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담합행위 제재는 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담당한다.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유일한 제재 기관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그러나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과징금 등 행정제재 부과만을 담당할 뿐이다. 공정거래법은 일부 법 위반행위에 대해 징역형, 벌금형 등 형사처벌을 규정한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 공소 제기(기소) 및 법원의 판결을 통해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다만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은 다른 영역과 비교할 때 다른 점이 있다.
검찰의 수사·기소는 신고·고소·인지 등 단서가 있으면 직권으로 개시되며 특별한 요건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공정위의 고발이 필수다.
공정거래법 제71조 제1항은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는 공정위의 전문적인 판단을 존중하여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의 수사가 개시될 수 있는 전속고발권 제도를 규정한 것이다. 전속고발권 제도로 인해 공정위의 조사·의결 및 고발 결정까지 있고 난 뒤에야 검찰의 수사가 개시됐다. 공정위 고발이 없으면 검찰의 수사도 없었던 게 그간의 실무였다.
대법원도 전속고발권을 엄격히 적용해 공정위 고발이 없으면 공범에 대한 고발이 있더라도 검찰의 기소는 위법이라는 입장이다. 즉 공정위가 일부는 고발 결정, 나머지는 고발 면제한 사안에서 검찰은 일부 고소가 나머지 전부에 효력을 미친다는 고소불가분의 원칙을 이유로 모든 행위자를 기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전속고발권의 대상이 되는 범죄에는 고소불가분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고발 없는 행위자에 대한 기소는 부적법하다고 판시했다(2008도4762).
한편 사회 일각에서는 전속고발권 제도가 축소·폐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었다. 전속고발권 제도하에서는 신속한 수사가 어렵고 공정위의 고의적인 봐주기가 있다는 주장이다.
검찰도 공소시효가 임박한 시점에 공정위의 고발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형벌권 행사에 차질이 빚어진다거나, 일부는 고발 면제나 고발 결정이 내려지는 등 그 권한 행사가 자의적이며 담합 정보를 공정위가 독점하는 것은 문제라는 등의 지적을 은연중에 내비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2014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감사원장·중기청장·조달청장 및 검찰총장의 고발요청이 있을 때는 공정위는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는 고발요청권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실제 고발요청권이 행사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 전속고발권 제도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 때문이다. 결국 여러 논쟁 끝에 2018년 8월 법무부와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폐지 합의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가격 담합·공급 제한·시장분할·입찰 담합 등 중대한 담합행위에 대해서는 공정위의 고발 없이 검찰의 수사·기소가 가능하다. 다만 검찰은 자진신고 등을 통해 공정거래법상 감면요건(리니언시)을 충족한 사업자에 대해 형사처벌을 감면한다.
리니언시제도란 담합 가담자 중 1, 2순위 자진 신고자에 대해서는 제재를 감면하는 제도다. 자진신고, 조사 협조 시 제재조치 감면의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담합의 조기 적발, 담합 구도 붕괴 등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속고발권 제도를 폐지한다면 리니언시 사업자에 대해서도 검찰의 수사·기소가 가능해지므로 사업자들이 조사 협조·자진신고를 할 유인은 사라진다. 합의안은 이를 고려해 리니언시 사업자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감면하기로 한 것이다.
둘째,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경쟁 제한적 기업결합·불공정 거래행위 등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전속고발권 제도가 유지된다. 따라서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의 수사·기소가 가능하다. 그리고 최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은 가격 담합·입찰 담합 등에 대해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를 명시적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전속고발권 축소·폐지의 경향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속고발권 제도가 폐지되면 기업은 공정위 조사와 검찰 수사를 동시에 받게 되므로 그 부담이 지나치게 가중된다는 얘기다. 특히 검찰의 압수·수색과 별건 수사에도 대비해야 한다.
아울러 검찰의 직접 수사를 가능하게 하는 전속고발권 폐지는 검찰의 직접 수사를 축소하려는 현 정권의 기조와도 모순된다는 시사적인 지적도 있다.
전속고발권 제도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따라서 어느 입장이 타당하다고 볼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또 검경 수사권 조정·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 축소·공수처 출범 등 최근 산적한 여러 문제가 있어 공정위 조사와 검찰의 수사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될지는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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