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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대형마트가 떠날 때' 폐업 앞둔 롯데마트 구로점 풍경

올해만 16개 폐점, 2만 명 실직…갈 곳 없는 직원들 '막막' 일부는 "마지막까지 남고 싶다"

2020.11.05(Thu) 16:28:34

[비즈한국] 대형마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골목상권과 재래시장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에 의무휴무일을 두도록 법에 명시한 게 2012년이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대형마트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대형 유통망은 온라인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다. 

 

빨간 불은 이미 여러 해 전에 들어왔다. 배송 시스템 개편, 매장 리모델링 등으로 변화를 꾀한 홈플러스·이마트·롯데마트 등 대기업도 결국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까지 겹쳐 유통가의 온라인 전환에 가속도가 붙었다.

 

롯데마트 구로점 외관. 롯데마트는 올해 초 서울 내 2개점을 비롯해 전국 16개 점포 문을 닫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김보현 기자

 

3대 대형마트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매장 구조조정에 나선 건 롯데마트다. 롯데마트는 올해 초 서울 내 2개점을 비롯해 전국 16개 점포의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12곳이 이미 문을 닫았고, 서울 구로점과 도봉점의 경우 11월 30일 영업 종료를 앞두고 매장을 정리하고 있다.

 

폐점을 앞둔 대형마트는 어떤 모습일까. 물건을 정리해 조용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롯데마트 구로점은 마지막 특수를 노리고 ‘좌판’을 거하게 깔았다. 직접 방문해 현장 분위기를 살펴봤다. 

 

#입구와 지하 곳곳에 ‘고별정리’…이미 빈 매장도 다수 

 

롯데마트 구로점은 구로역과 구일역 사이에 있다. 2005년 오픈 이후 15년간 구로구뿐만 아니라 영등포구, 양천구, 금천구 등 인근 지역을 아우르는 매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주차공간이 협소한 인근 고척스카이돔의 서브 주차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건물 안팎으로 특가 행사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폐점 특수를 노리고 단기 계약을 통해 입점한 사업자가 대부분이었다. 사진=김보현 기자

 

폐점 한 달 전인 10월 29일부터 ‘점포 정리’가 시작됐다. 우선 마트 외관에 거대한 현수막이 붙었다. ‘그동안 애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 옆에는 ‘고별정리’가 강조된 현수막이 나란히 걸렸다. 인근 육교와 길거리 전봇대에도 굵은 고딕체로 ‘고별정리’ 기간이 적힌 전단지가 붙었다. ‘나이키/카파 운동화 500족 990원’, ‘뉴발란스, 아디다스, 휠라 등 유명 브랜드 제품 80%’, ‘남성복, 신사정장 80% 세일’과 같은 문구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행사가 시작되고 처음 맞는 주말인 10월 31일 오후 5시경 찾은 마트는 입구부터 어수선했다. 마트 정문 근처로 ‘특가 할인’ 현수막을 붙인 천막, 등산복, 겨울 외투 등이 깔린 매대가 있었고 사람들은 그 주변에 몰려 물건을 뒤적거렸다. 아울렛 쇼핑몰 혹은 지하상가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지하 1층에는 본격적으로 고별정리 기념 특가 매대가 깔렸다. 아울렛 쇼핑몰 혹은 지하상가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었다. 사진=김보현 기자

 

지하 1층 전문식당가 근처에도 고별정리 기념 매대가 깔렸다. 유명 글로벌 스포츠 운동화와 브랜드 의류, 잡화 등이 초특가, 균일가로 소개되며 널려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눈으로 보며 물건을 고르기보다 손으로 만지며 물건을 골랐다. 옷과 신발, 가방은 대체로 쌓여 있었고 그나마 행거에 걸려 있는 것 또한 동일한 물건이 여러 개 겹쳐져 있었다. 

 

1층 신선식품·생활용품 매장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지였다. 군데군데 물건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아 빈 선반이 다수였다. 입점업체 직원 A 씨는 “얼마 전부터 더 이상 물건이 들어오지 않는다. 기존에 빠진 물건은 채워 넣지 않고, 잘나가는 특가 행사 제품만 추가로 들여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점업체가 대부분인 2, 3층 매장은 이미 빠진 곳이 많았다. 마지막 고별정리 특수를 노려 계약기간을 연장했다는 임대매장 직원 B 씨는 “외부에서 들어온 임시 매대 덕분에 폐점 전 특수를 보고 있다. 올해 코로나19가 터지고 안 그래도 매출이 안 나오던 차에 손님이 더 줄었다.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면서도 내가 그만두기 전에 매장이 문을 닫을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끝까지 남은 10년 차 매장 직원, 5년 차 청소업체 직원

 

처음 방문한 주말에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마트 직원과 대화를 나누기 쉽지 않았다. 행사 매대의 직원은 사이즈를 묻는 손님을 응대하느라, 기존 매장 직원은 ‘왜 여긴 세일을 안 하냐’는 불만 섞인 질문에 답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며칠 뒤인 4일, 비교적 한산한 평일 오후 시간을 골라 롯데마트 구로점을 다시 찾았다.

 

평일 오후 다시 찾은 롯데마트 구로점. 주말에 비해 사람이 적었다. 한 입점업체 직원이 “있는 물건만 할인해 팔고, 이미 빠진 물건은 다시 들여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진=김보현 기자

 

마트 노동자들은 빠르게 저무는 대형마트의 시대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최근 4년간 대형마트 23곳이 폐점하면서 3만 2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에는 올 들어 9월까지 문을 닫은 롯데마트 8개 점포의 근로자 1만 1000여 명도 있다. 롯데마트는 연말까지 7개 점포를 추가로 폐점할 계획이어서 연내 9620명이 또 실직하게 된다.

 

한국유통학회 ‘정부의 유통규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 매출 500억 원의 대형마트 점포 1곳이 폐점한다고 가정할 때 점포 직원 945명의 고용이 감소한다. 마트에 직접 고용된 마트직원 680여 명과 납품업체 직원 등 간접 고용된 직원 250여 명이다. 

 

마트가 문을 닫으면 거기서 일하던 이들은 어디로 갈까. 롯데마트 구로점 정규직 직원들은 이미 전환 배치가 끝났다. 일부는 인근의 다른 매장으로 근무지를 옮기고, 나머지는 퇴직 절차를 밟게 된다. 정규직 직원 C 씨는 “근처 가까운 매장으로 발령이 난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여기와 거리가 먼 수원 등의 매장으로 발표가 났다. 멀어서 못 가겠다 하면 근속연수에 따라 퇴직금을 받고 퇴사를 해야 한다. 사실상 그만두라는 의미지만 다들 별수 없다는 분위기”라고 털어놨다.

 

남은 건 마트에 직접 고용되지 않은 입점업체 직원들과 청소·주차관리·보안 등 외부 용역업체 소속 직원들이다. 입점업체는 또 판매 수수료를 받는 ‘수수료 매장’과 임대료를 내는 ‘임대 매장’으로 나뉜다. 마트에 둥지를 튼 점포 ‘사장님’들은 중소 자영업자이거나 임대 매장을 운영하는 브랜드에 고용된 직원이다.

 

롯데마트 구로점에서 6년간 청소 업무를 한 용역업체 직원 D 씨는 “폐점한다는 소문은 9월 이전부터 돌았다. 1년마다 (용역업체와) 계약을 연장하는데, 이미 70살이 넘어서 다른 곳에 취직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는 퇴직금이나 위로금도 없다. 65세 이상은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서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막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입점업체 매장 직원들도 갈 곳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2층에서 12년간 속옷 브랜드 수수료 매장을 운영한 E 씨도 “몇 년 전만 해도 본사로부터 ‘다른 지점에 자리가 났는데 가보실래요?’라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접는 매장이 더 많아서 갈 곳이 없다. 매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코로나19 전후로 모든 게 변했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마지막 불빛을 밝히듯 폐점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마트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북적거렸다. 롯데마트 구로점은 현재 대림코퍼레이션 측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철거 후 오피스텔 또는 지식산업센터가 지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자가 만난 직원들은 아무도 롯데마트가 문 닫은 이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대부분이 마지막까지 매장에 남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의 청소 용역업체 직원 D 씨는 마트 지하 1층의 장난감 가게가 유일하게 크리스마스까지 영업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청소 업무를 하는 직원들 가운데 몇 명은 한 달 연장 근무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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