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라임 사태에 연루돼 경영진 중징계가 예상되는 KB증권이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의 잘못을 지적하는 탄원서를 작성해 파문이 일고 있다. KB증권은 문건 작성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회사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 탄원서가 국감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에게 전달된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KB증권이 조직적으로 금감원 책임론을 부각시켜 자사의 CEO를 지키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제재 결정을 앞둔 KB증권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눈길이 쏠리는 대목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9일 라임자산운용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관련 펀드의 판매사를 대상으로 한 제재심의위원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라임 사태에 책임이 있는 신한금융투자, 대신증권, KB증권이 참석했다.
그런데 제재심을 앞두고 KB증권이 금감원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자사에 대한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KB증권은 라임 사태의 책임이 금감원에 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작성했고, 이와 유사한 탄원서가 이달 초중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복수의 의원들에게 전달됐다.
탄원서에서 KB증권은 “금감원의 안일한 대응으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금감원은 검사 담당 임직원에 대한 조치나 반성도 없이 금융기관에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부디 이런 점을 고려해 당사 및 당사 임직원에 대한 제재조치의 타당성 및 형평성을 재고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탄원서가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해도 KB증권은 문건 작성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회사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정무위 의원에게까지 탄원서를 전달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커졌다.
이 같은 탄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통상 금융사고를 일으킨 금융사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선처를 구하는 경우는 있지만 금융감독 당국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선처를 호소하는 사례는 드물다. 일각에서는 KB증권이 자사의 잘못을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당국을 탓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뒷말이 나왔다.
다만 KB증권의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으로 보인다. 탄원서 작성 이후 윤석헌 금감원장은 국정감사에 불려가 라임 사태를 비롯한 사모펀드 사태의 책임을 추궁받으며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KB증권이 제재 수위를 낮추는 데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은 “라임을 비롯한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의 부실감독을 질타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라임 펀드 판매사로서 금융소비자에게 큰 손해를 입힌 KB증권이 이를 지적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서 “이번에 나온 탄원 내용은 KB증권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 금융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 일을 두고 과도한 ‘박정림 KB증권 대표 구하기’ 아니냐는 시각을 보였다. 금감원이 라임 사태 관련 ‘직무정지’ 중징계안을 사전통보한 최고경영자(CEO)는 박정림 KB증권 대표, 김병철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현 금융투자협회 회장) 등인데 현직에 있는 CEO는 박 대표뿐이다.
박정림 대표는 여성 리더십을 강조하는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2019년 1월 여성 최초로 증권사 대표에 선임되어 주목받았다. 현재는 KB금융지주 자본시장부문장까지 겸하면서 지주사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 1963년생인 박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경영대학원을 나와 체이스맨해튼, 조흥경제연구소와 삼성화재를 거쳤다. 2004년 KB국민은행에 합류한 뒤 시장운영리스크 부장, WM부문 본부장, 여신그룹 부행장, KB금융 WM총괄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김병철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는 지난 3월 라임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임했다. 그는 동양증권에서 채권운용 팀장, 금융상품운용팀장, IB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신한금융투자로 자리를 옮긴 그는 투자운용사업 부문장 등을 거쳐 2018년 12월 대표이사에 내정돼 신한금융투자를 이끌었다.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는 1985년 대신증권에 입사해 WM추진본부장, 홀세일부문 본부장, 기획본부장 겸 홀세일 사업단장 등을 거쳐 대표이사까지 올랐다. 나재철 전 대표는 지난 1월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에 선출되면서 대신증권을 떠났다.
금감원 관계자는 “KB증권의 탄원서 내용은 알고 있으며 따로 할 말은 없다”면서 “KB증권의 제재 수위는 29일 제재심을 포함해 두 번의 제재심을 통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즈한국은 관련 내용에 대해 질의하고자 KB증권에 수차례 연락했지만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박호민 기자
donkyi@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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