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모바일 RPG(역할수행) 게임 ‘아이들프린세스’가 여아를 성적 대상으로 취급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개발사인 인프라웨어 자회사 아이앤브이게임즈는 5일 홈페이지에 입장문을 올려 “게임 설정 및 일부 캐릭터 묘사에 불쾌감을 느낀 유저분들께 고개 숙여 죄송하다. 게임 이용 연령 등급을 18세로 상향 조정하겠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여전히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여성단체는 “연령 조정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방식의 게임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게임 심의 간소화를 명문화한 게임법 개정안이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게임업계는 이번 사건으로 오히려 심의 강화의 기점이 되진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령은 나이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괜찮다? 업계 “서브컬쳐 방식”
‘아이들프린세스’는 게임 시작 시 플레이어와 메인 캐릭터가 부녀지간으로 설정된다.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게임 내 캐릭터인 정령을 터치할 때 성적 뉘앙스가 담긴 대사가 나오는 화면이다. 정령들은 터치에 따라 “내 팬티가 그렇게 보고 싶은 거야?”, “만지고 싶어?” 같은 대사를 사용한다. 특정 신체 부위를 강조한 이미지가 사용되거나 플레이어가 터치하는 부위에 따라 다른 반응이 뜨기도 한다.
게임은 각종 장치를 통해 논란을 피했다. 개발사 측은 논란 초기에 앱 마켓 리뷰 답변에 “캐릭터들은 인간이 아닌 정령 세계의 인물들로 나이가 설정돼 있지 않다”고 직접 해명했다. “만지고 싶어?” 같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대사는 정령이 들고 있는 인형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식이다.
3년 차 게임 업계 관계자는 “서브컬쳐에서 사용되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누가 봐도 아동이지만 나이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음으로써 선정적인 복장이나 대사가 용인된다. 개발직군 등 남성 직원이 업계에 많다 보니 성 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 최근의 일이 아니다. 오래된 업계의 경향이다. 업계에서도 이번 사안은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성과 관계없이 소위 잘 빠진 캐릭터 하나로 반짝 매출을 올리는 단타 게임들이 범람하는 와중에 이 문제가 지금에야 공론화된 게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윤소 여성민우회 미디어본부 팀장은 “아동을 성적 대상화한 게임에 가해진 논란이 연령 상향 조정만으로 잠재워지진 않을 거라고 본다. 게임 영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TV 등 타 미디어에 비해 마이너한 측면이 있어서 논란이 반복되는 것 같다. 다양한 층위에서 문제가 지적됐을 때 걸러질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사업자에 맡겨져 있다.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 같은 마켓에 좀 더 엄격한 필터링을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발사가 자체적으로 등급 분류…드러난 허점 보완 대책은?
아이들프린세스는 출시 전부터 사전예약 인원이 90만 명을 넘는 등 화제작으로 주목받았다. 지난달 17일 출시 후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 원스토어 등을 통해 10만 명 이상이 다운로드했다.
게임물 자체등급분류제도의 허점이 드러난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연간 50만 건 넘게 쏟애지는 게임 전부를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심의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의 99.7% 이상은 구글, 애플, 삼성, 카카오,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등 게임법에 의해 지정된 8개의 민간 자체 등급분류사업자가 이용등급을 지정한다.
‘아이들프린세스’도 이 과정을 거쳐 자체 등급분류를 받았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는 15세 등급을 부여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게임물관리부 관계자는 “기존에 위원회가 등급분류와 사후관리를 전부 하던 시스템에서 민간 등급분류사업자와 일을 나누게 됐다. 이젠 사후관리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플랫폼마다 7가지 요소의 설문을 체크하면서 최종적으로 등급을 매긴다. 지금은 해당 게임에 대한 민원이 접수되어 모니터링 대상이 됐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위정현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 회장)는 “개발사가 사회 흐름을 읽고 경각심을 가졌어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개발사의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특정 기준을 세웠다고 해도 방대한 내용을 전부 체크할 수 없고, 게임의 특성상 계속해서 업데이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의기관 인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자동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속옷 등 문제 소지가 있는 특정 단어를 체크하는 것만 해도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게임물관리부 관계자는 “법에 의해 시스템이 움직이기 때문에 명확히 게임 등급 거부 사유가 되려면 반국가적 행동 묘사, 역사적 사실 왜곡, 존비속에 대한 폭력·살인, 음란행위의 지나친 묘사 등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정도여야 한다. 트렌드가 계속해서 바뀌는 부분을 명시하기에는 애매한 부분도 있다. 자체 시스템에서 가능한 건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으로 위원회로부터 등급을 받으라고 명시하는 것 정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논란이 지난달 22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게임법 개정안’에도 영향을 미칠지에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이 개정안은 게임물 등급분류 과정을 해외처럼 간소화하기 위해 개발자가 설문으로 등급 분류를 손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을 발의한 이상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측은 한국이 해외에 비해 심의 행정 절차가 복잡해 실제 등급 분류를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하지만 현행안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진만큼 법안 통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언론 보도에 따른 여론이 좋지 않아 다들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한편에서는 국감에서 언급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N번방 사건 등으로 특히나 민감한 아동 성 문제이다 보니 더욱 질타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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