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한국 경제의 모델로 ‘한국판 뉴딜’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한국판 뉴딜’을 힘차게 실행하며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양 날개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혁신하고, 격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저금리로 넘쳐나는 자금을 부동산이 아닌 투자로 돌려 부동산 가격 안정과 함께 투자 확대에 따른 일자리 창출을 겨냥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0일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도 “정부는 넘치는 유동자금이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적 부분이 아니라, 건전하고 생산적인 투자에 유입될 수 있도록 모든 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유동자금의 투자 유입을 주문했지만 기업은 반대로 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우리나라 10대 기업(2019년 매출액 기준)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액은 6월 말 현재 83조 3577억 원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말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액은 61조 4866억 원으로, 6개월 사이 35.6%(21조 8711억 원) 급증했다.
우리나라 매출액 1위인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액은 6월 말 현재 36조 1096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26조 8860억 원에 비해 34.4% 늘어났다.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보유 규모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다른 주요 기업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액이 지난해 말 8조 6820억 원에서 지난 6월 말 10조 8838억 원으로 25.4% 증가했다. 포스코도 같은 기간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액이 3조 5149억 원에서 6조 383억 원으로 71.8% 급증했다.
LG 전자는 지난해 말 4조 7774억 원이었던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액이 5조 4648억 원으로 14.4% 늘었고, 한화(주)는 같은 기간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액이 3조 5127억 원에서 4조 2802억 원으로 21.9% 증가했다. 기아자동차(4조 2687억 원→6조 6926억 원, 증가율 56.8%), SK이노베이션(2조 1960억 원→4조 1318억 원, 증가율 88.2%), 현대모비스(3조 3420억 원→4조 1474억 원, 증가율 24.1%), CJ(주)(1조 6026억 원→2조 3234억 원, 증가율 45.0%), 삼성물산(2조 7044억 원→3조 2859억 원, 증가율 21.5%) 등도 6개월 사이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액이 크게 증가했다.
이는 정부·여당이 말로는 투자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21대 국회 개회와 동시에 각종 기업 규제 법안을 쏟아내자 경영 환경 불확실성 확대를 우려한 기업들이 현금 보유량을 대폭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조짐에 문 대통령이 주문한 ‘포스트 코로나’가 아니라 기업 생존에 무게를 두기 위해 투자를 줄이고 현금 확보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기업들이 투자보다는 현금 보유를 늘리기 위해 외부에서 돈을 끌어들이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상황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단기차입금 순증가액이 지난해 상반기에 1902억 원이었으나 올 상반기에는 2조 4036억 원으로 12.6배 증가했다. 포스코의 경우 단기차입금 순증가액이 지난해 상반기에는 –1조 1314억 원을 기록해 상환액이 차입금보다 컸다. 하지만 올 상반기에는 9942억 원을 기록하며 증가세로 돌아섰다. 포스코는 올 상반기 연구개발비 합계액이 2303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2583억 원에 비해 10.8% 감소하는 등 연구개발 투자도 줄였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상반기 차입금 증가액이 3938억 원이었지만 올 상반기에는 4조 284억 원으로 10.2배 늘었고, 한화(주)는 차입금 및 사채 증가액이 지난해 상반기 5조 3738억 원에서 올 상반기 13조 792억 원으로 2.4배 증가했다. LG 전자도 지난해 상반기 차입금 증가액이 6687억 원이었으나 올 상반기에는 8794억 원으로 31.5% 증가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대통령은 투자 확대를 위한 정책 마련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21대 국회 개회 후 여당은 20대 국회 때 폐기됐던 각종 규제 법안들을 되살려내고 있다”며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기업들은 당연히 생존을 위한 자금 확보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은 규제가 아니라 투자 환경을 만들어주고 나서 기업에 투자를 독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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