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감염 경로가 불분명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비율이 꾸준히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1일 질병관리본부는 “2주간 감염 경로 불명 확진자 비율이 24.3%로 사흘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감염 경로 불명 사례는 8월 30일 21.5%, 31일 22.7%, 1일 24.3%로 계속 높아지다 9월 2일에는 23%로 소폭 줄었다.
감염 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감염자의 경우 산업재해(산재)를 인정받기가 힘들다. 감염원이 명확하지 않고, 코로나19와 업무의 연관성을 근로자가 직접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기자가 한 법무법인을 통해 상담을 받아보니 변호사는 “코로나19 확진 감염 경로를 찾는 방법뿐”이라며 “(근로자가) 제공하는 자료를 확인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직장 첫 번째 확진자 감염 경로 모르면 산재 처리 힘들어
지금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산재를 인정받은 사례가 없지는 않다.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가 업무 수행 과정에서 감염자와의 접촉으로 감염된 경우를 코로나19 관련 업무상 재해로 보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산재보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으면 코로나 치료로 일하지 못한 기간 동안 평균 임금의 70%에 해당하는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 산재보상국 업무상질병부에 따르면 8월 31일 기준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산재는 총 89건 접수돼 76건이 승인됐고 2건이 불승인됐다. 승인된 사례 중에는 요양보호사가 26명, 간호(조무)사 24명 등 보건의료 종사자가 많았다. 다만 사무(행정)직 한 명과 제조업 종사자 한 명은 산재를 신청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89건 중 11건은 심사가 진행 중이다.
근로복지공단은 보건의료 및 집단수용시설 종사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코로나19 감염자와 접촉으로 감염되는 경우 업무와 질병의 상당인과관계를 명백히 알 수 있는 경우로 보고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다. 비보건의료 종사자 중에서도 불특정다수나 고객응대업무 등 감염 위험이 있는 직업군은 발병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생활공간이나 지역사회에서 감염자와 접촉이 없었다면 역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콜센터 상담원 10명이 산재 인정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기타 근로자의 상황은 다소 다르다. 근로복지공단은 노출기간·강도·범위·발병시기 등을 고려해봤을 때 업무와 질병의 상당인과관계가 입증되는 경우에만 산재를 인정한다. 그러다 보니 직장 내에서 첫 번째 확진자로 판단됐지만 감염 경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 산재처리를 받기 힘들다. 지난 4월 근로복지공단이 한 코로나19 감염자에 대해 감염 경로 불분명 사례로 분류해 산재 불승인 처리를 내린 이유다.
출퇴근 도중 코로나19에 감염돼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노동자가 의도하지 않은 사고’로 분류돼 산업재해를 인정받을 여지가 있다. 다만 감염인과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과 통상적인 경로 및 방법으로 출퇴근했다는 사실을 근로자가 밝혀내야 한다. 근로자가 제출해야 하는 요양급여신청서에 재해발생경위를 구체적으로 적게 돼 있다. 신청 이후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보건소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보관하는 사례조사서나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 결과 등을 통해 재해조사를 벌이지만,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사례의 경우 근로복지공단에서도 달리 입증할 방법이 없다.
한 질병판정위원회 심의위원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바이러스성 질병은 산재로 인정받기 쉽지 않았다. 쓰쓰가무시병, 뇌염 등은 외부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걸릴 수 있는 질병인데 감염 경로 입증이 쉽지 않아 불승인되는 사례가 상당히 많았다”며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요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나 확진자가 다녀간 회사에서 일한 직원 등 대체로 감염 경로가 명확하고 일탈행위가 없는 경우 산업재해가 인정됐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감염 경로가 불분명한 경우 집과 회사 이외의 장소에서 모임을 가지는 등 일탈행위가 있었을 때는 업무관련성 입증이 쉽지 않다”며 “다만 코로나19는 다른 감염성 질병과 다르게 국가에서 동선 관리를 해주고 있으니 일반 감염병보다는 입증이 수월할 수 있다. 감염 경로를 모르는 근로자는 정상 경로를 입증하고 출퇴근 중 재해와 휴게시간 중 재해에 관한 규정을 적용해 신청하면 승인 확률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민원 많지는 않아…“유급병가휴가·상병수당 도입이 대안” 목소리도
다행히 현장에서는 아직 별다른 문제는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감염 경로 불분명 감염자의 민원이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상윤 노무법인 갑 대표공인노무사는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힘든 환자의 경우 산업재해 인정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그 가능성이 매우 낮을 것으로 보인다”며 “상담이 많지는 않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는 해고·근로조건 저하·임금체불 등의 상담이 주로 들어오는 편”이라고 했다.
앞서의 위원은 “아직 코로나19 산업재해 접수 사례가 많지는 않다. 앞으로 신청이 늘어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며 “바이러스성 감염 특성상 치료 기간이 길지 않아 산업재해 승인을 받아도 실익이 작고, 건강보험에서 치료비를 부담하고 있어 산업재해 신청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은 듯하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추후 확진자가 더 나올 상황을 대비해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 금천구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김 아무개 씨는 “얼마 전 직원 가족 중 확진자가 나왔다. 그런데 회사에서 출퇴근 지시가 내려와 불안한 상황에서 계속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며 “회사 지침대로 출근하다 확진됐는데 감염 경로를 입증하지 못해서 산재 처리가 안 된다면 분통이 터지고 소송도 불사하고 싶은 심정일 듯하다”고 말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치료비는 지원이 되어도 자가격리에 따른 비용은 따로 지원되지 않는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그 기간에 임금 손실이 있기 때문에 산재가 되느냐 안 되느냐가 중요하다. 코로나19가 확산이 더 되면 어디서 감염됐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산재 제도를 보완하기는 힘들 듯하다. 감염 경로가 확실하고 업무 관련성이 높은 사람은 산재 보상을 받게 해 주고, 유급병가휴가와 상병수당을 도입해 소득 손실을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하는 게 합리적이다”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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