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연말 인사를 앞둔 CJ그룹의 경영 승계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에는 12월에 발표된 정기 임원인사가 올해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영환경 불확실성 장기화로 앞당겨질 거라는 관측이 나오며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씨의 거취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임원 인사 일정은 내부에서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작년에도 10월부터 이야기가 나왔는데 발표가 된 건 12월 말이다. 이선호 부장이 임원으로 승진할지에 관심이 많은 걸 알고 있지만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전했다.
#마약 밀반입 장남, 복귀할까
1990년생인 이선호 부장은 올해 만 30세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금융경제학을 전공했으며 2013년에 CJ제일제당 공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대리와 과장을 거쳤다. 일찍이 유력한 후계자로 점찍어졌으며, 본격적인 승계 작업은 2017년 3월 CJ그룹 전략실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시작된 걸로 알려졌다. 이후 다시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관리팀장으로 근무하다가 지난해 4월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 식품전략기획 1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선호 부장이 지난해 9월 미국에서 국내로 입국 중 변종 마약을 밀반입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변수가 생겼다. 이 부장은 변종대마를 투약하고 밀반입한 협의로 재판에 넘겨져 올해 2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회사는 그에게 중징계에 해당하는 정직 처분을 내렸다. CJ그룹 관계자는 “(이 부장은) 지금은 정직 상태로 자숙 중”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번 CJ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지주사인 CJ(주) 상무에 이 부장이 선임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1·2심 재판부가 잇따라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고, 지난 2월 CJ그룹 차원에서 내린 3개월 정직 징계 절차까지 마무리됐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이 부장이 복귀할 때가 됐다고 판단한다는 풍문이 돈다.
이 부장의 나이가 타 그룹 3세들에 비해 많지 않음에도 복귀를 서두르는 데에는 이재현 회장의 건강 문제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이 회장은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병(CMT)을 앓고 있고, 2013년에는 신장에서 문제가 발견돼 부인 김희재 씨로부터 신장을 이식받았지만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혹시 모를 경영 공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이 부장을 경영 일선에 빨리 복귀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주식 증여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CJ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에 있는 건 지주사인 CJ(주)다. 이재현 회장이 CJ 지분 42.1%를 갖고 있는 데 비해 이 부장은 2.75%, 이 상무는 1.2%로, 비교적 적은 양을 보유하고 있다. 그룹 승계를 위해선 지분 변동이 필수적인데, 막대한 증여·상속세가 부담되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말 본인 소유의 CJ 신형우선주 184만 1336주를 장녀 이경후 CJ ENM 상무와 이선호 부장에게 92만 668주씩 증여했다. 신형우선주는 의결권이 없는 대신 보통주보다 현금배당을 더 받는 주식으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다. 특히 당장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대체로 보통주보다 저렴한 가격에 거래된다는 점에서 증여세를 줄이면서 장기적으로는 보통주 지분율을 확대할 수 있어 지분승계 수단으로 이용된다.
이 회장이 이경후 상무와 이선호 부장에게 증여한 지분은 CJ가 작년 3월 27일 시행한 보통주 1주당 0.15주의 배당을 통해 취득한 우선주로, 10년 뒤인 2029년 보통주로 전환된다. 이 부장은 이를 통해 기존에 보유하던 CJ 지분 2.75%과 더해 총 5.2%를 보유하게 된다.
#상속 재원 마련 수단으로 ‘CJ올리브영’ 주목
승계 과정에 가장 주목받는 계열사는 CJ올리브영이다. 지난 9월 구창근 CJ올리브영 대표는 사내 게시판에 “2022년을 목표로 IPO를 준비 중이며, 이를 위해 프리IPO(상장 전 지분 일부를 외부 투자자에 미리 판매하는 투자 유치 행위)를 추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IPO 추진 과정에 3세들이 보유한 지분을 매각하고, 여기서 마련한 비용으로 CJ 지분을 매입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상속에 필요한 재원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CJ올리브영 측은 “IPO 추진 사실을 밝힌 건 사내 중요한 변경 사항을 직원들에게 공유하겠다는 구 대표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 아직 매도 지분 규모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올해 1월 6일 올라온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CJ올리브영 지분의 55.01%는 CJ(주)가 갖고 있으며, 이선호 부장이 17.97%를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 회장의 동생 이재환 CJ파워캐스트 대표가 10.03%, 이경후 CJ ENM 상무가 6.91%, 이재환 대표의 자녀 이소혜·이호준 씨가 각 4.58%를 갖고 있다. 오너 일가가 보유한 전체 지분은 44.07%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그룹 핵심계열사가 아니어도 오너 일가 지분이 높기 때문에 승계 작업에 활용하기에 적당한 것으로 보인다. 오너 일가는 프리IPO 과정에서 지분을 매각할 수 있고, 상장 후 지주사 지분으로 맞교환할 수도 있다. 이제는 현금 확보를 위해 기업 가치를 올리는 게 남은 과제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논란 잠재울 경영 능력 보여줘야
그룹 안팎에서는 이선호 부장이 복귀를 해서 경영 승계 작업을 이어간다면 논란을 상쇄할 경영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CJ 계열사 한 관계자는 “계열사 임원 인사도 함께 날 예정이기 때문에 전 계열사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선호 부장이 포함될지 모르지만 이와 관련해 회사 내에서도 말이 많다. 이번 인사로 승진을 하든 부장으로 복귀를 하든 그동안의 불신을 잠재우기 위한 실적을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전반적으로 부진한 계열사의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도 있다.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은 올해 꾸준히 성장한 반면 CJ ENM, CJ CGV 등은 코로나19가 악재로 작용했다. 계열사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타개할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이재현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 상무의 역할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가장 힘을 얻고 있는 건 고모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미디어 사업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상무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조리심리학 석사 학위를 마쳤다. 이후 2011년 CJ그룹 사업팀 대리로 입사해 CJ오쇼핑 상품기획, 미국지역본부 통합마케팅 팀장 등을 거쳐 2017년 상무로 승진했다. 2018년 7월에 CJ 오쇼핑과 CJ E&M이 합병한 신설법인 CJ ENM 브랜드본부장으로 발령받았다.
앞서의 CJ 계열사 관계자는 “이선호 부장의 마약 파문 당시 누나 이경후 상무가 경영권을 승계할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회사 안팎에 돌긴 했지만 가능성이 커 보이진 않는다. 이경후 상무가 근무하는 CJ ENM도 올해 실적 부진으로 논란이 많았다. 아직 그룹 내에서는 승계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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