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문재인 정부에서 20여 차례에 걸쳐 발표된 부동산대책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간다. 노무현 정부 때 언급만 된 대책들이 실행되고 있고, 이에 대해 시장은 부정적인 의견을 내고 있다. 10년 전 시행착오를 겪었던 정책이라는 평가와 함께 현재 시장에 맞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급 불균형에 의한 문제가 대부분인데,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펼치니 한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다음의 4가지다.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고분양가 관리 지역 등 규제지역 지정·확대
△취득세, 보유세, 양도소득세 강화
△대출 규제 강화
△임대차 계약 시 임대인 권리 축소 및 임차인 권한 확대
2020년은 문재인 정부 4년 차다. 24번의 부동산 정책이 나오는 동안 큰 틀에서 달라진 건 없다. 그저 규제 내용이 강화되고 있을 뿐이다. 정책이 시장에 효과가 없다는 걸 스스로 평가조차 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참고로 내가 쓴 책 ‘대한민국 부동산 사용 설명서’ 6장에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모두 나와 있다).
#새로운 정책 없이 과거 정부 시행착오 반복
지난 40년 간 부동산 시장 변화에 따라 정부는 규제와 완화를 반복했다. 그 흐름을 살펴보면 이번 정부 정책도 예견할 수 있다. 즉, 새로운 정책이 없다는 뜻이다. 지난 20년간 부동산조사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늘 새로운 정책을 그려왔다. 정부가 단기적인 대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정책을 발표하길 기대했다.
물론 5년 임기의 정부는 단기간에 정치적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정책을 펼치기가 힘이 든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선거로 선출되는 정치인이 아닌 해당 부서 실무진은 근무 기간이 길다. 그들은 올바른 방향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을까?
실무진은 지난 40년간 수많은 정책에 대한 계획 보고, 결과 보고 리포트를 작성해 왔을 것이다. 단기적인 성과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시장의 체질 변화, 부동산 시장의 방향, 50년 후를 위한 정책을 고민해봤는지 정말 궁금하다.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을 왜 지정하는가? 단기 투자 수요가 몰렸기 때문에 피해를 본 실수요층을 위해 투기 수요를 제거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시장이 잠잠해지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부동산 시장은 심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잠잠해질 수 있다. 거래가 너무 없다 싶으면 다시 규제지역 지정을 해제할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과열되는 지역이 발생할 것이다. 규제 때문에 공급을 못 했으니 수요가 많은 지역은 공급 부족으로 시세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럼 또 규제지역을 지정한다. 이렇게 기존 정책의 적용과 해제를 반복하는 방식은 초등학생을 장관 자리에 앉혀도 할 수 있는 정책 아닌가?
전 단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단기 투자수요가 왜 몰렸을까?’, ‘왜 해당 지역에만 단기 투자자가 몰릴까?’에 대한 원인 분석은 잘 나오지 않는다. 어떤 리포트도 속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근본적인 원인을 모르니 해결책이 나올 수가 없다.
#강남 3구는 시장 경제의 자연스러운 모습
‘강남 3구’인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가 늘 핫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강남 3구의 공급량이 아닌 멸실주택(건축법상 주택 용도에 해당하는 건축물이 철거 또는 멸실돼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건축물 대장에서 말소가 이뤄진 주책) 수만 봐도 가격이 오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공급 대비 멸실주택 수가 더 많으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좋은 입지에 좋은 상품을 공급하는데 인기 있는 건 당연하다.
이건 다주택자들의 투기 조장 행위의 결과가 아니다. 시장 경제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정부는 자연스런 시장 흐름에 투기꾼 세력이라는 가상의 적대 세력을 만들어 그에 대한 규제 정책을 만든다. 이건 해결이 아니라 일시적인 심리에만 영향을 줄 뿐이다. 또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과거 정부가 그랬듯 양도소득세 등 세금을 더 강화할 수 있다.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려는 의도에는 세금을 더 많이 걷으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그 목적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목적대로 다주택자들이 움직이려면 오히려 부동산 시장이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양도소득세를 많이 내면서도 수익이 많이 나야 다주택자들도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부동산은 심리가 중요하다. 10원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부동산 투자를 하는 소액 투자자들이 양도소득세를 그렇게 많이 내면서까지 매수 또는 매도를 하고 싶을까? 세금으로 대부분의 수익을 내는 구조에서 누가 아파트 투자를 하려고 할까?
양도소득세 강화는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는 조건과 만나면 세금 수령액만 줄어들 뿐이다. 양도소득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래 자체가 줄어드니 취득세도 줄어든다.
여러가지 연쇄 움직임을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정말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려는 의도라면 모를까, 세금을 더 많이 걷으려는 목적이라면 이렇게 단순하게 단기적 목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과거 정부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변용이나 업그레이드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쓰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와, 참신하다. 그렇지, 그렇게 풀어야지!’ 하며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정책을 기다렸던 건 순진한 연구원의 착각이었을까? 수요가 많은 입지에는 매물이 없다. 매매 매물도 없고 전세 매물은 더 없다. 단기 투기 수요가 몰렸던 입지도 좋지 않고 상품도 좋지 않은 물건들만 쌓여 있다. 어차피 그곳은 다주택자들, 즉 투자자가 아니면 거들떠 보지 않던 시장이다. 오를 곳만 더 오르고 내릴 곳은 더 내리고 있다. 지금 정책대로 가면 이 상황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 우려가 정말 우려로 끝났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이번 정부가 잘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2017년 8·2 대책 이전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의 용기와 발상이 필요하다.
‘투자자에게만 피해이고, 실수요층에는 이익이 되는 방향 아니냐?’라는 의견을 주는 분들도 있다. 진짜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이런 칼럼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반대 상황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 걱정을 담은 칼럼을 쓰고 있다. 진심으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도움이 되고 싶다.
지금 방향대로라면 서울과 비서울의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서울 내에서도 인기 지역과 비인기 지역의 격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벌어질 것이다. 독자들도 칼럼을 읽고 의견이 있다면 전해달라.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위한 정책에 어떤 방향성이 담겨야 하는지.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와 유튜브 ‘빠숑의 세상 답사기’를 운영·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부동산 사용설명서’(2020), ‘수도권 알짜 부동산 답사기’(2019), ‘서울이 아니어도 오를 곳은 오른다’(2018), ‘지금도 사야 할 아파트는 있다’(2018), ‘대한민국 부동산 투자’(2017), ‘서울 부동산의 미래’(2017) 등이 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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