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 여의도 직장인 이 아무개 씨는 길었던 이번 여름 장마 이후 친환경 제품과 비건 식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씨는 “코로나19 사태와 긴 장마를 겪으면서 당장 내 아이가 살아갈 코앞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 사육으로 인해 엄청난 탄소가 발생한다는데, 고기를 안 먹는 완전 비건을 실천할 순 없지만 건강한 먹거리를 비롯해 비건 화장품, 제로웨이스트 등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소비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3년째 비건 식생활을 지향하는 대학생 전 아무개 씨도 이 씨와 같은 이유로 ‘지속가능한 산업 구조’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 전 씨는 “주변에도 건강, 신앙 등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거주하다 보니 비건 지향 생활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 온라인에서는 비교적 많은 생활 정보와 제품을 찾을 수 있다. 두유 옵션이 가능한 카페도 점점 늘고 있어서 반갑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장마를 겪으면서 채식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가축 사육에서 발생하는 탄소가 기후변화를 가속화한다는 성찰과 함께 동물권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식용 가축의 사육 및 도축 환경에 대해서도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야생동물에서 온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분별한 육식과도 결코 무관치 않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채식주의자를 일컫는 베지테리안은 그 단계에 따라 해산물을 먹는 페스코부터 완전 채식을 하는 비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최근에는 때에 따라 채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안도 등장했다. 그만큼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유통업계도 이런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마트는 8월 6일부터 전국 21개 매장에 ‘채식주의존’을 마련했다. 냉동식품 코너의 냉장고 한두 칸을 채식 식품만으로 배치하는 식이다. 지난 18일 기자가 직접 방문한 ‘이마트 영등포점 채식주의존’에는 비건용 버거패티, 만두, 너겟 등 6가지의 채식인용 가공식품이 진열돼 있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테스트 판매 차원에서 채식주의존을 도입했다. 수요에 맞춰 서울·수도권 중심이 아닌 전국 단위 매장 가운데 일부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최근 이상기후, 환경 오염 등으로 채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선제적으로 소비자 반응을 보기 위해 시작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채식 트렌드가 보편화돼 있다”고 말했다.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도 25일부터 채식배달 전용 카테고리를 별도로 마련한다. 앱에 채식 카테고리를 신설하고 강남구, 마포구 등 서울 일부 지역구 6곳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며, 현재는 사업주를 모집하는 단계다. 별도의 검토 과정도 갖춘다. 고기로 육수를 내거나 양념, 속재료에 조금이라도 고기가 들어갈 경우 채식 메뉴로 등록할 수 없다. 공깃밥이나 쌈채소와 같이 취지에 부적합한 메뉴를 등록하지 않았는지도 검토한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치킨, 피자 등으로 한정된 배달음식의 선입견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했다. 다음주 오픈 후 피드백을 받고 시장조사를 하면서 장기적으로 채식 속성이나 원재료 노출, 정보 제공, 전국 확대 등에 대해서도 고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장 선점 나선 롯데…아직 실적은 없지만 앞으로 기대
유통대기업 롯데는 비건 관련 상품 개발과 유통에 적극적이다. 롯데리아는 지난 2월 식물성 패티·빵·소스로 만든 ‘리아미라클버거’를 선보였다. 출시 당시 롯데리아는 채식인뿐만 아니라 윤리의식이 강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까지 타깃으로 한다고 밝혔다.
리아미라클버거의 대체육은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푸드가 개발했다. 롯데푸드는 이외에도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엔네이처’를 통해 여러 제품을 출시했다. 국내에서 식물성 고기를 직접 연구·개발·제조까지 하는 건 식품 대기업 가운데 롯데푸드가 유일하다.
롯데푸드 관계자는 “채식인용 제품을 선보인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 시장이 형성됐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어 언젠가는 시장이 확장될 거라 본다. 윤리적 관점에 더해 맛과 제품력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꾸준히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비건용 제품은 오래전부터 이야기됐지만 제품이 시장에 새로 등장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비건이 유통업계 주요 이슈로 주목받은 건 지난해부터다. 아직 수익을 낼 시장으로 보진 않는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거나 공익적 가치를 선도하는 이미지를 홍보하는 측면이 크다. 가치 소비에 관심이 많은 특정 세대에서 이슈가 되고 소비로 이어지지만 그 외에는 ‘먹히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쉽사리 투자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고 전했다.
#국내 채식 인구 150만 명 추정…12년 만에 10배 증가
전 세계적으로 채식시장 규모는 꾸준히 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전 세계 채식시장 규모가 2018년 이후 매년 평균 약 9.6%씩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8월 11일 한국채식연합 발표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도 2008년 15만 명 수준에서 최근 약 150만 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비건 인증을 받기 위한 기업체 상담도 늘고 있다. 국내 유일 비건 인증 기관인 한국비건인증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식품·화장품 등 비건 인증을 받은 상품은 약 600건이다. 한국비건인증원 관계자는 “점차 늘고 있다. 비건 인증에 대한 관한 문의 건수는 작년 하반기 대비 올해 상반기에 약 4배 정도 상승했다”고 말했다.
이원복 한국채식연합 대표는 “30년 가까이 엄격한 비건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이마트와 배달의민족 등이 새롭게 유통 과정을 추가한 사례에 대해 채식인들은 매우 고무적으로 본다. 완전한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채식을 선호하고 지향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적지 않은 수이지만, 아직은 시장이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커지진 않았다. 그래도 작년과 올해 대체육, 채식 가공식품의 성장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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