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20년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사업’이 논란이다. 환자의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일부를 각 지역 보건소에서 병원에 지급하게 되어 있는데, 일부 지역 보건소가 ‘예산 소진’을 이유로 청구금액 지급을 미루고 있어서다. 외상을 달아놓으라는 셈인데, 의사들 사이에서는 “추후 이자까지 포함해 지급해야 한다”는 반발의 목소리가 나온다. 환자들 역시 혜택이 줄어들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사업은 체외수정 시술과 인공수정 시술 등 난임 치료 시술을 받는 난임 부부에게 국가가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일부를 지원해주는 제도다. 난임 진단을 받은 중위소득 180%(2인 가구 기준 월 538만 원) 이하 가구 및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 부부는 체외수정 시 회당 최대 11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환자는 본인부담금 10%만을 부담한다. 나머지 90%는 의료기관이 시술 후 관할 보건소에 시술비를 청구하면 보건소가 의료기관에 지급한다.
#3차 추경 예산 삭감 영향…일부 의사 “이자까지 지급해야”
당초 올해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사업(보조인력 사업비 제외)에는 국비 227억 원, 지방비 269억 원 등 총 496억 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예산 편성액은 경기와 서울시가 국고보조금과 지방비를 합쳐 각각 129억 원과 108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제주시와 세종시가 74억 원, 33억 원이었다. 2019년에는 국비 184억 원, 지방비 220억 원을 합쳐 404억 원의 예산이 해당 사업에 편성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일부 보건소가 의료기관이 청구한 시술비 지급이 어렵다는 공문을 보내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예산이 동나 2020년 사업 예산비 추가 편성 또는 2021년 사업 예산으로 지급할 수밖에 없다는 것. 서울의 한 보건소 관계자는 “전국 대부분 보건소가 청구비 지급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경기도의 한 보건소 관계자는 “예산이 대폭 깎이면서 3분기 청구 건부터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 6월 3일 확정된 3차 추가경정예산에서 난임 부부 지원 사업 관련 예산이 삭감된 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복지부에 따르면 난임 부부 지원 사업이 포함된 올해 모자보건사업 전체 예산은 2019년 274억 원보다 21.6%(59억 원) 증가한 333억 원이었으나, 3차 추경에서 48억 원이 삭감됐다. 대신 보건복지 예산 중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224억 원), 의료인력 등 지원(120억 원), 감염병 역학조사 통합정보시스템 구축(2억 원) 등 346억 원이 증액됐다.
이와 관련해 의료기관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동석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난임 시술은 단일성으로 끝나는 시술이 아니다. 지자체에서 돈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오는 환자를 막기는 힘든 실정이다. 병원에서 부담을 지고 있다. 올해가 몇 개월 남지 않았으니 일단 버텨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부산시의사회는 공식 SNS에서 “이자도 주지 않으면서 외상장부에 달아놓으라는 인간들을 조폭이라고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의료기관에서는 올해부터 지원 금액 한도를 늘려놓고 예산을 감축해버리면 어떡하느냐는 반응을 보인다. 난임 부부 시술에는 △신선배아 체외수정 △동결배아 체외수정 △인공수정 등이 있는데, 올해부터 인공수정 1회 최대 지원액이 기존 5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줄어든 대신 신선배아 체외수정은 50만 원에서 110만 원으로 늘어났다. 2019년부터는 지원 대상이 기존 기준중위소득 130% 이하 가구에서 기준중위소득 180% 이하 가구까지 확대됐고, 같은 해 10월부터는 법적 부부뿐 아니라 사실혼 부부도 지원 대상이 됐다.
#과거 환자들 보건소 통지서 발급 중단될까 주소지 옮기기도
각 지역 보건소로 의료기관의서 민원이 적잖게 들어오지만, 보건소도 입장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난임 부부 시술비와 관련해 서울은 30%, 기타 지자체는 50%의 국가보조금(국비)이 교부된다. 나머지는 지자체가 지방비를 매칭해야 한다. 따라서 국비가 내려오지 않으면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데도 무리가 있다.
현재 보건소마다 지원 가능한 범위도 다르다. 난임 부부 중 정부 지원금이 남은 경우 시술과 직접 관련 있는 원외 약 처방을 받은 환자는 약제비도 청구할 수 있는데, 이 약제비 청구액도 내년에 지급하기로 한 지자체도 있다. 서울의 한 보건소는 약제비도 내년이 되어서야 지급 가능하다고 했다. 경기도의 한 보건소 관계자는 “약제비는 많아봐야 한 사람당 5만~10만 원 정도라 아직은 충당할 수 있다. 민원을 제기하는 환자부터 먼저 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환자들은 불안한 기색을 떨치지 못한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난임 여성들은 “이제 난임 시술을 시작하려 했는데 어떻게 되는 거냐”는 반응을 보인다. 난임 부부가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사업 예산을 확충해달라는 민원을 국민신문고에 단체로 제기하는 움직임도 인다.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사업의 예산이 조기에 소진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도 몇몇 지역에서 예산이 부족해 내년도 사업 예산으로 청구분을 지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난임 지원을 원하는 환자는 부인 주소지 관할 시·군 보건소를 방문해 지원결정통지서를 받아 난임 시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에 제출하게 되는데, 과거 예산 소진 문제가 있었을 당시 환자들은 보건소가 통지서 발급까지 중단할 상황을 대비해 주소지를 옮기는 사례도 발생했다.
다만 다행히 현장에서 큰 혼선은 빚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경기권의 병원 네 군데에 전화해 물어보니 병원은 대체로 시술에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표했다. 앞서의 보건소 관계자들 역시 “정부에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환자들이 시술받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3차 추경에서 모자보건 사업 감액된 이유는) 난임 부부 지원 사업은 2017년 7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됐는데, 예산 집행률이 생각보다 낮았고 올해 3월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난 6월쯤부터 (신청률이) 다시 늘어나고 있어서 현재 현황을 파악 중”이라며 “현재 예산을 소진한 보건소도 있고 여유분이 있는 곳도 있다. 다른 사업의 남는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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