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사전 판매는 오래전부터 이어진 기업들의 마케팅 수단이다. 기업은 초기 수요를 예측할 수 있고, 소비자는 원하는 제품을 빠르게 구입하거나 혹은 할인 및 사은품을 받을 수 있어 서로에게 ‘윈-윈’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전 판매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정가보다 비싼 값에 물건을 되팔려는 이른바 ‘리셀러’들이 대거 뛰어들어 소비 시장을 왜곡시킨다는 비판도 적잖다. 기업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은근히 방관하는 분위기다. 얼마나 빠르게 매진되느냐가 홍보 수단이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판(예약 판매) 혹은 예구(예약 구매)로도 불리는 사전 판매는 기업이 제품을 정식 출시하기 전 수량을 정해 사전 신청자에 한해 물건을 판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주로 초기 공급 물량이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신제품이나, 혹은 판매 수량이 정해져 있는 한정판 제품이 주요 대상이다. 신발이나 전자제품과 같이 마니아 소비자가 확실하게 존재하는 제품들이 보통 사전 판매가 이뤄진다.
최근 사전 판매는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 과거 애플의 인기가 한창이던 시절, 개점 시간에 맞춰 매장 앞에서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은 당분간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 됐기 때문이다. 대신 대형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공연 티켓 예약이나 대학교 수강신청처럼 정해진 시간에 제품을 올려두는 방식의 사전 판매가 보편화되는 추세다.
최근 소니의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5’는 사전 판매 첫날인 18일 순식간에 동이 났다. 경쟁 제품인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 시리즈X’ 역시 마찬가지. 두 제품 모두 예상을 뛰어넘는 소비자들이 몰려 서버 장애가 일어나 구매 버튼을 눌러보지도 못했다는 원성이 쏟아졌다. 가수 이소라의 6집 ‘눈썹달’ LP 앨범 역시 사전 판매 1분 만에 3000장이 완판됐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예판은 기업에 굉장히 행복한 마케팅이다. 예판을 통해 수요를 예측할 수 있고, 구매자들의 데이터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와 비교했을 때 예판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빠르게 제품을 받고 싶어하지만 예판은 물건을 받는 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최근에는 유통 구조가 개선돼 예판으로도 제품을 빠르게 받아볼 수 있다. 앞으로 예판 문화가 더 광범위하게 넓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출시 초기 판매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전판매를 판촉 수단으로 활용하는 제품군도 있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이 그렇다. 스마트폰은 제품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서서히 떨어진다. 게다가 유통 과정에서 보조금 등이 더해질 경우 실판매가를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삼성전자, LG전자 등 스마트폰 기업은 상당한 사은품과 각종 혜택을 더해 사전판매를 진행한다.
양명호 씨는 “사전 예약을 통해 갤럭시 워치3를 구매했다. 1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었다. 빠르게 제품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또한 사전 예약을 통해 제품을 구매하면 혜택이 많다. 전자기기는 공식 판매 이전부터 대략적인 스펙을 알 수 있어서 사전 예약을 통해 제품을 구매하는 게 이득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전 판매 열기가 지나치게 과열되는 이면에는 시세 차익을 노린 리셀러이 대거 늘어난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이들은 개인간 거래로 웃돈을 붙여 팔기 위한 목적으로 사전 판매 경쟁에 뛰어든다. 이로 인해 정상적인 수요보다 더 많은 수요가 생기고, 결국 제품을 원하는 사람들은 웃돈을 주고 사는 소비 시장의 왜곡이 발생한다. 암표 장사와도 다를 게 없다. 주로 가령 이소라의 한정판 LP 앨범의 사전 판매 가격은 13만 5000원이었다. 현재 이 앨범은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20만~25만 원에 재판매되고 있다. 특정 브랜드의 한정판 운동화도 정가보다 비싼 값에 거래되기 때문에 리셀러들의 주요 타깃이 된다.
특히 전문적인 리셀러들의 경우 일반 소비자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매크로 프로그램(자동반복 프로그램)’을 사용해 사전 판매 성공률이 대단히 높다. 지난해 경찰은 이러한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각종 공연 티켓이나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를 단속해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적발하기란 쉽지 않다는 후문이다.
일부 기업은 이러한 리셀러들을 방지하기 위해 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하거나 추첨제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경우 ‘더 드로우’라는 시스템을 도입해 한정판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통상적으로 사전 판매는 선착순으로 이뤄지지만, 이를 응모 방식의 추첨제로 변경한 것. 한 블로거는 “선착순 제도는 구매자마다 네트워크 환경도 다르고, 컴퓨터 사용에 능숙한 사람이 구매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측면이 있다. 더 드로우는 여러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 같아 합리적인 시스템 같다”고 말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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