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당연하게 여겨왔던 평범한 일상사가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절이다. 그 소소함의 가치가 우리 삶의 전부라는 깨달음은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대에 미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의 초심은 평범하지만 솔직함의 가치를 찾아가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우리 미술의 중심으로 보듬는 일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아름다움을 주는 미술의 구축이 그것이다. 처음의 생각을 더 새롭고 확고하게 펼치기 위해 새 시즌을 시작한다.
익숙한 것에 편안함이 있다면 낯선 것에는 설렘이 있다. 편안함 가운데 설렘이 주는 느낌은 어떨까. 안정된 일상 속에서 누리는 여행 같은 것은 아닐까. 명승지에 숨어 있는 멋진 풍경을 만났을 때 느끼는 야릇한 흥분 같은 것일 게다.
익숙한 현실이나 사물에서 새로운 세계를 찾아냈을 때도 그런 기분일 것이다. 일상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일은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생각의 깊이를 만들어준다. 예술의 존재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익숙한 현실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가 있다. 이를테면 소나기가 지나간 늦여름 저녁 하늘에 피어오른 핏빛 뭉게구름. 정월대보름 언저리 도심 빌딩 사이로 느닷없이 떠오른 커다란 달. 비를 흠뻑 머금은 시커먼 구름을 배경으로 석양빛 받아 밝게 빛나는 마을 풍경. 무심코 바라본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낮달.
이런 풍경들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어떻게 보고 느끼느냐에 따라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진부한 일상 속에서 이런 풍경의 다른 면모를 찾아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예술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신선함도 이런 것이 아닐까. 지극히 평범한 소재를 새롭게 보이게끔 만들어주는 것은 명작의 조건 중 하나다. 미술사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걸작들은 이렇듯 익숙한 현실에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낸다.
이향지가 찾아가는 작품 세계도 이런 여정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물이나 일상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 작품으로 끌어내고 있다. 그는 ‘양배추 작가’로 불린다. 양배추를 주요 소재를 삼았고, 그 그림이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주어 공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향지가 그려내는 양배추는 익숙한 채소지만 작가가 의미를 붙인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특별한 양배추로 보인다. 그가 발견한 양배추에서는 세상의 유기적 질서가 보인다. 양배추의 겉모습을 재현하는 그림이 아니라 양배추 속을 모티브로 삼기 때문이다.
양배추를 칼로 잘라 단면에 나타나는 무질서해 보이는 속살을 드러내는 그림이다. 거기에는 다양한 문양이 있다. 어지러운 곡선이 켜켜이 얽혀서 양배추의 속내를 알차게 채우고 겉살을 매끈한 껍질로 마감한다.
다양한 문양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양배추라는 작은 세계를 튼실하게 만들어내는 셈이다. 보이지 않은 법칙으로 연결된 우주처럼.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질서를 말하고 싶어 한다. 많은 인연으로 얽혀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습을 양배추 속살에 담으려는 것이다. 양배추에서 발견한 새로운 세상인 셈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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