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당연하게 여겨왔던 평범한 일상사가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절이다. 그 소소함의 가치가 우리 삶의 전부라는 깨달음은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대에 미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의 초심은 평범하지만 솔직함의 가치를 찾아가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우리 미술의 중심으로 보듬는 일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아름다움을 주는 미술의 구축이 그것이다. 처음의 생각을 더 새롭고 확고하게 펼치기 위해 새 시즌을 시작한다.
물의 성질을 표현하는 말에는 ‘명경지수’와 ‘상선약수’가 있다. 각각 중국 고전 ‘장자’와 ‘노자’에서 나온 말이다. 둘 다 물의 속성을 빗대 세상의 이치를 얘기한다. 복잡한 세상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지혜와 깨달음에 관한 비유다.
명경지수는 멈춰 있는 물, 상선약수는 흐르는 물이다. 맑은 거울처럼 정지되어 있는 물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추하게 변한 모습은 추하게, 마음을 비운 맑은 얼굴은 맑게 보여준다.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에 예부터 예술의 모티브로 즐겨 다뤄졌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진리의 깨달음에는 자기중심의 선입견에 대한 경고와 마음의 척도를 어느 쪽에 두느냐에 따라 세상 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는 지혜의 가르침이 고루 들어 있다.
명경지수를 해석하는 개인의 기준도 이와 같다. 서양인들은 명경지수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태도다. 이에 비해 동양에서는 명경지수에서 마음의 다스림을 보려고 했다.
상선약수는 다툼 없이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물의 포용성에서 세상을 사는 지혜를 배우려는 태도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막히면 걸림이 없는 곳을 찾아 돌아나가고, 더러운 것을 스스로 품어 안고 가거나 희석해 깨끗하게 만든다. 네모난 곳에 이르면 네모로, 동그란 곳에 머물면 동그란 모습으로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를 따른다. 최고로 좋은 상태는 물과 같이 비운 마음이라는 생각이다.
최고 예술의 경지도 이와 같은 것일 게다.
남여주도 물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그가 작품으로 해석하는 물의 비유는 매우 독특하다. 작품을 보면 자개와 옻칠을 이용한 전통 소재의 동양화처럼 보인다. 그래서 ‘자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남여주는 작품에서 보이는 그대로의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이 자개장처럼 보이는 이유는 물의 물리적 느낌을 표현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어릴 적 어머니 방에서 보았던 자개장 표면에서 명경지수 같은 느낌을 받았고, 이게 작업의 바탕으로 나타난 셈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스스로 품어내는 물의 속성을 자개장 질감과 순수한 자연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그릇은 사람에 관한 비유다.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 그릇의 의미가 생기듯, 사람도 자신을 무엇으로 채우냐에 따라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이치를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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