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허위 매물로 손님을 유인해서 차를 비싸게 판 중고차 판매 조직이 ‘범죄집단’이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성착취물 동영상으로 기소된 ‘n번방’ 조주빈 일당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올해 초, 수사가 한창이던 때만 해도 조주빈 일당에 ‘범죄집단’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었는데, 법원이 이번에 유사한 사건에서 “역할만 분담해도 범죄집단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주빈 일당의 양형도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대법원 “통솔 없어도, 역할 나눴다면 범죄집단”
통상 범죄단체조직죄는 조직폭력배나 보이스피싱과 같은 조직에만 적용됐다. 범죄단체조직죄는 사형이나 무기징역·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한 경우에 성립한다. 이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받아내면 공범(조직원)들이 지위와 상관없이 공동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 업무와 관계없이 같은 양형 선고가 가능하다. ‘중형 선고’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만큼 법원은 그동안 ‘범죄단체’로 볼 수 있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수사기관에 요구했다. 조직 내부의 통솔체계와 확실한 역할 분담이 입증될 경우에만 범죄단체로 판단했다. 때문에 n번방 조주빈 일당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될 때만 해도 범죄단체조직죄 혐의 적용 가능성에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조주빈 일당이 ‘통솔 체계’를 갖췄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 일당 중 조주빈의 실제 존재를 아는 공범도 없었고, 조직도와 같은 구체적인 지휘 체계도 없었다. 오로지 조주빈만이 각각의 역할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통솔 체계가 없더라도 ‘형법상 범죄집단’으로 볼 수 있다는 새로운 판단을 내놨다. 그 대상은 중고차 판매 사기 일당이다. 중고차 판매 사기 일당 22명은 인터넷에 허위 매물로 미끼를 던진 뒤 피해자들에게 다른 차량을 소개, 시세보다 비싸게 판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들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했지만, 1심과 2심은 통솔 체계가 없었던 점을 고려해 범죄단체조직죄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유죄로 판단을 바꿨다. 대법원은 이들이 △인터넷에 미끼를 올리는 역할 △텔레마케터 △딜러 △대표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범죄 수행을 위해 역할을 분담하고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결합체이므로 범죄집단으로 볼 수 있다”며 유죄 취지로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이 판결문에서 언급한 법 조항은 ‘형법 제114조’. 해당 문항에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라고 명시돼 있다. 대법원은 이를 근거 삼아, 통솔 체계 유무보다는 범죄를 목적으로 역할을 나눴다면 범죄집단으로 엄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통솔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더라도 조직 구성원들이 각각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나눠 반복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대법원이 처음 판단한 사례이다.
#n번방 조주빈 형량에도 영향 미칠 가능성 높아져
조직폭력배나 보이스피싱·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사건처럼 통상 ‘조직도’ 등 체계적인 조직 구성이 있어야만 유죄로 판단했던 범죄단체 혐의 유무죄 판단 기준에 대법원에서 새롭게 나오면서, 법조계에서는 자연스레 ‘범죄집단’ 혐의로 재판을 받는 ‘n번방’ 조주빈 일당 형량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올해 초 논란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범죄집단 혐의 적용에 대해 “조주빈 일당 중 조주빈의 실체를 알았던 사람은 없지 않냐. 역할 분담은 몰라도 통솔 여부에서 범죄집단죄 유죄는 가능성이 반반”이라던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통솔 체계와 관계없이 역할 분담만 있어도 범죄 집단이라고 판단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번 사건을 잘 아는 수사당국 관계자는 “조주빈은 자신에게 동조하는 회원을 ‘직원’이라고 지칭하고, 성착취 동영상 유포 및 자금세탁, 대화방 운영 등 세분화된 임무를 공범들에게 맡겼다”며 “범죄단체 혐의를 적용해 가중처벌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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