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988년 11월 지구가 외계인의 침공을 당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실제로 당시 신문에 ‘적대적인 외계인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신문에는 종잇장처럼 구겨진 거대한 구조물의 처참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 크게 실려 있었다.
물론 아쉽게도(?) 진짜 외계인이 쳐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사진 속 구조물은 당시 미국의 웨스트버지니아 그린뱅크천문대에 있던 거대한 전파망원경이었다. 이 망원경은 지름 약 90미터에 달하는 접시 모양의 안테나 망원경이었다.
바로 전날까지 멀쩡하게 잘 서 있던 이 거대한 전파망원경은, 바람도 잔잔하던 평화로운 어느 날 밤 돌연 붕괴해버렸다. 그 모습은 외계인이 일부러 찾아와서 망원경을 부수고 갔다고 느껴질 정도로 처참했다. 그런데 2020년 올해 또 한 번 다른 거대한 전파망원경이 붕괴되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번에 무너진 망원경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전파망원경으로 유명한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번 붕괴로 인해 아레시보는 결국 전체 미션을 종료하며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던 아레시보 망원경이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대체 아레시보에게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이제는 함께 할 수 없게 된 아레시보를 추억해보자.
#외계인이 망원경을 부수고 갔다?
1988년 당시 그린뱅크천문대의 전파망원경이 무너진 것은, 망원경의 접시 안테나를 받치는 ‘목’에 해당하는 거싯 플레이트(gusset plate) 철골 구조물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1962년 지어진 이후 약 26년간 줄곧 망원경의 거대한 중량을 버티고 있던 이 구조물이 결국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진 것이다.
이후 1999년 더 단단한 새 전파망원경이 지어졌다. 다행히 이 망원경은 아직까지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2001년 첫 관측을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그린뱅크의 새 전파망원경은 활발하게 관측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천문학 연구에서 활용하는 망원경은 지름이 거의 100미터에 달할 정도로 아주 거대하고 육중하다. 그래서 스스로의 무거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위험이 크다. 그래서 망원경의 육중한 중량을 버티고 자유롭게 움직여도 지지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이 건설하는 이 거대 망원경은 현대판 피라미드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현대 건설 기술과 광학 기술의 최첨단이 집약되어 있는 기념비라고 봐도 될 정도다.
어쩌면 정말 외계인이 지구로 쳐들어와서 가장 먼저 어떤 구조물을 부서뜨릴지를 고민한다면, 아마도 가장 눈에 띄고 또 우주를 향하고 있는 거대 망원경을 먼저 공격할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망원경이 거대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
망원경이 너무 무거워서 무너진 것이라면, 차라리 망원경을 작고 가볍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망원경이 점점 비대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우선 망원경의 거울 또는 안테나 접시의 크기가 커야 같은 시간 동안 모을 수 있는 빛의 양이 더 많아진다. 망원경의 거울 또는 접시 안테나는 사람 눈으로 치자면 빛을 받는 동공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빛을 받는 그릇의 면적이 더 넓을수록 더 멀리 떨어진 희미한 우주의 빛까지 선명하게 담을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연구용 망원경은 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특히 사람 눈으로도 볼 수 있는 가시광으로 우주를 관측하는 광학 망원경과 달리, 전파로 우주를 보는 전파망원경은 훨씬 더 거대하게 만들어야한다. 가시광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갯빛에 해당하는 빛으로, 대략 300~700나노미터의 아주 짧은 파장으로 진동한다. 반면 전파는 그보다 훨씬 긴 수 센티미터에서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아주 긴 파장으로 진동한다.
빛을 카메라 조리개 구멍이나 망원경의 렌즈 등 구멍을 통해 받아들이게 되면, 빛은 다양한 경로로 들어오면서 회절(diffraction)과 간섭(interference)을 겪게 된다. 광학 기기가 받아들인 빛이 이런 회절과 간섭을 겪으면서, 촬영한 이미지의 상이 더 뿌옇고 펑퍼짐하게 퍼지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런 현상이 너무 과하게 벌어지면 광학 기기로 촬영한 이미지가 너무 흐리게 보여서, 인접한 두 지점이 거의 구분되지 않고 뭉뚱그려져 보이게 된다. 즉 이미지의 해상도, 분해능이 더 떨어지게 된다.
이 분해능은 빛을 받아들이는 구멍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정도가 약해진다. 그래서 더 지름이 큰 망원경이나 카메라 조리개로 이미지를 촬영하면, 훨씬 더 작은 미세한 구조까지 선명하게 구분되는 아주 좋은 분해능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지름이 작은 망원경으로 보면 더 작은 세밀한 구조는 구분하지 못하는 나쁜 분해능을 얻게 된다.
게다가 이 분해능은 광학 기기의 크기뿐 아니라 관측하는 빛의 파장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가시광처럼 아주 짧은 파장의 빛은, 어지간히 작은 사이즈의 구멍으로 보는 게 아닌 이상 거의 이런 회절과 간섭을 잘 받지 않는다. 그래서 수 밀리미터 수준의 아주 작은 우리의 눈 동공을 통해 가시광으로 세상을 봐도 우리는 꽤 선명한 훌륭한 해상도로 주변 세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전파는 가시광에 비해서 수백만 배 이상 훨씬 긴 파장으로 진동한다. 그래서 만약 전파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하면서, 우리가 눈을 통해서 가시광으로 보는 세상만큼 선명한 해상도로 보고 싶다면 눈 동공의 수백만 배 이상 훨씬 거대한 접시 안테나가 필요하게 된다.
이처럼 전파는 애초에 그 빛의 파장 자체가 워낙 길기 때문에, 수십 미터 수준의 거대한 안테나로 전파를 봐야만 적당한 분해능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전파망원경은 광학망원경에 비해서도 훨씬 거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접시 안테나를 무한정 거대하게 만들 수 없다 보니, 천문학자들은 하나의 비대한 단일 안테나를 쓰는 대신 여러 대의 조금 작은 안테나를 함께 활용하는 간섭계 방식을 많이 활용한다.
두 안테나를 멀찍이 떨어뜨려놓고 동시에 동일한 천체의 빛을 받아들이면, 두 안테나 사이의 거리를 지름으로 하는 아주 거대한 하나의 초거대 단일 안테나에 버금가는 아주 훌륭한 분해능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마치 사막에 함께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미어캣 무리처럼, 여러 대의 전파 안테나를 어레이로 세워놓고 함께 동일한 우주를 관측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아레시보의 갑작스런 은퇴 선언
이런 전파망원경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카리브해 푸에르토리코에 위치한 아레시보 천문대(Arecibo Observatory)의 망원경이다. 지름 300미터의 아주 거대한 망원경으로, (중국에서 새로 지은 500미터 크기의 초거대 전파망원경이 완성되기 전까지) 거의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망원경의 권좌를 지켰다. 이 거대한 망원경은 총 3만 9000여 개의 알루미늄 패널로 이루어져 있다.
축주장이 통째로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아주 거대한 크기이기 때문에, 다른 일반적인 접시 안테나 망원경과 달리 지지대 위에 접시가 얹어져서 접시가 자유롭게 돌아가는 형태의 망원경이 아니다. 아레시보 망원경은 산 꼭대기에 둥글게 파여 있던 싱크홀 위에 거대한 둥근 접시 안테나를 조립해서, 그냥 안테나 주경(primary mirror) 자체를 밥그릇처럼 얹어놓은 모습이다.
아레시보 망원경의 주경은 움직일 수 없게 땅바닥에 박혀 있는 붙박이 망원경이다. 그래서 원하는 하늘을 보기 위해서 주경을 움직일 수 없다보니, 대신 주경으로 반사해서 모은 빛이 도달하는 초점에 놓인 검출기를 이동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아레시보 망원경의 주경 위에는 공중에 여러 단단한 금속 케이블로 연결되어서 매달린 검출기가 떠 있다. 천문학자들은 주경을 움직이는 대신 이 검출기를 조금씩 움직이면서 아레시보 망원경이 보는 하늘의 방향을 조절한다.
아레시보 망원경은 1963년 건설되어 벌써 거의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다. 이 거대 망원경은 아주 오래된 골동품이기는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중요한 발견의 순간마다 아주 큰 역할을 해주었다. 이 망원경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빠른 속도로 자전하는 중성자별, 펄사의 존재를 규명했고 그 발견은 이후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또 천문학자들은 외계 문명의 신호를 검출하는 SETI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이 아레시보 망원경을 활용해 지구의 신호를 우주 공간으로 송출하는 시도를 했다. 별들이 많이 모여 있는 페르세우스자리의 구상성단을 하나 골라 그곳의 별들을 향해 지구의 자기소개서가 담긴 아레시보 메시지를 송출했다. 1992년에는 펄사 곁을 돌고 있는 최초의 외계행성이 발견되어 외계행성 천문학의 역사를 열었고, 가장 최근에는 지상과 우주망원경, 그리고 중력파 검출기와 함께 협력해서 중력파를 일으킨 두 별의 강력한 충돌 현장을 후속 관측하는 일에도 동참했다. 이처럼 아레시보 망원경은 아주 오래된 노장이지만, 최근까지도 중요한 연구 순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해 연륜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레시보도 결국 세월을 속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지난여름, 망원경의 검출기를 매단 케이블 하나가 끊어지면서 공중에 떠 있던 구조물이 그대로 망원경의 주경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망원경의 주경이 크게 파손되면서 관측이 일시 중단되었다. 그런데 복구가 끝나기도 전, 올해 11월 또 한 번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 망원경은 거의 재기 불능 상황에 빠졌다.
사실 아레시보 망원경이 건설되어 있는 푸에르토리코는 해마다 강한 토네이도가 찾아오고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 여러모로 하늘과 땅의 자연 재해로 힘든 곳이다. 하지만 자연 재해를 꿋꿋하게 버티며 관측을 이어온 아레시보 망원경도 결국 환갑을 바라보는 세월 앞에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
연이은 사고로 망원경이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거라 판단한 천문학자들은 결국 2020년 11월 20일 아레시보 망원경의 관측 프로젝트 미션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고 선언했다. 오랫동안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접시, 밥그릇으로서 전파를 통해 우주의 다양한 비밀을 확인한 아레시보 망원경은 이제 역사 속의 유물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또 한 번 인류의 현대 천문학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그 주인공이 은퇴를 하면서, 인류의 천문학이 또 다른 새로운 세대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보여주게 되었다.
최근 몇 년간 1980~90년대 인류의 천문학 부흥기를 상징했던 다양한 탐사 로봇과 관측 시설이 줄줄이 은퇴하고 있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태양계를 벗어나 진정한 우주 항해를 시작한 보이저 탐사선들이 공식적으로 더 이상 신호를 주고받기 어려워졌다고 선언했고, 화성에서 오랫동안 홀로 붉은 사막을 떠돌던 오퍼튜니티 탐사선도 모래 폭풍을 버티지 못해 갑작스런 미션 종료를 선언했다. 유일하게 토성 곁을 맴돌며 아름다운 고리와 다채로운 토성과 위성의 모습을 보여주던 카시니 탐사선도 토성의 구름 속으로 추락, 자신이 평생 탐사했던 행성의 일부가 되면서 미션을 종료했다.
그리고 인류의 천문학 역사와 함께한 또 다른 주인공, 아레시보 망원경도 이제 미션을 종료했다. 인류는 우주 탐사, 우주 개발의 추억을 ‘과거의 역사’로 추억할 수 있는 세대를 살게 되었다. 아쉽게도 아레시보 망원경은 이제 인류의 천문학을 상징하는 유물로서, 푸에르토리코의 울창한 숲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레시보 망원경을 통해 하늘을 바라봤던 천문학자, 그리고 인류의 호기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레시보가 미처 다 담지 못했던 또 다른 어둠을 향해 우리는 또 다른 거대한 망원경으로 우주를 바라보며 그 어둠을 밝히게 될 것이다.
6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인류에게 아름다운 전파 우주를 보여준 아레시보의 영원한 안식을 빈다.
참고
https://public.nrao.edu/gallery/zapped-by-aliens/
https://public.nrao.edu/gallery/the-collapsed-300foot-telescope/
https://www.ucf.edu/news/broken-cable-damages-arecibo-observatory/
https://www.sciencemag.org/news/2020/11/second-cable-breaks-puerto-rico-s-arecibo-telescope
https://www.nsf.gov/news/news_summ.jsp?cntn_id=301674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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