만들기로 하고 그 일을 승려 혜명에게 맡겼다. 혜명은 100여 명의 석공들과 함께 36년이나 작업해서 마침내 거대한 불상을 완성했지만, 너무 커서 도무지 세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걱정만 하던 어느 날, 혜명은 우연히 어린아이 둘이 진흙 불상 세우는 놀이를 하는 걸 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먼저 불상은 셋으로 나눈 다음, 땅을 평평하게 하고 아랫부분을 세웠다. 그리고 그 주위에 모래 언덕을 만들어서 나머지 부분들을 차례로 올리고 나중에 모래를 치우니 진흙 불상은 온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를 본 혜명은 무릎을 치고, 그 방법을 따라 거대한 미륵보살상을 세울 수 있었단다. 

 

은진미륵 앞에는 부처님의 자비가 온누리에 비친다는 의미를 담은 석등이 있다. 이 석등의 구멍 사이로 은진미륵의 얼굴을 보면 색다른 느낌이 든다. 사진=구완회 제공

 

사실 이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혜명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모습을 바꾼 것이라고 한다. 마침내 불상이 우뚝 서자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상서로운 기운이 21일 동안 서렸으며 불상 미간의 옥호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이 소문은 단박에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이후로 지금까지 찾아와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힘센 국왕 광종과 면류관을 쓴 불상

 

전설에 등장하는 고려 3대 국왕 광종은 호족 세력을 억눌러 왕건 사후 불안해진 나라를 안정시켰다.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를 해방시키는 노비안검법은 호족의 사병을 줄이려는 계산이었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시행한 과거제는 국왕에게 충성하는 관료를 키울 목적이 컸다. 과연 광종의 치세 동안 호족 세력은 힘을 잃고 왕권은 강화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강화된 왕의 위엄이 관촉사 은진미륵에 구현되었다고 본다. 불상이 쓰고 있는 독특한 모자는 왕의 면류관을 본떠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은진미륵이 왜 이리도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며 우람하게 서 있는지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은진미륵이 들어선 관촉사는 고려 전기 승려 혜명이 창건한 사찰이다. 거대한 미륵보살은 절과 함께 세워졌다. 사진=구완회 제공

 

아담한 관촉사에는 은진미륵 말고도 볼거리가 여럿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은진미륵 앞에 있는 오래된 석등이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누리에 비친다는 의미를 담은 관촉사 석등 또한 광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등의 구멍 사이로 은진미륵의 얼굴을 보면 색다른 느낌이 든다. 

 

석등에서 조금 떨어진 삼층석탑 아래에는 연꽃무늬 조각 선명한 배례석이 누워 있다. 이 배례석의 용도는 확실치 않으나 그 위에 음식을 차리거나 향을 피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불상과 석등, 석탑, 배례석 등이 한 줄로 나란히 서 있는 것도 관촉사만의 특징이다. 석등과 석탑은 보통 야외 불상이 아니라 법당 앞에 있기 때문이다. 

 

삼층석탑 아래에는 연꽃무늬 조각 선명한 배례석이 누워 있다. 이 배례석의 용도는 확실치 않으나 그 위에 음식을 차리거나 향을 피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불상과 석등, 석탑, 배례석 등이 한 줄로 나란히 서 있는 것도 관촉사만의 특징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석문은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널찍한 판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관촉사 창건 때 밀려드는 참배객들을 막기 위해 쌓았던 성의 동문이었다고 한다. 이후 관촉사는 고려 우왕과 조선 선조, 현종, 영도 때 각각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여행메모>


관촉사 

△위치: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

△문의: 041-736-5700

△이용시간: 08:00~20:00,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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