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당연하게 여겨왔던 평범한 일상사가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절이다. 그 소소함의 가치가 우리 삶의 전부라는 깨달음은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대에 미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의 초심은 평범하지만 솔직함의 가치를 찾아가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우리 미술의 중심으로 보듬는 일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아름다움을 주는 미술의 구축이 그것이다. 처음의 생각을 더 새롭고 확고하게 펼치기 위해 새 시즌을 시작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영화가 있다. 1996년 우리나라에서 개봉돼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 화제가 됐던 영화다. 영화계에서는 낯선 이란 영화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이란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 에피소드를 다룬다. 초등학교 아이가 실수로 친구의 노트를 가져왔다가 돌려주려고 그 친구의 집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극적 구성이 전혀 없는 영화였는데, 아직도 생생한 이유는 뭘까.
아마추어 배우의 연기와 다큐멘터리 형식, 그리고 로케이션 촬영으로 영화를 만들어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을 만들어내서 설득력을 얻은 것 같다.
영화를 만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1997년 ‘체리향기’라는 영화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거장이다. 일상 언어를 영화 어법으로 만든 이런 스타일의 영화는 그 이후 새로운 영화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홍상수 감독 역시 한국 지식층의 위선을 이런 기법으로 다듬어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한국 젊은이의 정서를 서정성으로 무리 없이 빗어낸 허진호 감독도 그렇다. 그의 대표작 ‘봄날은 간다’는 누구나 겪는 사랑의 성장통을 일상적 언어로 설득력 있게 보여줘 감명을 주었다. 현 시대 일본 영화의 한 축을 만들어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이런 영화 기법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인류의 영원한 주제인 ‘가족’의 문제를 일상 언어로 풀어준다.
우리 삶의 모습을 과장 없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이런 시각은 1940년대 말 나타난 이탈리아 ‘신사실주의 영화’가 뿌리다. 이념 과잉 시대를 지나면서 삶의 본모습을 발견한 예술가들은 실존의 문제에 자신들의 방식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전후 척박한 환경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영화는 폐허가 된 현실을 배경으로 보통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우리의 삶은 드라마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적인 진폭이 없이 살아간다. 영화에 나오는 진한 사랑을 하거나 기구한 운명을 겪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것 중 하나도 일반인의 지극히 평범한 정서다.
서정배의 회화도 이런 흐름에서 나온다. 그의 작품은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작가가 그리 살고 있고, 작품도 그렇게 해야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제는 자신의 이야기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살아가고 있는 매일매일의 일상을 회화로, 드로잉으로 그리고 설치 작품으로 표현한다. 그런 하루하루 삶의 갈피에서 표출되는 감정을 일기 쓰듯이 과장 없이 그려낸다.
서정배 회화가 눈길을 끄는 이유도 우리 삶의 진솔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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