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발표한 ‘2021년도 예산안’을 보면 내년 기업들 사정은 올해와 비교해 나아지지 않고,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으며, 개인 주식투자의 세금 납부는 늘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들의 생산·투자·고용이 더욱 나빠지고 세수가 감소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하는 대신 재정을 퍼붓는 관 주도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지출은 증가하고 세 수입은 감소하는 상황이 지속돼 재정건전성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2021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 총지출액은 555조 8000억 원으로 2020년(이하 본예산 기준·512조 3000억 원)에 비해 43조 5000억 원(8.5%) 증가했다. 반면 정부 총수입액은 483조 원으로 2020년(481조 8000억 원)보다 1조 2000억 원(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정부 지출은 대폭 늘어난 반면 수입은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 셈이다. 정부 수입이 줄어든 것은 세수 전망이 악화된 때문이다. 정부는 2021년 국세수입을 282조 8000억 원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2020년(292조 원)보다 9조 2000억 원(3.1%) 감소한 수준이다.
세수 급감이 전망되는 이유는 기업이 내는 법인세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법인세 수입은 당초 64조 4190억 원으로 예상됐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기업 경영 사정이 악화되면서 58조 4753억까지 줄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내년 법인세 수입은 더욱 나빠진다는 점이다. 정부는 내년 법인세 수입을 올해보다 8.8%나 감소한 53조 3173억 원으로 상정했다. 정부도 내년 기업 경영 상황이 개선되기 어렵다고 인정하는 셈이다.
여기에 정부가 내놓은 각종 부동산 억제책으로 부동산 거래도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예상한 2021년 인지세 수입은 9467억 원으로 올해(1조 523억 원)보다 10% 감소한 수준이다. 인지세는 부동산 등 재산권에 변경이 생겼을 때 작성하는 증명문서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인지세 수입 대부분은 거래액이 큰 부동산이 차지한다. 인지세 수입 감소는 정부 부동산 정책이 가격 상승을 막는 것을 넘어 거래 자체를 줄게 한다는 의미다.
주택 건설은 전방·후방 효과가 큰 사업이라는 점에서 주택 건설 둔화는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대신 코로나19 상황에 국내 주식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해준 개인투자자들(일명 ‘동학개미’)에게 기대는 모습이다. 정부는 2021년 증권거래세 수입이 5조 861억 원으로 올해(4조 3848억 원)보다 16% 늘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기업이 내는 법인세 감소분을 메우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다.
정부는 이처럼 내년에 기업 사정이 안 좋아지고, 세수 감소가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면서도 기업 경영 환경을 개선하기보다는 재정을 투입하는 관 주도 사업에 매진하려는 모습이다. 정부는 2021년 예산 10대 프로젝트로 한국판 뉴딜(21조 3000억 원), 일자리 투자(8조 6000억 원) 지역사랑상품권·소비쿠폰(1조 8000억 원) 등을 내세웠다. 정부가 돈을 쏟아부어 경제를 견인하는 정책을 계속하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 들어 재정 투입이 급증하면서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돼 이러한 정책은 더 이상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2020~2024년 재정운용 방향’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에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0.9%를 기록하며 50%대를 넘어서게 된다. 문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17년에 GDP 대비 국가채무가 39.7%였던 점을 감안하면 급격한 증가세다.
문재인 정부는 미래 세대가 떠안아야 할 국가채무를 제대로 관리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국가채무의 “GDP 대비 40% 초반 수준에서 관리”를 장담했으나, 임기 3년 차인 올해 “2024년에 50% 후반 수준 이내로 관리”로 수정했다. 사실상 다음 정부에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까지 늘어난 빈 곳간을 넘게 주겠다는 뜻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향후 세입보다 세출 부담이 늘어날 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있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경우 국가신인도가 떨어지고 이는 국채 발행 시 비용 부담을 늘려 재정 건전성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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