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신라젠의 운명이 금주 결정된다.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는 오는 7일까지 신라젠의 상장폐지 혹은 개선기간 부여 여부를 의결한다. 앞서 6월 19일 신라젠은 전·현직 임원의 횡령·배임 혐의로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사유 대상이 됐다. 정부로부터 펙사벡 개발 용도로 90억 원을 지원받고 그 기대감으로 ‘코스닥 시가총액 2위’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던 신라젠은 과연 코스닥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신라젠, 영업 지속성 인정받을 수 있을까
기업심사위원회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거래 재개 △상장폐지 △개선기간 부여 세 가지다. 신라젠의 상장 적격성을 인정하면 매매거래정지 조치가 해제돼 다음 영업일부터 주식 거래가 재개된다. 신라젠은 지난 5월 4일 장 마감 이후 1만 2100원에 거래가 정지됐다. 2016년 12월 코스닥 상장 이후 처음으로 거래 정지를 맞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
기업심사위원회가 상장폐지를 결정하면 2심 격인 코스닥시장위원회가 다시 상장 폐지 여부를 다시 심의해 최종 결정한다. 1년 이내의 개선기간을 부여하면 신라젠은 개선기간 종료 후 7일 내에 개선계획 이행내역서를 제출하게 되고, 이후 기업심사위원회가 다시 상장폐지 여부를 심의·의결한다.
기업심사위원회는 영업의 지속성 및 재무상태 건전성 그리고 경영투명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한다. ‘코스닥시장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기준표’에 따르면 기업심사위원회는 매출이 지속 가능한지,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의해 재무상태가 악화했는지, 경영진의 횡령·배임 등으로 내부통제제도가 훼손됐는지 등을 살펴본다.
한국거래소 관계자에 따르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판단되는 요소는 기업 영업의 지속 가능성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횡령·배임 혐의가 있어도 기업 경영에 문제가 없어 거래가 재개된 경우도 있다”며 “(실질심사 대상여부를 결정할 때와) 심사기준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최종제품 매출 없어…펙사벡 미래가치는 얼마?
신라젠의 운명을 가를 핵심 열쇠는 ‘신라젠이 펙사벡의 가치를 얼마나 인정받느냐’가 될 전망이다. 펙사벡은 신라젠이 개발 중인 면역항암제 후보물질로, 신라젠 파이프라인의 대표선수다. 암세포만을 선별적으로 감염해 암세포를 직접 사멸하는 작용기전을 지닌다. 신라젠은 지난 3월 기준 총 8개의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는데 그중 7개가 펙사벡에서 파생됐다.
신라젠은 아직 최종 제품을 출시하지 않아 자체 매출이 없다. 대신 펙사벡 관련 공동연구협약을 맺고 공동협약자로부터 받는 연구개발비용인 공동연구개발 수익·라이선스 수익·마일스톤 수익(개발단계별 기술료) 등에 의존한다. 지난 5월 신라젠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신라젠은 2019년 공동연구개발 수익 33억 원, 라이선스 수익 2억 원, 마일스톤 수익 52억 원을 거둬들였다. 이런 수익마저도 지난 1분기에는 내지 못했다.
따라서 매출의 지속, 그리고 수익성 회복 가능성을 평가해야 하는 기업심사위원회는 펙사벡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신라젠은 2019년 8월 간암 표적치료제 ‘넥사바’와 펙사벡의 병용 임상3상에서 효과가 없다는 분석이 나와 임상이 중단된 이후 다른 적응증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미국 리제네론과 공동개발협약을 체결하고 미국·한국·호주·뉴질랜드에서 신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펙사백과 세미플리맙 병용치료법 임상 1b상이 진행 중이다.
신라젠 역시 이 부분에 기대를 건다. 신라젠 관계자는 “지난 4월 미국암연구학회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신장암 대상 병용임상 첫 데이터가 발표됐다. 이 자료를 한국거래소에서도 요청했다”며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으로 신장암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충분히 어필됐을 거라 본다. 또 항암제는 다양한 암종에 확장하는 게 가능해 약물 가치를 높여주는 특성이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펙사벡 가치가 그다지 높게 책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적응증을 달리한 펙사벡의 가치를 논하기에는 이르다. 다만 간암에서 효과를 입증해내지 못했는데 다른 질환에서 상당한 효과를 보일지는 의문이 든다. 또 임상을 완료하기까지 최소 1000억 원 정도가 드는데 이걸 충당할 수 있을까”라며 의문을 표했다. 지난해 신라젠은 58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정도로 재무 상황이 좋지 않다.
이에 대해 신라젠 관계자는 “임상에 투입할 자금은 지금으로서는 충분하다. 1분기 기준 현금성 자산이 360억 원 정도 있고, 문은상 전 대표 등 특수관계인이 출연한 전환사채(CB) 자금이 200억 원 정도 있다”며 “다만 그 이상의 임상영역 확장을 위한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거래 재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수 경영 투명성…신라젠은 경영진 교체 카드 내세워
경영 투명성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문은상·이용한 전 대표이사와 곽병학 전 사내이사 등 전직 임원은 펙사벡의 글로벌 임상 3상 중단 사실을 공시하기 전에 회사 내부 정보를 이용해 미리 주식을 팔아 손실을 피한 혐의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인수를 통해 얻은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1918억 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거래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상하기는 힘들다”면서도 “횡령·배임 혐의를 얼마나 중대한 사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고려될 여지가 있다. 지난 4일 문 전 대표 등에 대한 공판기일에서, 신라젠의 BW 발행을 설계하고 자문한 DB금융투자 임원 이 아무개 씨가 “BW 발행은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며 법적 다툼의 불씨를 지폈다. 이 씨는 2014년 3월 문 전 대표 등이 상장 전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자기 자금 없이 350억 원 규모의 신라젠 BW를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신라젠은 경영진 교체 카드를 썼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문은상 전 대표는 지난 6월 사퇴했고,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양경미 연구개발전략기획 총괄 부사장도 7월 사의를 표명했다고 알려졌다. 즉 한국거래소가 횡령·배임 혐의가 기업 계속성·재무 안전성·경영 투명성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상장 유지 여부가 갈릴 수 있다. 비슷한 사례로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고의적 분식회계로 검찰에 고발된 상황이었는데 한국거래소는 상장 유지 결정을 내렸다.
한국거래소가 개선기간을 주고 좀 더 지켜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신라젠 소액주주연대는 상장폐지 혹은 개선기간 부여 결정을 할 경우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형사 고소하겠다고 5일 밝혔다. 소액주주연대는 임직원의 횡령·배임 혐의는 상장 이전 발생한 일이고, 상장 당시 제대로 심사하지 않은 한국거래소도 공범이라고 주장한다. 거래 정지일 기준 신라젠 시가총액은 8666억 원이었다. 신라젠 투자자 중 소액주주는 지난해 말 기준 16만 8778명으로 전체 투자자의 99.98%에 달한다. 소액주주들이 보유한 주식도 전체의 87.68%인 6229만 7273주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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