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사실상 무산을 염두에 둔, 법정 공방을 대비한 트집 잡기의 시작 아니겠나.”(산업은행 관계자)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은 HDC현산 측에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 12일 계약이 무산될 수 있다”며 최후통첩까지 날린 상황이다. 이미 금호산업과 HDC현대산업개발은 매각 무산에 대한 책임 공방을 시작했다. HDC현산은 “책임은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있다”고 주장하고, 금호산업과 채권단 측은 “모든 법적 책임은 HDC현산에 있다”고 맞서고 있다. 계약금 반환 여부를 놓고 소송이 불가피함을 양측 모두 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최후통첩까지 나와… ‘노딜’로 치닫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은 사실상 노딜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먼저 운을 띄운 것은 금호산업과 채권단. HDC현산이 지지부진한 태도를 보이자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 오는 12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러자 HDC현산도 맞섰다. 지난 6일 입장 자료를 내고 금호산업과 채권단을 향해 날선 비판을 시작했다. HDC현산이 문제 삼은 것은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요구가 수용되지 않은 것. HDC현산은 “대안 없는 재실사 거부는 실망스럽다”며 “매도인 측이, 금호산업이 아닌 HDC현산에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 심각히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또 HDC현산은 “계약금을 납입하고 각국의 기업결합심사를 마무리하는 등 인수 의지를 보여왔다”며 “거래 종결이 되지 않을 경우 책임은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있다”고 주장했다.
계약 무산 시 불가피한 계약금 반환 ‘소송전’을 염두에 둔 ‘네 탓 공방’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 채권단은 12일까지 HDC현산의 제대로 된 입장 표명 등을 요구하며 “이번 거래가 무산된다면 모든 법적 책임이 HDC현산에 있다”고 압박했다.
#책임 소재 어떻게 될까
HDC현산 측은 인수 결정 후 코로나19로 항공 산업 전체가 악화되면서 재협상을 희망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지난해 말 인수 계약 이후 증가한 아시아나항공 부채가 2조 8000억 원에 이르는 점 △아시아나항공이 HDC현산과 상의 없이 대규모 차입을 결정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금호산업과 채권단을 향해 재실사를 다시 요구했다.
채권단 측이 이에 대해 “이미 실사를 통해 계약을 한 것”이라며 일정 연기 정도의 협의만 가능하다는 점을 알리자, HDC현산 측은 9일 “대면협상 제의를 수락한다”면서도 아시아나항공이 거부하고 있는 재실사를 받을 것을 전제로 삼았다. 큰 흐름에서 ‘협상’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대목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두세 달 전부터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며 “HDC현산 측에서 코로나19 등을 감안할 때 너무 비싸게 금액을 불렀다고 판단해 재협상을 희망하며 재실사를 요구했다가, 가능성이 없어 보이자 무산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게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은행 내부에서는 HDC현산이 어떻게든 계약 무산을 ‘아시아나 측 책임’으로 전가해서 계약금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에 대해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고 귀띔했다.
#“소송? 당연한 수순으로 봐야”
지금 채권단과 금호산업, 그리고 HDC현산 간에 오가는 책임 공방을 감안할 때, 소송전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힘을 받는 대목이다. 실제 산은은 매각이 무산되면 새 인수 주체를 찾는 ‘플랜B’를 진행하겠단 뜻을 내비쳤다. 동시에 소송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 따르면 HDC현산이 지난해 12월, 아시아나 구주와 신주 인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금 명목으로 건넨 돈은 2500억 원. 통상 계약이 무산되면 계약금은 채권단 몫이 되는 게 맞지만, 계약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경우 매수인 측도 이를 돌려받을 가능성이 있다.
소송전 끝에 매수인 측이 일부 반환 받은 사례도 있다.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 결정 후 무산 과정에서, 일부 금액을 채권단(산업은행 등)으로부터 돌려받았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에서 한화케미칼이 3150억 원의 이행보증금을 냈다가 인수가 ‘무산’되면서 이를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결 후 파기환송심까지 가는 소송전 끝에 법원은 산은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게 “1260억 원을 한화 측에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계약 무산의 책임에 따라 이행보증금을 산은이 모두 가져가는 것은 과다하다는 결정이었다. 하급심(1·2심) 재판부는 한화가 대우조선의 자산가치 하락, 자금조달비용의 급증, 확인실사 미실시 등을 이유로 약속된 기간 내에 최종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은 “정당한 이유가 없다”며 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대법원이 결정을 바꿨다.
HDC현산 입장에서도 ‘소송전을 해볼 여지가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법원 관계자는 “수천억 원이 오가는 엄청난 인수전이기 때문에 산업은행 측도 계약금 전부를 다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결국 소송전을 염두에 두고 미리 ‘트집 잡기’를 해서 한 푼이라도 더 돌려받으려고 하는 것 아니겠냐”고 내다봤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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