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무궁화신탁 관계사인 부동산 자산운용사 케이리츠투자운용이 올해 초 서울 서초구 500억 원대 상업용 건물(빌딩)을 매입한 뒤 임차인과 갈등을 겪고 있다. 케이리츠가 임대료 2.57배 인상을 요구하고 임차인 동의 없이 증축 공사를 강행해 영업에 큰 차질을 주고 있다는 것이 임차인들의 주장이다. 임차인들은 공사중지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맞서고 있다.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케이리츠투자운용(케이알전문투자형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17호)은 올해 1월 서울 서초구 중앙화촌빌딩을 신탁사인 엔에이치(NH)투자증권을 통해 매입했다. 매매가는 500억 원, 매도자는 비주거용 건물 임대업을 영위하는 중앙화촌기업이다. 중앙화촌기업은 1992년 2월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인근 교보빌딩 맞은편에 지하 4층~지상 10층(연면적 5764.69㎡, 1743.82평) 규모로 이 빌딩을 지었다. 현재 빌딩에는 프랜차이즈 카페, 일본어학원, 의료기기업체, 치과 등이 입점했다.
#법정 임대료 인상률 5%인데 2.57배 인상 요구
중앙화촌빌딩 새 건물주와 임차인 간 분쟁은 올해 3월 2층에서 처음 시작됐다. A 어학원은 2018년 7월 직전 건물주인 중앙화촌기업과 중앙화촌빌딩 2층 전용면적 277.12㎡(83.83평)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임대조건은 계약 기간 2년, 임대보증금 1억 3000만 원, 월세 750만 원, 관리비 월 250만 원이었다. A 어학원은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자 올해 3월 17일 당시 계약과 동일한 조건으로 계약 갱신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케이리츠투자운용 측은 4월 22일 보낸 갱신요구 회신 문서에서 계약 기간 1년, 임대보증금 1억 5433만 원(1.19배), 임대료 월 1929만 원(2.57배), 관리비 월 482만 원(1.93배)을 임대차계약 갱신 조건으로 제시했다. 케이리츠 측은 이 문서에서 “현 임대차 시세 등을 반영해 임대차 조건을 보낸다”며 “요청한 임대차계약의 승계 동의는 불가함을 통보”한다고 적었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서울에서 환산보증금(보증금+월 임대료×100) 9억 원 이하인 상가 임차인은 임대차기간 만료 6개월~1개월 전까지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다. 계약 갱신은 최초 임대차기간을 포함해 최대 10년까지 가능하다. 건물주는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갱신되는 계약은 직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계약하는 게 원칙이지만, 요청에 따라 임대인은 차임이나 보증금을 최대 5%까지 올릴 수 있다.
케이리츠와 A 어학원은 임대차계약이 끝나는 날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케이리츠 측은 최종적으로 월 임대료와 관리비를 각각 20%(150만, 50만 원) 인상하는 안을 제시했고, A 어학원 원장은 코로나19 여파를 고려해 오히려 한시적으로 인하해달라고 맞섰다. 결국 건물주 측은 임대차기간 만료일인 7월 9일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A 어학원 원장은 “2019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경기침체와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1·2분기 매출액이 전년의 40%로 급감했고 3·4분기 매출도 급감할 것으로 예측됐다. 임대료와 관리비 체납 사실도 없어 정당한 계약 갱신 청구를 했음에도 새 건물주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은 물론 상거래 일반 상식에도 벗어난 임·관리비 인상을 요구했다. 현 건물과 유사한 주변 건물에서도 어학원이 체결한 조건보다 20~30% 이상 싸게 임대차계약을 맺은 곳이 있다. 계약 만료 전까지 이런 근거로 여러 차례 내용증명을 주고받았지만, 법정 수준을 맞출 수 없었다”고 전했다.
케이리츠투자운용 측은 이에 대해 “당 빌딩은 주변 시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임·관리비로 임대되어 있고, 특히 2층 어학원의 임대조건은 빌딩 내 다른 임차인들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 점을 고려해 임관리비 인상을 요구하였으나, 임차인은 오히려 임대료의 인하(30%)만을 요구해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최근 동결 수준에서 최종 구두 협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계약 2년 남았는데 증축 위해 중도해지 요청
임대차계약을 둘러싼 분쟁은 5층에서도 있었다. B 치과의원은 지난 4월, 케이리츠 측으로부터 3개 층을 증축하게 됐으니 올해 7월 31일 임대차계약을 중도 해지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B 치과는 2017년 11월부터 5년간 중앙화촌빌딩 5층에 임대차계약을 맺어, 당시는 계약 기간이 2년여가 남은 때였다.
B 치과의원 원장은 지난 7월 6일 건물주 측에 거부 의사를 전했다. 증축 공사가 양측이 체결한 임대차계약이나 민법상 계약 해지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사용·수익에 필요한 건물 상태를 유지할 의무를 부담하는 임대인이 건물 증축 공사로 소음, 분진, 진동을 일으킬 경우 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증축 공사 둘러싸고 갈등 심화…관할구청 “당사자 계약 외 관련 규정 없어”
임대차 분쟁이 평행선을 달리던 7월 말 중앙화촌빌딩 증축 계획이 구체화됐다. 케이리츠는 7월 29일 서초구로부터 10층 규모인 중앙화촌빌딩을 13층 규모로 3개 층을 증축(대수선 및 용도변경 포함)하는 내용의 건축 허가를 받았다. 공사 기간은 올 9월 1일부터 이듬해 4월 9일까지 약 7개월이다. 케이리츠 측은 착공 두 달 전인 7월부터 최상층 9~10층 임차업체(C 치과의원과 D 의료기기업체)을 3~4층으로 이전하는 절차를 밟았다.
공사 계획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임차인들은 반발했다. 임차인들에 따르면 증축 공사를 맡은 시공사는 올 9월 8일 ‘공사를 3일 뒤부터 시작한다’고 임차인에게 통보했다. 다음날에는 공사 세부 내용과 일정이 담긴 공정표를 전달했다. 공사기간 영업손실에 대한 보전 계획은 별도로 제시되지 않았다.
중앙화촌빌딩 임차업체 5곳은 같은 달 22일 공사 중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시공사에 보냈다. 시공사가 제시한 자료를 근거로 공사 진행할 경우 △소음 발생, △엘리베이터 교체공사 시 공사작업자와 동선 충돌 △펜스 및 분진 가림막 설치로 시야 지장, △먼지·분진 발생, △변압기 교체로 인한 정전 발생으로 피해가 예상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건물주가 공사를 강행하자 임차인들은 법적 조치에 나섰다. A 어학원(2층)과 C 의료기기업체(4층), D 치과의원(3층) 등은 9월 23일 공사중지가처분을, B 치과의원은 같은 달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업무방해금지가처분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냈다. 양측은 현재 가처분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B 치과의원 원장은 “9~10층 임차업체가 3~4층으로 이전할 즈음인 7~8월경 6층 철거 및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됐다. 치과를 운영하는 5층에서는 이때부터 극심한 소음과 진동에 시달리며 진료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9월부터는 저층에 펜스가 쳐지기 시작하더니 10월에는 펜스가 건물 전체를 막았다. 펜스를 치고 나서는 건물을 앞에 두고 치과를 찾아오지 못하는 환자도 허다하다. 증축 공사 공정률에 비례해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 증축공사에 대한 사전동의나 의견조율 없이 공사를 강행하면서 피해는 커지고 있다. 건물주의 투자 이익을 위해 임차인이 피해를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A 어학원 원장은 “건물주 측과의 마지막 협상에서 임대료를 동결하는 조건으로 합의안을 도출했는데, 다음날 건물주 측은 7개월이 소요되는 건물 증축 및 리모델링 일정을 통보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00여 명의 입시생과 고등학교 1~2학년 학생 80여 명이 수업을 들으러 학원에 온다. 매년 6월과 11월 일본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이맘때쯤 신규 원생이 몰리는데, 건물이 펜스로 가려져 신규 원생 모집도, 소음과 분진으로 기존 원생 교육도 어려운 상황이다. 새 건물주가 갱신 조건을 확정하고 공사 피해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케이리츠투자운용 측은 이에 “일부 임차인 측에서 공사 시작 전부터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주장하며 임대보증금의 6배가 넘는 8억 이상의 과도한 보상비를 요구해 협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협의가 가능한 임차인들과는 협의를 완료해 퇴거 후 공사를 시작했다”며 “반대하는 임차인들의 지속적인 공사 방해로 공사 일정이 지연되어 당사에도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나, 원만한 협의를 위해 임차인들의 영업손실 관련 객관적 자료 및 보상금액을 서면으로 요청했다. 임차인들로부터 아직 답변은 받지 못한 상태다”고 밝혔다.
건물주가 건물을 늘리거나 고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임차인과의 갈등은 민사 소송을 제외하곤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서초구청 푸른환경과 관계자는 “중앙화촌빌딩에서 소음과 진동 민원이 10건 이상 제기돼 매번 현장을 찾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소음·진동 관리법상 한 건물에서 일어나는 소음 등은 스스로 규약을 정해 해결하도록 돼 있다. 제재 수단은 없지만 공사 현장에 가서 저소음 공법 사용과 건물 밀폐에 유의하도록 지도했다”고 밝혔다. 서초구청 건축과 관계자도 “건축법상 기존 건축물에 대한 증축, 대수선 시 임차인 동의 등의 관계를 정한 사항이 없다. 둘의 관계는 당사자 간 계약 관계에 따른다. 피해를 구제 받을 수 있도록 공사중지가처분 절차를 안내했다”고 말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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