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애플이 지난 6월 개발자 컨퍼런스 WWDC에서 예고했던 자체 프로세서와 이를 쓴 맥을 발표했다. 애플에게 맥은 여전히 중요한 기기이고, 생태계를 이루는 출발점이다. 팀 쿡 CEO는 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애플의 DNA’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데 이번에는 프로세서를 바꾸는 큼직한 변화이기 때문에 DNA의 변화라고 보기에도 충분하다.
새 프로세서는 M1으로 이름붙였다. 저전력과 작은 크기, 전력 효율성 등을 중심에 두었다. 이 칩은 애플이 아이폰, 아이패드 등 모바일 기기에 쓰는 A시리즈 칩과 출발점이 같다. 전체적인 구조는 이번에 아이폰12에 들어간 A14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오히려 이전에 맥에 들어가던 인텔 프로세서를 비롯해 전통적인 컴퓨터의 형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많은 부분이 칩 안에 통합되기 때문이다.
M1은 CPU와 GPU, 그리고 뉴럴 엔진 등 컴퓨팅 파워를 결정하는 처리장치 뿐 아니라 메모리와 외부 입출력 컨트롤러, 오디오, 보안 모듈 등을 칩 하나로 구성했다. PC로 치면 메인보드에 들어가는 큼직한 칩들이 대부분 M1 칩 안에 들어가는 셈이다. 극단적으로 보면 새 맥의 메인보드는 M1 칩과 SSD로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칩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얻게 되는 가장 큰 이점은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성에 있다. 특히 통합 메모리 아키텍처가 적용되는 점에 기대가 크다. 현재 모든 컴퓨터는 SSD나 HDD를 비롯한 저장장치에 담긴 정보를 ‘메모리’라고 부르는 D램에 복사한 뒤 CPU가 이를 처리하게 된다. 최근의 흐름은 게임이나 이미지, 영상, 그리고 인공지능까지 그래픽 처리장치인 GPU의 역할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때는 CPU가 처리해 메모리에 저장했던 데이터를 내부 전송 버스를 통해 GPU의 메모리에 복사해서 다시 GPU 처리를 한다.
하지만 M1의 통합 메모리 설계는 메모리가 M1 칩 내부에 들어가기 때문에 SSD에서 데이터를 한 번 불러오면 CPU, GPU, 뉴럴 엔진이 서로 데이터를 옮기거나 복사할 필요 없이 각자가 메모리에 직접 접근해서 데이터를 처리한다. 또한 CPU와 메모리가 직접 붙기 때문에 지연속도도 더 줄어든다. 애플이 전반적인 성능 향상을 자신하는 이유가 바로 이 통합 설계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M1은 5나노미터 공정으로 설계됐고, 16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담긴다. 아이폰 12에 들어간 A14 바이오닉의 트랜지스터 118억 개보다 50% 정도 더 많다. 기본적으로 코어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CPU 코어는 8개인데, ARM 기반 설계에서 주로 쓰는 빅리틀 구조로 고성능 코어 4개, 고효율 코어 4개의 구조를 따른다. 두 가지 코어는 각자의 캐시 메모리를 갖고 있어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고 지연 속도도 낮아진다. 또한 8개 코어가 필요한 상황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할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8개 코어가 동시에 움직여서 고성능을 내기도 한다.
결국 애플이 새 칩에 거는 기대는 M1 칩의 전력 대비 성능에 있다. 보통 프로세서의 경우 평소에는 성능을 낮춰 전력 소비량을 줄이고, 높은 성능이 필요할 때는 많은 전력을 쓰는데 애플은 M1 칩이 이전의 인텔 프로세서를 쓰던 것보다 모든 상황에서 더 높은 성능을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다. 더 낮은 전력으로 더 높은 성능을 낸다는 의미다.
M1은 맥북 에어를 기준으로 특정 구간에서 최대 성능 차이는 2배를 내고, 인텔 프로세서가 최고 성능을 내는 순간 끌어 쓰는 전력의 4분의 1로 똑같은 성능을 뽑아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M1은 그 이상의 성능을 낸다고 한다. 성능 테스트의 기준에 대해서는 따져봐야겠지만 전반적으로 같은 일을 할 때 더 낮은 전력을 쓴다는 것은 이미 비슷한 구조의 아이패드 프로를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알려온 바 있다. 애플은 두 구조가 전력, 그러니까 와트 당 성능으로는 최대 3배까지 차이난다는 설명이다.
그래픽 코어는 8개다. 128개 유닛으로 구성됐고, 동시에 약 2만 5000개의 쓰레드를 처리한다. 흔히 재는 병렬 컴퓨팅 처리 능력 기준으로 2.6테라플롭스 급이다. 인텔의 11세대 코어 프로세서 아이스레이크에 들어가는 그래픽코어가 1테라플롭스 성능이다. 애플은 마찬가지로 모든 전력 소비량 구간에서 더 높은 성능을 낸다고 밝혔고, 최대 성능도 2배 정도로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도 전력 소비량은 3분의 1이다.
여기에 뉴럴 코어가 16개 들어가 초당 11조 건의 처리를 할 수 있다. GPU와 함께 머신러닝 기반 처리를 맡고, 비디오 분석, 음성 인식, 이미지 처리 등의 역할을 맡게 된다. 이 역시 이전 컴퓨터와 완전히 다른 구조다. 애플은 영상을 다루는 파이널컷 프로 X이나 음악 시퀀서인 로직 프로 X등 자체 프로세서에 머신러닝을 더해서 3~6배씩 성능을 끌어올렸다고 밝혔고, 어도비 포토샵 등 이미지 처리 앱들도 M1 프로세서의 특성을 이용해 성능을 끌어올린다고 밝혔다.
사실 이 칩은 단순히 ‘더 빠른 프로세서’로 보는 것보다 애플이 컴퓨팅의 방법을 바꾼다는 의미가 더 크다. 그러니까 M1 칩의 완성은 맥OS, 그리고 앱 개발 생태계가 함께 붙어야 완성이 된다. 애플이 늘 이야기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유연한 결합이다.
크레이그 페더리기 소프트웨어 수석 부사장은 새 맥OS인 빅 서(Big Sur)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새 칩을 쓰면서 맥은 슬립 모드에서 더 빠르게 깨어나고, 사파리 웹 브라우저는 자바 스크립트를 1.5배 더 빨리 처리하고, 반응 속도도 거의 2배 빨라졌다. 높은 성능을 요구하는 영상 편집이나 그래픽 처리에서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처리장치간 메모리 복사가 이뤄지지 않고 메모리 하나에 즉각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손실이 적고, 그래픽 프로세서 입장에서는 이론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메모리 사용량에 제한이 없는 셈이다.
앱에 대해서는 이미 WWDC에서 밝힌 것처럼 X코드의 라이브러리가 통합됐고, 이를 통해 앱 하나로 인텔과 애플의 칩에서 동시에 돌아갈 수 있도록 유니버셜 앱을 만들 수 있다. 개발자는 특별히 앱에 손 대지 않아도 양쪽의 앱 바이너리가 함께 담기게 된다. 어느 정도의 최적화가 필요하긴 하지만 복잡하지 않은 앱들은 기존과 거의 똑같이 만들어서 배포하면 된다. 어도비는 당장 라이트룸을 유니버셜 앱으로 내놓고, 내년 초에 포토샵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또한 유니버셜로 나오지 않은 기존 애플리케이션(앱)을 돌릴 수 있도록 에뮬레이팅해주는 로제타2도 들어가기 때문에 기존 앱을 대부분 돌릴 수 있고, 게임 역시 메탈을 통해 GPU에 접근하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고성능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도 오토데스크의 오토캐드 퓨전 360이나 게임 등이 로제타2로 작동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 iOS와 아이패드OS용 앱도 띄울 수 있게 되면서 맥의 앱 생태계가 크게 확장됐다. 이전 파워PC에서 인텔로 전환될 때의 유니버셜, 로제타의 혼란을 반복하지 않고 앱 생태계의 혼란을 줄일 수 있도록 채비를 마련한 셈이다.
전체적으로 M1 칩은 새로운 형태의 PC 구조로 설계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는 점이 큰 의미를 갖는다. 애플이 이야기한 것처럼 인텔 프로세서에 대비해서 2배, 3배의 성능을 낸다는 것은 사실 모든 상황을 대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텔이 쓰는 x86 아키텍처가 갖고 있는 강점은 여전히 있고, 인텔 프로세서를 쓰는 게 더 맞는 일도 있다. 하지만 ARM 기반 프로세서가 갖는 특성들이 분명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최적화를 통해 반도체의 강점을 이용하도록 이끌어내면서 전체적인 성능과 전력 소비 등 더 나은 사용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 애플의 방향성이다.
그래서 M1 칩의 완성은 이 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잘 할 수 있는 점들을 끌어내는 운영체제에 있다. 애플이 ‘빅 서’라는 이름을 맥OS를 10에서 11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 가장 큰 이유다. 개발자들이 칩을 이해할 필요없이 원하는 일들을 개발 도구와 운영체제가 맡아서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컴퓨팅으로 꼽히는 뉴럴 엔진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이전과 완전히 다른 컴퓨팅 환경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도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과한 포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M1, 그리고 새로운 맥의 등장은 애플이 결국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컴퓨팅을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호섭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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