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 제도 시행 후 공사비 검증을 받은 8개 재건축‧재개발(정비)사업 단지 모두가 공사비 감액 권고를 받은 것으로 비즈한국 취재 결과 확인됐다. 검증 주체인 한국감정원은 지금까지 11개 정비사업단지로부터 공사비 검증 요청을 받아 8건을 처리했다. 한국감정원 측은 공사비 검증 결과에 따라 실제 계약 공사비가 감액되는 추세라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서는 공사비 검증 제도에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 요청 1년 새 11건, 처리된 8건 모두 감액 권고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은 재건축‧재개발사업 시공사가 제시한 공사비를 공적으로 검증하도록 한 제도다. 공사비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2019년 4월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같은해 10월 처음 시행됐다. 정비사업 시행자(조합)는 시공사와 도급 계약을 체결한 뒤 공사비를 5% 이상(사업시행인가 전 시공사 선정한 단지는 10%) 증액하려는 경우 정비사업 지원기구인 한국감정원 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공사비 검증을 요청해야 한다. 증액분이 그보다 적더라도 조합원 20% 이상이 요구할 경우 조합은 공사비 검증을 요청을 해야 한다.
비즈한국이 각 정비사업 지원기구에 정보공개 청구해 받은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감정원은 2019년 10월 법 개정 이후 9월 22일까지 총 11건의 공사비 검증 요청을 받았다. 조합원 20% 이상이 요구해 실시한 공사비 검증은 2건, 나머지는 공사비 증액 비율이 법정 공사비 검증 요건을 충족했다. 분기별 접수 건수는 2019년 4분기 2건, 2020년 1분기 1건, 2분기 3건, 3분기 5건으로 증가 추세다. 감정원은 지금까지 접수된 공사비 검증 요청 중 8건을 처리했다. LH에 접수된 공사비 검증 요청은 현재까지 없다.
공사비 검증을 받은 8개 사업장은 모두 한국감정원의 감액 권고를 받았다. 세부 감액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감정원 공사비검증부 관계자는 “(처리한 모든 공사비 검증 사업장의 공사비가 감액된 게) 맞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껄끄러울 수 있는 부분까지 공사비 검증에서 꼼꼼히 밝히도록 하고 있다. 단지별 세부 공사비 검증 결과는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임의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제 규정 없는 공사비 검증, 일각에선 실효성 논란
공사비 검증 제도는 아직까지 실효성 논란이 있다. 시공사가 공사비 내역서 등 검증에 필요한 서류를 제공하지 않거나, 검증 결과에 따른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공사비 검증 제도 도입 후 처음 검증을 요청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지난 4월 한국감정원으로부터 총 2900억 원의 공사비 감액 권고를 받았다. 당초 조합은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로 구성된 시공사업단(컨소시엄)과 2016년 10월 2조 6708억 원 규모 도급 계약을 맺었다. 이후 사업단이 7394억 원 규모의 공사비 증액을 요청하면서 둔촌주공 공사비는 검증 대상에 오르게 됐다.
시공사업단은 공사비 검증 의뢰 직전인 2019년 10월 공사비 3087억 원을 스스로 깎겠다고 나섰다. 공사비 검증 제도 적용을 염두에 둔 건설사의 선제적 감액으로 해석됐다. 조합은 제안을 받아들여 같은 해 12월 공사비를 3조 515억 원으로 증액하는 안을 조합원 총회에서 통과시켰다.
시공사업단이 실제 감액한 공사비 내역과 감정원이 감액 권고한 내역은 차이가 있다. 비즈한국이 조합원으로부터 입수한 둔촌주공아파트 공사비 검증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감정원은 기존 토목공사비 2993억 원에서 1823억 원(62%), 건축공사비 1조 2355억 원에서 374억 원(3%), 제경비 6752억 원에서 606억 원(8%) 등을 감액하라고 권고했다. 반면 시공사업단이 조합에 제시한 감액 내역은 일반관리비 1188억 원, 이윤 778억 원, 물가변동(ESC) 1120억 원이었다. 공사비 검증에 따른 추가 공사비 감액은 없었다.
둔춘주공아파트 재건축조합원 A 씨는 “한국감정원 공사비 검증 결과 시공사업단이 터파기 공사 수량을 초과 산정하거나, 아파트 일부 동의 층수를 실제 설계보다 8~11개층 높게 계산한 사실 등이 드러났지만 사업단이 부당하게 계상한 공사비는 결국 감액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 B씨도 “둔촌주공아파트 사례처럼 검증 결과를 도급 계약서에 반영하도록 강제할 수 없어 시공사가 감액을 거부할 경우 공사비 검증이 유명무실 종이호랑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공사가 공사비 검증에 협조하지 않아 검증 신청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조합원 과반이 공사비 검증에 동의했지만 현재 시공사인 GS건설이 공사비 검증 신청에 필요한 공사비 내역서 등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공사비 검증 신청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합원 대표 단체에 따르면 개포주공4단지 재건축사업의 당초 도급 계약 규모는 9089억 원이었지만 시공사는 1378억 원 증액을 요청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 검증에 필요한 서류 제출이나 검증에 따른 공사비 감액은 강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건설사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조합은 마땅한 방법이 없다”며 “업계에서는 공사비 검증 제도 자체를 옥상옥(屋上屋)으로 보거나, 검증 기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검증을 받더라도 실제 계약 체결이 검증 결과대로 이뤄지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국감정원 공사비검증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정비사업 단지가 공사비 검증(감액) 결과를 반영해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반드시 공사비 감액이 아니더라도 그 금액만큼 사양을 고급화하는 식으로 협상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경우 계약 시 감액 사례로 표출되지 않을 순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사자 간의 계약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검증 결과(공사비 감액)를 강제하기는 어렵다. 공사비 검증의 취지는 시공사 우위였던 정보의 비대칭을 완화하는 데 있다. 새로운 규정이 생겼으니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계약의 ‘갑’인 조합이 계약서에 공사비 세부내역서를 내도록 강제하는 사항을 넣을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주택정비과 관계자도 “건설업자에게 직접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은 도정법에 없다. 사인 간의 계약 관계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공사비를 법으로 강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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