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소설 같은 상상들을 현실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광폭 행보로 잊을 만하면 세상을 놀라게 하던 일론 머스크에 대한 무한 기대감을 잠시 진정시키고, 신중히 지켜볼 타이밍이 온 것 같다.
요즘 거론되는 테슬라 주가 거품설 때문만은 아니다. 거품설의 근거는 주로 테슬라의 자동차 판매 대수가 굴지의 경쟁사들보다 많이 낮다는 점, 수익의 큰 부분이 탄소배출권인 점 등이다. 또 최근 테슬라가 S&P 지수에 편입되지 못했고, 지난 8일 GM이 수소 전기차 업체 니콜라에 지분 투자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테슬라 주가는 하락했다. 하지만 이런 건 매력적인 주식에 대한 과열과 조정, 외부 변수 영향 등 일반적인 현상일 수 있다. 혁신적인 기술력, 제품의 독창성 같은 펀더멘털이 흔들리지 않는 한 기술 산업 혁신가로서의 머스크를 향한 무한 지지를 멈출 이유는 없다.
문제는 기존 전기차 시장을 넘어 다가올 미래 시장의 헤게모니도 그가 가져갈 것이라 100% 확언하기 애매해졌다는 점이다. 큰 기대를 모았던 뉴럴링크가 아직 구체적인 잠재력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 자율주행 시장에서 경쟁 진영이 부쩍 힘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선 이런 상황을 냉정히 파악해 본 후, 기술 산업 리더로서의 그에 대한 무한 신뢰를 지속할지 결정해보자.
#기대 못 미친 뉴럴링크 사업 업데이트
테슬라의 주가는 올해 계속 치솟았는데, 그 배경에 오로지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성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머스크의 뇌 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업 뉴럴링크에 대한 벅찬 기대, 자율주행 레벨 5 기술에 대한 머스크의 호언장담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8월 28일(현지시각) 실시된 뉴럴링크 사업 업데이트는 기대에 못 미쳤다. 머스크는 사람 뇌에 칩을 심어 마비, 시각장애, 청각장애, 기억상실 등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뿐 아니라 뇌의 기능을 확장해 인공지능에 점령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야심을 밝혀온만큼 업데이트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이 회사는 쥐의 뇌에 칩을 심는 실험을 성공한 바 있어 이번엔 인간 실험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인간 뇌에 칩을 삽입하는 기술이 FDA 승인을 받았다는 소식이 공유됐을 뿐이고, 실제로 보여준 건 귀여운 돼지 세 마리뿐이었다. 동전만한 칩 ‘링크’를 뇌에 심은 돼지 ‘거트루드(Gurtrude)’의 후각이 자극 받을 때 마다 뇌파가 무선으로 컴퓨터에 전송돼 스파이크를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동물 심지어 사람의 뇌파 스파이크 감지 실험은 이미 몇 십년 된 새로울 게 없는 성과라고 뇌 과학자들은 지적했다. 뉴럴링크도 이미 존재하는 기술이라 인정한다.
머스크는 ‘링크’가 점점 발전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 칩을 통해 미래에는 장애인들이 신체 기능을 되찾고, 생각만으로 테슬라차를 운전할 수 있고, 심지어 기억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리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등 소설 같은 얘기들을 들려줬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고개를 갸우뚱 한다. 가령 뇌 안에서 오래 부식하지 않는 칩을 만드는 데에만 최소 몇 년은 필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의견들을 종합해보면 머스크가 선언한 ‘인공지능에 밀리지 않게 해주는 칩’이 나오는 건 꽤 오래 요원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단 뉴럴링크가 개발한 수술 로봇에 대해서는 ‘좋다(Nice)’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이 로봇은 사람 의사를 대신해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내고 칩을 삽입하는 수술을 고통없이 1시간 내 집도한다. 뉴럴링크는 최신 칩이 나올 때마다 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삽입과 제거를 용이하게 하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 자리에 더 구체적인 계획이 공유됐다면 실망감이 덜 했을텐데 안타깝게도 머스크가 보여준 건 여기까지였다. ‘링크’로 어떻게 환자들의 신체 기능을 회복시킬지, 어떻게 인공지능과 대등해지는지, 다음 업데이트는 언제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엔지니어 구인공고가 가장 분명한 메시지였다.
#자율주행 전쟁서 만난 강력한 ‘씬스틸러’ 25살 고졸 CEO
지난 7월 머스크는 상하이 세계인공지능회의(WAIC)에서 “테슬라가 올해 안에 레벨 5 자율주행을 기본 기능을 완료할 것”이라고 선언해 전 세계 자동차, IT 관계자들, 투자자들이 들뜨게 만들었다.
레벨 5는 사람이 운전에 관여할 필요 없는 수준이다. 현재 상용화된 테슬라의 기술은 레벨 2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레벨 3에 가깝다고 평가받으며 경쟁사들 보다 앞서 있긴 하다. 올해 안에 정말 최종 단계 기본 기능을 완성한다면 세상을 또 한번 놀라게 할 일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재로서는 테슬라가 반드시 자율주행 시장 리더가 될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우선 자율주행에서 매우 중요한 눈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카메라’와 ‘라이다(LiDAR)’ 중 어느 진영이 표준이 될지부터 속단하기 힘들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은 카메라 기반이며, 각광받는 또 다른 주자인 모빌아이도 카메라 기반이라, 카메라가 강세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라이다 진영에 무서운 신예가 나타나버렸다. 주인공은 25세 고졸 CEO 오스틴 러셀이 창업한 ‘루미나 테크놀로지스’다. 카메라 대신 레이저로 주변을 인식하는 ‘라이다’는 높은 정밀성을 갖췄음에도 비싼 가격이 걸림돌이었고, 이는 테슬라가 채택한 카메라 기반 기술에 힘을 실어줬었다. 실제로 벨로다인이 개발한 라이다는 약 9000만 원에 달했고, 이후 구글 자회사 웨이모가 10분의 1로 낮췄지만 여전히 900만원에 가까웠다.
그런데 루미나가 2019년에 60만원짜리 라이다를 개발해 버렸다. 토요타도 루미나의 라이다를 이용해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으며, 볼보도 루미나의 라이다를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루미나는 오는 2022년까지 고속도로에서 손을 쓰지 않는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루미나는 기업 인수 목적 회사(SPAC)인 고어스 메트로펄러스와 역합병하고 약 2017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합병이 완료되면 ‘레지어’라는 종목코드로 나스닥에 상장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테슬라를 향하던 수많은 투자자들의 관심이 루미나에게 분산되는 현상이 가속되고 있으며, 라이다 진영에 힘이 실리게 됐다. 무대 위 주연급이던 머스크에게 ‘씬스틸러’가 나타난 셈이다.
추후 카메라 진영이 이긴다 해도, 또 다른 카메라 기반 강자인 모빌아이도 모회사인 인텔의 자동차칩과의 시너지를 무기로 막강한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만만찮은 경쟁진영들의 행보들을 볼 때 자율주행이라는 무대에서는 머스크의 분량이 절대적일 거라 확신할 수 없다.
#탄탄한 독자 생태계, 여전히 유력한 미래 리더 머스크
카메라든 라이다든, 자율주행 전쟁에서 ‘데이터’가 승패의 관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율주행에서 중요한 인공지능(AI)의 쓰임새는 얼마나 방대하고 유용한 데이터를 많이 확보했는지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측면에서 테슬라는 강자다. 이미 엄청난 양의 주행 데이터를 확보해 왔으며 스페이스X가 띄운 위성들로 추후 광대한 관련 데이터 수집도 가능해진다.
경쟁 진영은 독자 생태계를 다 갖춘 테슬라와 달리 라이다, 자동차 제조, 자동차 칩, 위성 인터넷 등 각 요소를 갖춘 업체들이 연합군을 이뤄 테슬라와 전쟁할 공산이 크다. 반면 테슬라는 전기차 리더의 입지, 자체 자율주행 기술, 위성을 쏘아 올리는 스페이스X, AI 연구력 등 자율주행을 핵심 역량을 모두 갖춘만큼 여전히 매우 유력한 선수임에 틀림없다. 심지어 머스크가 뇌 삽입 칩으로 생각만으로 운전이 되는 기술을 정말로 이룬다면 적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뉴럴링크 사업 업데이트에 대한 실망감에 대해서도 머스크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높다. 창립 3년 성과치고 훌륭하며, 궁극적 목표 달성은 빠른 시간 내에 쉽지 않다는 내용이다. 사실 칩 하나로 인간과 AI를 공생시킨다는 건 아무리 일벌레 머스크라도 빨리 이루긴 어려운 게 맞겠다.
그동안 워낙 빛나는 활약을 보여준 머스크라서, 기대치가 너무 커져 버린 것도 사실이며, 머스크라고 위협받지 말란 법 없다. 그가 우려들을 우습게 넘고 ‘역시 머스크’라는 찬사를 들으며 세상 바꿔주길 바란다. 그가 마법사는 아니겠지만, 기성 산업의 판을 뒤집고,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을 보여준 주 120 시간 근무 천재 워커홀릭 일론 머스크가 가져다줄 공상과학 소설 같은 미래에 여전히 기대를 걸고 싶다.
강현주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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