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당연하게 여겨왔던 평범한 일상사가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절이다. 그 소소함의 가치가 우리 삶의 전부라는 깨달음은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대에 미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의 초심은 평범하지만 솔직함의 가치를 찾아가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우리 미술의 중심으로 보듬는 일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아름다움을 주는 미술의 구축이 그것이다. 처음의 생각을 더 새롭고 확고하게 펼치기 위해 새 시즌을 시작한다.
20세기는 형식의 난개발이 불러온 백화점식 미술사로 불린다. 그래서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예술에서 아이디어가 최고의 가치로 대접받은 시대였다. 선봉에 선 것은 미술이었다.
미술에서 아이디어가 창작의 주요 동력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현실을 재현하거나 해석하는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미술에서 새로움을 여는 만능열쇠로 통했다. 그래서 작가들은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려고 고민하기보다 어떤 것이 미술이 될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 몰두하게 됐다.
20세기에 나타난 수많은 미술 운동 중에 ‘행위예술’이라는 게 있다. 그리거나 만들어 결과물로 나타나는 예술이 아니라 행위 자체를 예술로 보자는 아이디어였다. 어떤 상황에 맞게 즉흥적으로 돌발행위를 보여주는 예술이다. 이를 예술 형식으로 끌어올려 하나의 미술 유파로 만들어낸 것이 퍼포먼스다.
퍼포먼스는 작가의 의도를 담아 계획된 연출로 표현하는 행위로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퍼포먼스는 영상으로 담지 않으면 사라져버리는 예술이다. 이를 회화 형식과로 결합해 새로운 미술로 보여준 것이 퍼포먼스페인팅이다.
20세기 최고 아트아이디어 뱅크로 통하는 요절한 천재 이브 클랭(1928-1962)이 창안한 형식이다. 그가 미술사에 남긴 퍼포먼스페인팅의 고전은 ‘인체 측정학’이다. 클랭의 대표적인 회화 제작 방식인 여성의 알몸을 붓으로 사용한 작품 중 하나다.
온몸에 물감을 바른 여성들을 벽에 세워 놓은 캔버스에 몸을 부딪치게 하거나 비비게 해서 나타난 흔적으로 제작한 것이다. 물감을 바른 누드 여성들이 현장에서 연주되는 현대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클랭의 지시에 따라 캔버스에 몸을 부딪치거나 문지르는 방법이다. 퍼포먼스와 현대음악, 그리고 회화가 결합한 통합예술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부터 이런 시도를 한 작가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성공한 작가가 이건용이다. 그의 퍼포먼스페인팅은 현재 미술시장에서도 블루칩으로 평가된다. 퍼포먼스를 붓질로 담아내는 아이디어가 새로운 회화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류혜린도 이런 흐름 속에서 눈에 띄는 실험 작가다. 그는 기존의 퍼포먼스페인팅과 같은 맥락을 유지하면서 결이 다른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다. 자신의 퍼포먼스를 규격화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도구를 만들어 회화로 담아낸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일상적 행위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로 진지하다.
이처럼 힘든 과정으로 연출되는 퍼포먼스와 그 결과물로 나타나는 페인팅에 담긴 메시지는 무엇일까.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현대인의 강박관념에 대한 풍자로 보인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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