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옛날 드라마를 보다 보면 놀랄 때가 많다. ‘아니, 이 배우가 여기 나왔어? 이 배우들을 어떻게 캐스팅한 거지? 이때는 이런 이야기를 했단 말이지?’ 등등. 지금은 세상에 없는 배우들이 화면에 등장할 땐 묘한 감정이 들고, 현재 종횡무진 톱스타로 활약하는 배우가 어리버리한 신인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낄낄대고,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때는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다는 걸 보며 세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깨닫곤 한다. 2007년 방영한 드라마 ‘히트’도 13년의 시간이 지난 만큼 다시 보면 여러 가지 놀라움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이 배우들이 모두 나온다고?
먼저 주연을 맡은 고현정. ‘선덕여왕’을 찍기 전이었지만 ‘봄날’로 복귀한 이래 고현정은 언제나 믿고 보는 배우이자 존재감 확실한 스타였다. 그가 ‘봄날’ ‘여우야 뭐하니’ 다음으로 선택한 드라마가 ‘히트’였다. 발가락 양말 신고 다니며 연쇄살인범 잡으려 동분서주하는 차수경 경위가 고현정이 맡은 캐릭터였다. 머리가 좋아 사법고시를 패스했지만 타고난 한량에 뺀질뺀질한 성격으로 ‘조직부적응자’ 소리를 듣는 신임 검사 김재윤 역을 맡은 하정우도 눈에 띈다. 그때는 영화 ‘추격자’ 전이었기에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유망주에 불과했다.
차수경 경위와 김재윤 검사를 필두로 꾸려진 강력범죄수사대인 ‘H.I.T(Homicide Investigation Team)’ 멤버들로는 베테랑 형사지만 만년 경사에 가정 불화로 실의에 빠져 있는 장용하 경사(최일화), 깔짝깔짝 비리를 저지르는 요주의 인물이지만 잔머리는 타고난 심종금 경사(김정태), 조폭과 분간이 안 가는 험악한 외모와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남성식 경장(마동석), 경찰대를 졸업한 원리원칙주의자 김일주 경위(정동진)로 구성된다. 특히 ‘톰과 제리’ 같은 티격태격 케미를 선보인 남성식-심종금 콤비가 빛을 발하는데, 지금 충무로를 씹어 먹는 ‘마블리’ 마동석은 첫 드라마 출연작이었음에도 지금처럼 ‘나 마동석이요’ 하는 존재감을 발휘해 눈길을 끈다.
그 외에도 ‘히트’에는 경찰청 상관들과 히트팀 사이에서 골머리를 썩는 조규원 과장(손현주), 차수경이 14년 전부터 쫓고 있는 연쇄살인범 신일영(엄효섭) 같은 인물들은 물론이요, 장용하 경사의 가출한 딸로 등장한 서현진(!)이나 경찰학교 교육생으로 등장한 오연서처럼 비중 작은 역할까지 지금 보면 놀라운 면면의 배우들이 출연했다. 시즌2를 애타게 기다리는 작품이지만 달라진 배우들의 위용 덕분에 시즌2가 불가능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히트’는 14년 전, 애인을 죽인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차수경 경위와 히트팀을 땀과 노력을 조명한다. 물론 여느 한국 드라마처럼 멜로는 필수 요소인지라 신임 검사 김재윤을 차수경에게 짝지우고, 어긋난 딸에 대한 아버지의 부정(父情)을 부각하는 등(장용하 형사 에피소드) 빤한 요소들로 중간중간 늘어지는 느낌도 들지만 전체적으로 짜임새는 분명한 편이다.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빛나는데, 앞서 언급한 톰과 제리 같은 남성식-심종금 콤비라든가, 영화 ‘투캅스’ 시절부터 여러 번 묘사된 무능력해 보이는 베테랑-원리원칙주의 신입 콤비인 장용하-김일주 콤비가 그렇고, 중간관리자의 애환을 잘 살리던 조규원 과장이 그랬다(조 과장을 연기한 손현주는 13년 뒤인 2020년 드라마 ‘모범형사’에서는 강등(?)되어 경사로 출연).
‘완소김검(완전 소중한 김 검사)’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던 김재윤 검사는 또 어떻고. 사명감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던 김 검사가 차수경과 히트팀을 만나며 성장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완소김검’이라는 애칭도 붙은 게 아닌가. ‘히트’에서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모티프로 한 배도건(이찬영)을 쫓던 ‘김 검사’ 하정우가 이듬해 영화 ‘추격자’에서는 유영철을 모델로 한 연쇄살인범 지영민으로 출연한 점도 돌이켜보면 재미나다.
훗날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아스달 연대기’를 집필한 김영현․박상연 작가의 첫 공동 집필작인 ‘히트’는 형사물에서 찾기 힘들었던 여성을 강력범죄수사대 팀장으로 내세우며 보기 드문 수사물을 그려낸다. 그간 한국에서 수사물은 강력반 형사의 본능적인 감과 끈질긴 노력으로 표현되곤 했는데, 여기에 ‘히트’는 과학수사 기법(연쇄살인범의 3세 때 사진을 갖고 30대 중후반의 현재 얼굴을 추론해내는 얼굴변환 프로그램 등)을 적극 도입하며 ‘CSI’ 같은 미드 장르물로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에 들고자 애를 썼다. 시청률은 17~18% 정도로 ‘중박’을 쳤지만 ‘수사반장’ 이후 보기 힘들었던 수사물의 포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기억할 만한 작품이다.
심심찮게 일어나는 강력범죄, 나날이 늘어나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뉴스를 보다 보면 불끈불끈 화가 치솟는다. 그래도 현실에서도 차수경 같은 이들이 끈질기게 범인을 추적할 것이고, 남성식 같은 형사가 파워 넘치게 범인들을 제압할 거라 생각하면 묘하게 안심이 될 것이다. 음,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한 캐릭터는 심종금 형사였지만….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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