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사실상 독과점을 허용한다는 비판이다. 부실기업 회생과 산업재편 등을 고려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의견과 부딪혀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KCGI 주주연합 측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반대하고 나서 다시 대한항공 경영권 분쟁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16일 항공운송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놨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골자며, 이를 위해 한진칼과 총 8000억 원 규모의 투자계약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이 한진칼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약 10.7%의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고, 향후 한진칼이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 배정 유상증자 단행 때 산업은행이 투자한 돈을 투입하는 구조다.
대한항공은 한진칼로부터 받은 자본 중 1조 8000억 원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사용한다. 정부 측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항공산업의 불확실성이 크고, 재무상태가 악화된 아시아나항공의 회생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항공산업도 조선·해운처럼 산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며,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과도한 공적자금 지출을 막겠다는 취지다.
미국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델타-노스웨스트, 아메리카항공-US에어웨이스가 각각 합병했다. 유럽에서는 독일 루프트한자가 유럽 항공사들을 인수했다. 항공산업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중 코로나19와 경기 악화로 인해 항공산업의 합종연횡이 활발하다.
국내 사립대학 경영학과 교수는 “아시아나항공의 독자생존이 어려웠던 상황에서 부실을 정리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정부와 한진, 금호 모두의 이해관계를 충족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두 항공사의 합병이 대한항공 경영권 분쟁으로 불똥이 튀었다. 현재 상황대로 시간이 흐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자연적으로 경쟁력을 잃어 도태됐을 텐데, 대한항공이 공적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정부를 자극해 의도적으로 합병의 길을 연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조원태 한진 회장 측은 정부로부터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한편 항공산업의 합법적 독점을 가져가려 한다는 설명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인수합병(M&A)과 관련해 17일 논평을 내고 “그룹 지배권 안정시키고 향후 항공 산업 재편으로 독점적 지위까지 추가로 보장하는 재벌 특혜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산업은행이 한진칼 지분 취득을 통해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할 경우 한진칼의 지주회사 의무지분율 요건(상장회사 20% 이상)을 지키는 동시에 대한항공에 대한 경영권을 강화할 수 있다. 또 정부와 한진칼의 연대가 공고해져 정부는 조 회장의 우호 주주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HDC현대산업개발의 M&A가 불발됨으로써 아시아나항공은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며 “장거리 노선정리, 마일리지 축소 등으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대한항공이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잠잠하던 KCGI 등 3자연합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한진칼의 지분을 매입함으로써 조 회장의 우군이 되는 것이 특혜라는 것이다.
현재 우호지분을 포함한 조 회장 측의 한진칼 지분은 약 41%로, 3자연합의 45.24%에 못 미친다. 그런데 산업은행이 한진칼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3자연합의 지분율은 42.9%로 희석된다. 조 회장 측 역시 37%로 줄지만, 산업은행이 10.7%를 확보하게 된다. 산업은행이 조 회장의 편을 들면 조 회장 우호지분은 47.7%로 불어나 상황이 뒤집어진다.
이에 KCGI는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들에게 먼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며 18일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제3자 배정방식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회사가 자본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3자연합이 직접 참여하겠다는 주장이다. 조 회장 편에 설 가능성이 큰 산업은행이 캐스팅보트를 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자연합 측은 독점 유발 가능성이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의 면밀한 기업결합심사가 필요하다고도 주장한다. 정치권도 이런 주장에 동조하고 있어 산업은행으로서는 적잖은 부담을 진 상황이다.
또 노선 조율을 위해선 해외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합병의 명분인 고용유지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대한항공으로선 3자연합의 반발부터 무마한 뒤 이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야 하는 입장이다.
거꾸로 경영권 분쟁에서 뚜렷한 승기를 잡지 못했던 KCGI로서는 이들 문제를 활용해 우위를 점하려 할 거란 게 증권업계 시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3자연합의 내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다소 정체됐던 상황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문제가 다시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가 된 측면이 있다”며 “대한항공으로서는 3자연합의 지분을 고가에 매입해주는 등의 대응 전략을 고민해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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