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기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할 것이란 관측 속에 지난 수년 동안 해외 각지에서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렇다 할 전기차 스타트업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모빌리티(e-Mobility) 기술기업 이빛컴퍼니의 박정민 대표는 “우리나라는 전기차 제조업으로 사업하기에는 진입 장벽이 높고 필요 없는 규제가 가득하다”고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2017년 6월 설립된 이빛컴퍼니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개조하는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까지 10대의 개조 전기차 시제품을 제작했다. 지난해 열린 제주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에선 자체 제작한 클래식카 프로토타입으로 전시장 내에서 실제 운행까지 선보여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올해 2월에는 종합물류기업인 한진과 택배 차량을 전기차로 개조해 납품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발표한 ‘2020년 상반기 전기차·수소차 판매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국산 전기차 판매량은 43.1% 감소했지만 수입 전기차 판매량은 무려 564.1% 증가했다. 특히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는 지난해 상반기 대비 판매량이 1587.8% 늘어난 7080대를 판매했다.
이렇다 보니 정부에서 지급하는 친환경차 보조금도 해외 전기차 제조기업이 독식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등이 공동 배포한 ‘그린뉴딜 세부 정책’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까지 전기차 보급대수를 113만 대로 늘릴 계획이다. 친환경차 보조금도 2025년까지 지원 시한을 연장할 방침이다.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국내 전기차 제조업체 육성에 관심을 쏟지 않는다면 보조금은 고스란히 해외 전기차 제조업체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박정민 대표를 만나 국내 전기차 시장의 현재와 전망에 대해 들었다.
Q. 최근 테슬라가 국내 친환경차 보조금을 독식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A.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자국 자동차 제조업에 유리하도록 보조금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프랑스, 독일, 중국 등은 자국 기업에 유리한 친환경차 보조금 제도를 운영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제도 개선보다 선행돼야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Q. 근본적인 원인이 따로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까.
A. 맞다. 앞서 언급한 세 나라는 전기차 제조업이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테슬라처럼 전기차만을 제조하는 기업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현대·기아자동차 같은 완성차 제조업체가 전기차까지 함께 만들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국 기업에 유리한 제도를 만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국토교통부는 2025년까지 113만 대를 보급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만으로는 보급 대수를 채울 수 없다. 국내 전기차 제조업을 육성하지 않는 한 해외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국내 친환경차 보조금을 독식하는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Q. 우리나라도 전기차 제조업체를 육성하면 될 일 아닌가.
A.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자동차 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제조업을 하려면 1급 자동차 정비소 정도의 시설과 장비를 갖춰야 한다. 이 기준이 내연기관 자동차 중심으로 짜여 있다. 일산화탄소 측정기나 매연 측정기를 갖춰야 하는데, 이 장치들은 전기차를 만드는 데는 불필요하다. 법에 따라 장비를 마련하는 비용만 최소 10억 원에서 최대 30억 원이 필요하다.
전기차 제조업에 과도하게 넓은 시설면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제조 절차가 다양한 까닭에 1000㎡(약 302평) 이상의 부지가 확보돼야 한다. 반면 전기차는 공정이 간단하기 때문에 제조하는 데 큰 부지가 필요 없다. 결국 전기차 제조업을 하려면 시설과 장비를 확보하는 데 수십억 원을 써야 한다. 스타트업에 수십억 원은 너무 큰 돈이다.
Q. 자동차 관리법 시행규칙만 완화하면 전기차 제조업이 성행할 수 있는 것인가.
A. 대중이 이용하려면 제조 차량이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에서 주관하는 자동차성능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차량은 소비자의 안전을 담보로 하므로 시험을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시험을 한 번 치를 때마다 드는 비용이 약 1억 원이다.
시험 비용도 높은데 모의고사를 치를 만한 환경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미국이나 뉴질랜드와 같은 영미권 국가에서는 개인이 일반 도로에서 자체적으로 안전성 시험을 할 수 있다. 이후 자동차 검사소에서 간단한 차량 검사만을 치르면 상용화도 가능하다. 만약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도 괜찮다. 시험 비용이 100달러 이하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제조업체들은 수백, 수천 번의 주행을 통해 차량의 안전성을 확인해야 한다. 시험 비용을 줄일 수 없다면 본고사장과 유사한 모의고사장이라도 조성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규제가 많다 보니 투자받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A. 애석하지만 사실이다. 전기차 제조업은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 제조 과정이 간단하고, 비용도 훨씬 저렴하다. 그런데도 스타트업이 모빌리티 관련 제조업을 한다고 하면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린다. 규제도 많고 자동차 전문가들이 전기 자동차를 내연기관 자동차와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투자자들로부터 “제조가 되겠어?”, “수익이 나겠어?”, “초기 적자는 어떻게 메울 건데?” 등 우려 섞인 목소리를 자주 들었다.
Q. 최근 해외 추세를 보면 전기차 스타트업들의 실적이 좋은 편은 아니다. 국내에선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전기차만 제조하는 기업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
A. 수요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가격이다. 제조업체의 증가는 곧 전기차 값을 낮추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현재 국내 전기차는 완성차를 개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내연기관 트럭의 엔진을 제거하고 모터와 배터리를 장착해 전기차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현대차의 포터 일렉트릭이 일례다. 자사 차체를 이용하는 포터 일렉트릭도 가격이 4000만 원대다.
우리는 운전자들이 사용하던 내연기관 차량을 전기차로 바꿔주는 게 골자다. 이 때문에 차체 구매 비용을 수천만 원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폐차 위기에 몰린 차량을 전기차로 바꿔 생애 주기도 늘릴 수 있다. 우리 같은 업체들이 계속해서 전기차 제조업에 도전해야 전기차 가격을 낮출 수 있고 궁극적으로 친환경차 보조금에 쓰일 세금도 줄일 수 있다.
Q. 인식도 좋지 않고, 규제도 많은 데다가 투자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전기차 제조업에 뛰어든 이유가 있나.
A. 큰 뜻은 없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자동차 개조업을 해왔다. 대기오염이 심각해지는 것을 보면서 모빌리티 분야에서 대기질을 개선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개조할 수 있는 기술과 방법을 터득했다. 노후한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꾸면 대기질 개선에도 도움이 되고 차량 생애 주기를 늘려 폐차율도 줄일 수 있다. 어떻게든 모빌리티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당장은 개인형 맞춤 전기차량을 보급하는 게 목표다. 비스포크(BESPOKE) 방식을 차에 도입하는 것이다. 하루 평균 100킬로미터(km) 미만으로 운행하는 차량이 있는 반면, 수백 킬로미터를 운행하는 차량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완성차 제조업체가 만들어내는 천편일률적인 차를 타야 한다. 용도에 따라 차량 스펙을 조절하고 그에 따라 가격도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의 규제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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