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여자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 코로나 통금 때문에 외출을 못해서 두 달이나 못 만났거든. 물론 우린 사귄지 5년이나 됐으니 두 달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애써 괜찮다 말하지만 왠지 불안해 보여 안쓰러웠던, 동유럽 거주 한 남성과의 슬픈 대화 중에 문득 스친 생각은 ‘혹시 코로나19때문에 섹스 로봇 수요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엄습한 이별 예감에 가슴 아파할 그를 보며 이런 발상을 하다니 좀 미안했지만 이러한 ‘웃픈’ 예상은 현실이었다.
중국 언론은 팬데믹 이후 자국의 리얼돌 판매가 급격하게 늘어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지난 24일 보도했다. 중국 주요 업체들은 최근 리얼돌 생산량을 50% 늘렸으며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특히 이탈리아의 수요는 5배가량 급증했다. 만남 자체가 어려운 격리 시대인만큼 단순 인형을 넘어 움직이고 대화도 가능한 ‘로봇 연인’ 수요도 높아지지 않을까? 실제로 북미의 인공지능(AI) 섹스 로봇 업체들에 따르면 최근 로봇 판매량이 급증했다.
#영화 ‘그녀’의 사만다가 몸과 함께 나타났다
인간은 정서적 관계 형성 욕구가 있기 때문에 인형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AI 섹스 로봇이 개발되어 왔으며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이 제품들은 단순 섹스 토이가 아니라 대화하며 알아가고 일상을 함께하며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연인’이 되어준다는 개념이다. AI 여자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그린 영화 ‘그녀(Her)’에 등장하는 주인공 남성의 완벽한 AI 소울메이트 ‘사만다’가 물리적 신체까지 갖추고 그것도 이상형 외모의 실사판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면 된다.
미국의 AI 섹스로봇 업체 리얼보틱스(Realbotix)는 코로나 발병 이후 자사 제품 판매량이 최소 50%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섹스 로봇 업체인 캐나다의 그린얼스로보틱스(Green Earth Robotics)도 예전에는 하루 한 제품 정도 판매했지만 코로나19 이후 두 제품 또는 세 제품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주요 고객 층은 50~60대의 혼자 사는 남성들이라는 설명이다.
리얼보틱스에 따르면 이 회사 로봇들은 실리콘 몸체를 지녔으며 12개 이상의 신체 형태, 수십 여개의 얼굴이 있어 이용자 취향대로 맞출 수 있다. 머리를 움직이고 눈을 깜박이거나 눈동자를 움직일 수 있으며 수백가지의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머리 부분은 AI가 탑재되어 대화가 가능하고 이용자와 대화가 축적될수록 이용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이용자의 반응을 보고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등을 학습한다.
리얼보틱스는 여성 로봇과 남성 로봇 모두 판매하고 있지만 베스트셀러는 여성 로봇 ‘하모니’로, 한 개 아니 한 명(?) 당 1만 2000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하모니는 한 외신 기자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며 “인공적인 교제를 인간관계의 경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라고 로봇 치고는 똑똑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회사 로봇 연인들과의 대화는 자연어 처리 기술 및 AI와 언어학의 접목을 통해 아마존의 AI ‘알렉사’ 수준으로 구현되며, 아직은 머리만 움직일 수 있지만, 미래의 제품들은 걸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로봇 연인과 집안에서 같이 살 뿐 아니라 같이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는 등 데이트도 가능하게 된다는 얘기다.
#관련 기술 눈부신 발전, 미래에는 사람보다 나을지도?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 미래의 로봇 연인이 어떻게 진화할지 예상해봤다. 미래의 로봇 여자친구 또는 로봇 남자친구는 대화 능력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간 연인과 수다를 떠는 것과 다름없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 AI에게 대화 능력을 주는 자연어 처리 등 관련 기술이 이미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어 지금도 AI 챗봇 기술을 이용한 진짜 친구 같은 사이버 친구 서비스들의 이용률이 높아지고 있다. 일례로 국내 스타트업 스캐터랩이 개발한 대학생 캐릭터 AI 챗봇 ‘이루다’는 발랄하고 자연스러운 대화 능력으로 한 달 만에 1000명의 친구를 모았다.
이런 자연어 처리 기술은 점점 더 진화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령 올해 초 발표된 언어 생성 모델인 ‘GPT-3’은 일반 AI의 10배 이상인 1750억 개의 매개변수로 다수 언어 작업을 할 수 있는 거대 자연어 처리 모델로, 상당한 수준의 문학작품을 써내는 등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것들이 로봇 연인에게 도입된다면 어떨까? 먼저 달달한 말을 건내고, 대화를 기억하며 듣고 싶은 말을 골라 해주고, 관심사에 맞는 주제로 대화가 끊이지 않고 심지어 센스와 통찰력 넘치는 말로 영감까지 주는 이상형 외모의 로봇 연인과 산책을 하고 데이트를 하고 잠도 같이 잘 수 있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그때가 되면 로봇 연인의 몸체도 꼭 실리콘에 국한된다는 법이 있을까? 지금도 3D 프린팅으로 신체기관을 제작하는 바이오 프린팅이 발전하고 있다. 바이오 프린팅으로 출력한 실리콘보다 훨씬 사람에 가까워 로봇인지 사람인지 육안으로 구분이 어려운 몸체와 높은 지능을 갖춘 완벽한 인격체를 떠올린다면 너무 나간 상상일까?
#기술보다 느린 제도 및 윤리 정립, 사회적 인식 전환 필요
로봇 연인 시대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첫째 안전문제, 둘째 사이버 보안 문제, 셋째 윤리 문제로 정리된다. 이용자가 AI 섹스 로봇을 이용하다 다칠 경우 외부에 알리기 꺼려해 필요한 치료 조치를 놓칠 수 있고 이는 정확한 안전사고 데이터 집계를 어렵게 만든다. 또 AI 로봇이 해킹을 당해 이용자의 개인 정보가 악의로 수집될 수 있고, 외부 침입자가 로봇을 제어해 이용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이에 시장이 더 무르익기 전에 AI 섹스 로봇의 안전기준과 사이버 보안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윤리 문제 면에서는 이용자의 성폭력 범죄 심리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성폭행 상황 연출이 프로그래밍 돼 있거나 소아성애자를 위한 아동 형태의 로봇이 제작되고 있으며 이는 윤리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폭력물을 즐긴다고 범죄자가 되는 게 아니 듯이 해당 로봇을 이용한다고 범죄 욕구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맞선다. 하지만 폭력의 대상을 적이 아닌 약자로 삼아 반인륜적 행위를 가하는 놀이가 합법적 상품이 된다는 건 일반적인 폭력물과는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대인 관계에 서툰 사람에게 대체제를 제공하면 그의 사회적 고립을 더 강화시킨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글쎄, 무리생활이 생존 방법이었던 먼 과거에 비해 현 시대는 공동체의 이점이 절대적이지 않고 전염병까지 창궐하는 마당에 하기 싫은 사회 생활을 꼭 고쳐서까지 잘해야 할까? 인간의 능력이란 다양해서 골방에 혼자 있을 때 오히려 창의력이 증폭되는 사람도 있을텐데.
높은 수준의 로봇 연인을 구현할 관련 기술들은 이미 준비돼 있고 진화하고 있다. 이런 제품들이 호감이든 비호감이든 이미 시장은 성장하고 있고 코로나19가 가속을 붙였다. 원하는 대상과 물리적, 정신적 교감을 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무엇을 원할지 개인의 선택이 철저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성숙한 인식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요즘, ‘로봇 연인’ 시대를 혼란 없이 맞이하기 위한 준비도 나름 필요해 보인다.
강현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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