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두 번이나 연장된 귀국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글을 쓸 때는 최소한의 필수품만 갖춰진 집에서 험난한(?) 격리 생활을 하고 있을 테니 이번 글은 베를린에서의 마지막인 셈.
컨테이너를 한국으로 보낸 지가 한 달인데도 귀국한다는 사실에 대해 줄곧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문득 지금 누리는 일상이 조만간 한낱 꿈처럼 느껴지겠지, 하는 짐작만 될 뿐. 귀국행 티켓을 받고 보니 그제야 현실 감각이 돌아온 사람처럼 베를린과의 이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음을 깨닫는다. 매일같이 많은 기억이 스쳐가고, 아쉬움이 밀려든다. 지난 시간을 나름 알차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이렇게 후회되는 것들만 떠오르는 것인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밤늦게 와인을 홀짝대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던 우리 부부는 요즘 그 횟수가 잦아졌다. 한밤중 수다를 나누는 재미보다 수많은 품종의 와인들을 저렴한 값에 맛보는 재미가 사라진다는 아쉬움이 크기 때문. 한국에서는 와인을 그닥 즐기는 편이 아니었던 우리는 이곳에서 와인의 세계에 눈을 떴다.
온갖 품종을 공부하면서 마시는 학구파는 아니고, 여기저기 널린 와인숍이며 마트마다 있는 대형 와인 코너 앞에서 ‘실험’ 해보고 싶은 와인을 사다가 마셔보곤 했다. 특별한 날 마시는 고급 와인을 제외하곤 대체로 5유로대 와인부터 10유로 후반대 와인까지 다양한 선택지를 경험해본 결과, 어쩌다 싸고 맛있는 와인을 발견하는 건 정말 재수 좋은 일이었고, 최소 7~8유로 정도는 되어야 실패 확률이 적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가격을 생각하면 이게 웬 횡재냐 싶을 때가 많아서 때론 맛보다 기분에 취할 때도 있었지 싶다. 3년 전, 한국에서 10만 원에 판매되는 와인을 마트에서 9.99유로에 샀을 때의 짜릿함이란. 꾸준히 가격이 올라 지금은 50%가 오른 15.99유로에 판매하고 있지만, 더 많이 마시지 못한 게 후회될 뿐이다.
와인뿐이랴. 넘쳐나는 다양한 종류의 치즈와 살라미 등 초호화 안주를 곁들여 차려도 한국에서 와인 한 병 값도 안 되니, 왜 더 많은 와인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인지 아쉽기만 하다. 와인으로 시작된 ‘아쉬운 것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말도 안 되게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다.
독일빵을 더 먹지 못한 것도 아쉽다. 한국에서 먹던 달콤한 빵이 아닌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게 생긴 독일빵은 생김새처럼 담백함 그 자체다. 통밀로 만들어 거칠지만 씹다보면 단 맛도 느껴지고 고소하다. 느끼하지 않으니 소화가 안 되거나 속이 불편한 느낌이 없다. 아들이 학교에 가는 아침에는 주로 빵과 커피로 부부의 아침식사를 대신했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독일빵이 그리울 것만 같다. 독일빵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고 들었는데 빵 사자고 멀리까지 갈 수도 없는 노릇. 한국에 돌아가면 주말에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남편의 말이 실현되기만 바랄 뿐이다.
캠핑 천국인 독일에서 캠핑장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한이다. 베를린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도 호수를 낀 천혜의 캠핑장이 널렸는데 어쩌자고 한 번을 못 가봤을까. 변명하자면 캠핑장비가 없었고, 캠핑카를 빌리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고, 세팅되어 있는 캠핑카나 오두막을 빌리자니 단기 이용은 예약이 꽉 찼고 최소 3~4일 이상만 예약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깨달았는데, 골프를 시작했더라도 좋았겠다 싶은 아쉬움도 든다. 우리 부부는 골프에 관심이 없어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경험 삼아 시작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인 지인이 본인도 여기 와서 골프를 시작했다며, 한국에서 필드 한 번 나갈 돈으로 연간 회원권을 끊을 수 있으니, 산책하는 셈치고 아들이랑 골프 치러 가는 행복이 쏠쏠하다고 말했을 때 짧은 탄식이 새어나올 지경이었다. 한국에선 누려보지 못할 경험을 놓쳤구나, 싶어서.
그러고 보니 클럽에도 못 가봤다. 못 간 건지 안 간 건지 모르겠지만 아쉽다. 베를린은 클럽으로 유명한 도시다. 베를린에만 280여 개의 클럽이 있다는데, 그 중 압권은 베르크하인이다. 세계 1위 클럽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달고 있는 베르크하인은 아무에게나 허락된 곳이 아니다. 베르크하인 입성 자체가 엄청난 자랑거리가 될 정도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 기준에 대해서도 설이 많다. 누군가는 상하의 모두 검은색을 입어야 한다고도 하고, 지인들과 함께가 아닌 혼자라야 확률이 높다고도 하는데 가장 정확한 팁은 문지기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르크하인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고는 오로지 사진가이기도 한 문지기의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
대형 발전소 건물이었다는 그곳은 규모만 약 3300㎡(1000평)으로, 내부 분위기 자체로도 압도적이라는데, 사진 촬영이 불허된 방침 상 가보지 않고서야 안을 확인할 길이 없다. 사진만 봐도 험상궂은 문지기 아저씨 마음에 들 자신도 없고.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으니, 코로나 시국으로 클럽 영업이 금지되면서 베르크하인이 ‘임시 갤러리’로 변신했다는 뉴스였다. 영업손실을 메우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지 모르지만 클럽을 갤러리로 바꾼다는 아이디어가 얼마나 신선하게 느껴졌던지. 나처럼 내부가 궁금해 입성해보고 싶었던 이들에게는 이만한 기회가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터. 소식을 듣고 예약을 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귀국하기 전 가능한 날짜가 없더란 사실. 베르크하인의 문턱은 클럽일 때나 갤러리일 때나 높기만 하다.
생각만큼 미술관에 자주 가지 못한 것도 아쉽다. 3년 전 유럽살이에 대한 기대감 중 가장 큰 것이 미술관을 밥 먹듯 다닐 수 있다는 설렘이었다. 파리나 런던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베를린에도 크고 작은 미술관이 넘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부터 비교적 덜 알려진 작가와 작품까지 차고 넘치니까.
게다가 50유로면 베를린 내 시립 미술관 및 박물관 등을 무료로, 그것도 아이 2명까지 동반 입장할 수 있는 연간 회원권을 살 수 있으니 이 정도면 ‘거저 먹는’ 수준이다. 유물보다 회화를 사랑하는 내가 가장 애정하는 곳은 박물관섬에 있는 구 국립미술관이었다.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어떤 날은 30분만, 어떤 날은 1시간만 둘러보는 식으로 그림 보는 행복을 기꺼이 누렸는데, 올해 코로나 시국 이후 한 번도 못 갔다.
갈 수 있었을 때 더 많이 갔더라면 좋았을 걸, 후회해봐야 소용없지만 눈물 나게 아쉽다. 마네, 모네, 르느와르, 로뎅 등 당대 대가들의 작품도 많지만 내가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보고 온 작품은 아놀드 뵈클린의 ‘죽음의 섬’이었다. 라흐마니노프가 그 작품에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었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주는 작품은 삶과 죽음에 대한 쓸쓸한 장면을 담았으면서도 어딘가 평온하게 느껴져 그 앞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림 이야기를 하다 보니 피렌체를 가지 못한 것도 뼈저리게 후회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우피치 미술관에서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르네상스 거장들의 숨결을 느껴봤어야 하는데, 두오모대성당에서 엔리오 모네꼬의 ‘냉정과 열정사이’ OST를 무한반복해 들으며 벅찬 감격을 느껴봤어야 하는데. 한국에 돌아가고 나면 언제쯤 가볼 수 있을지.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올 여름 우리의 휴가 예정지였던 아이슬란드를 가지 못한 것도 가슴이 아프다. 유럽여행 중 단연코 베스트였던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와는 또 다른 대자연의 신비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포기한 게 어디 그뿐일까만 한국에서는 가볼 생각 자체를 하기 힘든 곳이라 더더욱 아쉬움이 크다.
독일어를 좀 더 적극적으로 열심히 배웠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물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래도 3년 넘게 살았는데 여전히 마트에 가고 카페에서 주문하고 물건 사는 것 정도만 가능한 수준이란 게 안타깝고 부끄럽다. 한국에 가서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언어를 배우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던 독일에서 뭐하다가 그런 생각을 하나 싶어 피식 웃음만 나온다.
베를린 정착 초기에 스트레스만 받다가 6개월을 어영부영 흘려보낸 것, 옛 베를린 혹은 독일의 풍경이 담긴 그림 한 장을 사고 싶었는데 여태 맘에 드는 그림을 발견하지 못한 것, 더 많은 공원과 숲을 찾아다니지 못한 것, 와이너리 투어를 하지 못한 것, 맥주 양조장에 가보지 못한 것, 바이에르 뮌헨의 축구 경기를 직관하지 못한 것 등등 말하자면 과연 끝이 있을까 싶은 아쉬움들.
그래도 나는 안다. 아쉬움보다는 아름다운 기억과 추억,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 우리 가족을 단단하게 한 시간들만을 간직하고 떠나도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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