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얼마 전 김 아무개 씨(24)는 미국 배우 에이단 갤러거와의 ‘비대면 소통’을 위해 2만 6190원가량을 결제했다. 배우가 패트리온(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 가장 비싼 멤버십에 가입하면 본인과 실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디스코드(채팅방) 링크를 주겠다고 했기 때문. 패트리온 플랫폼에서는 구독자들이 멤버십을 구입하면 크리에이터가 온·오프라인 미팅, 화상 통화, 미공개 영상 공개 등 보상을 제공한다. 크리에이터와 업체는 후원 금액을 나눠 갖는다.
김 씨는 “금액이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다만 국내에서 미국 연예인을 ‘덕질’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배우와 직접 대화하거나 영상 통화를 할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월 구독 서비스를 신청했다”며 “201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유에프오 타운’ 서비스처럼 아이돌에게 문자를 보내 운 좋은 사람만 답장을 받는 서비스였다면 돈을 내지 않았을 거다.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팬’이 아니라는 느낌이 좋았다”고 말했다.
최근 Z세대(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좋아하는 연예인과 비대면 소통하는 유료 서비스에 관심이 높다. 이전처럼 콘서트에 가고, 굿즈를 사고, 팬클럽에 가입하는 건 변함없지만, 최근엔 비대면 소통을 통해 스타와 팬의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서비스의 반응이 좋다.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에 타격을 입은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새로운 수익 창구 수단으로 자리 잡아 간다는 평이 나온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앞으로 이러한 서비스가 더욱 많아질 거라 내다본다.
#커피 한 잔 가격으로 스타와의 친밀감 산다
국내에서는 지난 2월 SM엔터테인먼트가 내놓은 팬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리슨의 서비스 ‘디어 유 버블’이 ‘친밀한 비대면 소통’을 이용한 유료화 서비스의 예다. 아티스트가 직접 메시지를 보내고, 이용자는 메시지당 세 개까지 답장을 할 수 있다. 아티스트와 사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느낌을 얻는 셈이다.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매달 멤버당 4500원을 내야 한다. 현재 엑소·소녀시대·샤이니 등 SM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들이 참여 중이다.
매달 아티스트의 글씨로 작성된 손편지와 포토카드 등을 받아볼 수 있는 ‘디어 유 레터’ 서비스도 있다. 현재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와 레드벨벳의 웬디가 이 서비스에 참여하고 있는데, 월 정기 구독료는 ‘디어 유 버블’보다는 다소 비싼 7900원이다. 지난 8월에는 FT아일랜드·씨엔블루·SF9 등이 소속된 FNC엔터테인먼트도 ‘bubble for FNC’ 앱을 출시했다. 아이즈원은 팬들이 원하는 멤버로부터 메일을 받아보는 ‘아이즈원 프라이빗 메일’ 서비스를 선보였다. 구독료는 멤버당 4500원, 열두 멤버 모두를 구독하면 3만 9000원이다.
두 달째 SF9 두 멤버의 버블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이도연 씨는 “아이돌이 푸는 별거 아닌 대화나 음성녹음 등 ‘떡밥’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돌 입장에서는 버블이 단체채팅방처럼 보인다. 아이돌이 실시간으로 버블 답장을 확인해 그 반응을 버블로 보내면 실제로 대화도 가끔 된다”고 말했다. SF9 세 멤버의 서비스를 구독하는 또 다른 이용자는 “사실 처음 이런 서비스가 생겼을 때는 안 그래도 써야 할 돈이 많은데 이것까지 해야 한다는 데 팬들도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한 달의 행복을 커피 한 잔 값으로 산다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비슷한 서비스가 생기면 또 결제할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러한 팬들의 호응은 기업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2분기 SM엔터테인먼트의 매출액은 1359억 원, 영업이익은 123억 원을 기록했는데, 별도 기준 OPM(영업이익률)은 22.4%로 2014년 이후 분기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기훈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지난 8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엑소와 NCT의 앨범 판매량 폭증 등의 영향”이라며 “적자의 중추를 담당했던 디어 유 버블과 레터 등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BEP(손익분기점) 수준까지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플랫폼, 새로운 수익 창구 될 듯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콘서트와 팬 사인회 등 대면 소통이 단절된 상황에서, 아티스트들의 비대면 소통 능력이 ‘덕질’ 혹은 ‘입덕’ 여부를 판가름하는 주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는 게 팬들의 이야기다. 앞서의 김 씨는 “최근 아이돌들도 유튜브와 네이버 브이앱,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등을 많이 한다. 일방적인 콘텐츠를 내보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기억에 남았던 댓글의 작성자 아이디를 직접 불러주며 소통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이런 연예인들이 팬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코로나19 장기화로 언택트 시대에서 ‘친밀한 비대면 소통’을 앞세운 서비스는 점차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방탄소년단(BTS)이 소속된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자체 플랫폼 ‘위버스’를 통해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독자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위버스 가입자는 1353만 명에 이른다.
지인해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15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위버스에 대해 “향후 팬과 스타의 ‘소통’ 공간, 독점 콘텐츠를 활용한 ‘구독’ 비즈니스모델, 각종 상품과 콘텐츠가 유통되는 ‘커머스’, 특히 온라인 공연의 주요 매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기존에는 콘서트가 ‘대체 불가능한’ 팬들과의 소통 공간이었다면, 앞으로는 다양한 플랫폼이 대안으로 등장해 새로운 수익 창구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비대면 소통을 도울 수 있는 플랫폼도 속속 등장할 전망이다. 음악 스타트업 스페이스오디티가 대표적이다. 스페이스오디티는 팬들이 아티스트의 소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내 손안의 덕메이트, 블립’을 지난 6월 정식 출시했다.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는 “모바일 시대에 팬들이 덕질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IT 기술을 결합한 서비스를 내놓게 됐다. 코로나19가 위기 상황이기는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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