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문재인 대통령은 8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등을 지적하면서 “방역과 경제는 반드시 함께 잡아야 하는 두 마리 토끼”라며 “공공투자부터 보다 확대하면서 민간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까지 강구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재계가 그동안 기업 활동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해온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을 통과시켰다.
문 대통령은 민간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라는데 정부는 코로나19에 위기에 몰린 기업을 더욱 옥죄는 법을 만드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여당도 21대 국회 출범 이후 각종 규제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21대 국회 개회 뒤 발의된 규제 법안은 404건에 달한다.
정부와 여당이 문 대통령의 말과 달리 기업규제에 속도를 올리는 상황은 문 대통령의 최근 일정을 보면 예상되는 일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에는 전국 경제투어를 벌이며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또 재계 인사들을 청와대로 불러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는 올 초까지만 해도 이어지는 듯했으나 최근 들어 기업인들과 만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문 대통령이 기업 현장을 방문하거나 기업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줄어들자 정부와 여당도 정책에 기업의 이야기를 반영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에는 평택항을 찾아 현대자동차의 친환경차 수출현장을 돌아보고 자동차 운반선에 직접 올랐다. 또 GS건설의 투자협약식에도 참석하고 포스코 스마트공장을 방문했다. 2월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이재현 CJ 회장 등 재계 인사들과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를 가졌다.
3월에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주요 경제 주체들과 원탁회의도 했다. 4월에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호 명명식에 참석했으며, SK그룹의 워커힐 호텔에서 관광 관련 고용유지 현장 간담회를 가졌다. 대기업이 벌이는 주요 투자 및 고용 현장을 두루 둘러본 것은 물론 주요 기업 경영진의 의견도 듣는 자리를 가져온 셈이다.
하지만 5월 이후 문 대통령의 일정을 살펴보면 기업 현장을 찾거나 기업인과 자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듣는 일은 단 두 차례에 그쳤다. 기업 관계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들은 일정은 5월 21일 한국무역협회 대회의실에서 가졌던 ‘위기 극복을 위한 주요 산업계 간담회’가 유일하다. 이 자리에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김영주 무역협회 회장, 항공·해운·자동차 등 9개 업종 대표 17명이 참석했다.
기업 현장을 찾은 것은 7월 9일 SK 하이닉스 이천 캠퍼스를 방문한 일정뿐이다. 문 대통령은 기업인이나 기업현장과의 접촉점은 줄인 대신 정부가 추진 목표로 내세운 ‘한국판 뉴딜’과 관련된 일정에 몰두했다. 6월 18일에는 더존비즈온 강촌캠퍼스를 찾아 ‘한국판 뉴딜, 디지털 경제 현장 방문’ 행사를 했다. 7월 14일에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를 가졌고, 17일에는 ‘한국판 뉴딜, 그린 에너지 현장방문’ 행사로 전북 부안군 풍력 핵심기술 연구 센터를 방문했다.
기업 현장 목소리를 듣기보다 정부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 셈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문 대통령의 7월 20일 수석·보좌관 회의 발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정부는 넘치는 유동자금이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적 부분이 아니라 건전하고 생산적인 투자에 유입될 수 있도록 모든 정책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한국판 뉴딜이 금융과 민간에 매력적 투자처가 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 정부는 기업의 우려에도 공정경제 3법을 통과시키고, 여당은 각종 규제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이 체감하는 정부의 규제개혁은 악화일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500개 기업 대상으로 진행한 ‘2020년 규제개혁체감도’ 조사에서 올해 지수(기준치 100)는 93.8로 집계됐다. 지난해 94.1보다 0.3포인트 떨어진 것이며 2년 연속 하락한 수치다. 정부 규제개혁에 만족한다는 답변은 8.3%에 그쳤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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